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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월호

대학로 창작 플랫폼 조성 설계공모 당선작 대담열린 공간을 상상하다

서울문화재단(이하 재단)은 지난 8월 24일 대학로 창작 플랫폼 조성(구 동숭아트센터 리모델링) 설계공모를 시작해, 2018년 11월 (주)핸드플러스건축사사무소와 김준성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가 공동 참여한 ‘파운드 스페이스’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2019년 본격적인 프로젝트 착수를 앞두고, 발주처인 재단의 상상과 실시설계를 수행할 건축가의 상상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설계의 취지와 함께 리모델링 후 재단의 철학과 바람을 담아 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대학로 예술청 공론화 과정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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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준성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조종우 (주)핸드플러스건축사사무소 대표
일시
2018년 12월 10일(월) 오후 4시
장소
구 동숭아트센터 2층

김종휘 김준성 조종우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준성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조종우

(주)핸드플러스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종휘

오늘은 설계 당선작의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 이 공간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 동숭아트센터를 재개관하는 일이 우리 재단에는 ‘시간의 의미’와 ‘공간의 의미’ 두 축으로 다가온다고 봅니다. 14년 차를 넘기고 있는 재단은 현재 서울시 전역에서 20개의 크고 작은 공간을 운영합니다. 현 시점은 재단 안팎에서 재단의 공간, 사업, 사람을 관통하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는 때입니다. 그 과정 중에 구 동숭아트센터 재개관의 과업이 놓여 있습니다. 재단이 무엇을 하는 곳이고, 재단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며, 재단이 운영하는 공간이 앞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구 동숭아트센터의 재개관이라는 물음표를 통해서 설명해야 하는 전환점에 온 것 같습니다.
재단 차원에서는 사업 공간과 운영 주체가 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는데, 주요 현안이 대부분 협력과 융합형 과제인 사회적 상황에 부합하자면 지금부터 공간 이슈와 함께 재단의 체질을 전환해야 합니다. 서울시 차원에서도 예술인 종합지원을 공간과 분리하고 시민과 분리해선 안 되겠기에 예술인과 시민이 어울릴 수 있는 스마트 플랫폼 공간을 조성하는 과제가 도출돼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꼭지가 각기 진행되다가 우여곡절 끝에 구 동숭아트센터 공간에 합류한 셈입니다. 리모델링을 하면 아래는 극장, 상층부는 재단 사무실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1층부터 위로 몇 개 층에 걸쳐 가장 넓고 접근성 좋은 위치에 다양한 실험 공간을 만든다면, 현재 예술청이라 부르는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여기에 구현하는 공간의 원리와 운영 과정은 다른 재단 공간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텐데, 특히 재단 사무실과 예술인 및 시민의 자율적인 공유 공간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큽니다.

조종우

저희 사무실은 올해 초 주택을 리노베이션해서 이사했는데, 동숭은 사무실 이전 후 첫 번째 현상설계 당선작입니다. 저희 사무실을 고칠 때 기존의 신축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동숭아트센터가 마침 리노베이션 개념이었는데, 막상 당선되고 보니 신축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첫 당선작이라 더 애착이 가고 김준성 교수님 그리고 팀원들과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김준성

저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브라질로 이민 갔다가 1991년에 돌아왔는데요. 소위 건축계의 유학 1세대로 불렸습니다. 선배들은 대부분 학위만 받아왔고 해외에서 일한 경험은 없었는데요. 해외에서 일을 해보았던 건축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조 소장님은 저의 제자였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같이 일하다가 작년 말 모든 사람이 대표인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인데 현재 10명 중 6명 정도가 거의 대표급입니다. 서촌의 옛날 주택을 구입해 개조해서 2018년 4월 말에 들어갔습니다. 이 프로젝트 도전 여부를 결정할 때 저는 기다려왔고 해보고 싶던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은 따지지 말자고 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곳을 고쳐보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단순히 동숭아트센터 리모델링인 줄 알았는데 대학로 창작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건물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고 찾아오는 장소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건축의 새로운 모델

김종휘

재단은 공공건축의 프로세스를 따릅니다. ‘리모델링’이고 인테리어가 들어가지만 현재 공공건축에 사용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넣을 수 있는 프로세스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창작 공간을 만들면서 느꼈던 한계를 개선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은데요. 재단과 함께 기존의 공공건축 프로세스를 개선한 사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기대와 우려를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청 공론화 기획단과 설계 과정 내내 논의하고 학습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있을 텐데 새로운 모델을 제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조종우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 같습니다. 건축이 중심이지만 기본적으로 인테리어의 특수하고 전문적인 부분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재단에서 생각하는 부분과 저희의 기본적인 생각을 어느 정도 얘기해보고 진행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휘

다른 제안들과 달리 당선작은 기존 건축물 자체에 크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리모델링에 대한 철학이나 30년의 역사가 있는 건물이라 고려했던 부분,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준성

기존의 것을 많이 남기고 최소한으로만 건드립니다. 시간은 아무리 돈을 들여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래된 것을 가급적 그대로 두면 새로운 요소들과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더라고요. 오늘도 여기에 쓸 만한 것이 많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외관의 일부를 떼어서 바닥 조경으로 활용할 계획도 있습니다.

김종휘

그동안 주로 임대를 주다 보니 층마다 인테리어가 다른데요. 가벽과 덧댄 인테리어를 걷어냈을 때 드러날 맨살이 궁금합니다. 초기 건축 당시의 엑스레이를 보는 듯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비워두고 인테리어를 최소화해서 가변성과 유동성이 커지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김준성

기본적으로 기둥과 보로 된 건물이기에 내벽은 다 나중에 만들어졌습니다. 가리고 치장하기보다는 그대로 두어서 공간감을 살리고 싶습니다. 건축을 하다 보면 골조만 생겼을 때의 공간감이 가장 좋습니다.

파운드 스페이스

김종휘

당선작은 심사위원의 의견도 일치했고 대학로 창작 플랫폼이라는 설계 목표를 잘 구현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생각과 철학을 바탕으로 나아가자고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설계 당선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준성

당선작 제목이 ‘파운드 스페이스’(found space)인데요. 있던 공간을 찾았다는 개념입니다. 스위스 건축가가 책에서 사용한 단어인데, 이 말 자체는 연극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입니다. 정식 극장으로 설계되지 않은 지하 기계실, 복도, 마당에서 갑자기 공연을 하면 극장이 되는 것을 총괄하는 단어입니다. 설계를 준비하는 도중에 이 단어를 발견하고는 눈이 훤해졌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거나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 연극과 극장 중심의 건물이었기 때문에 이 극장을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플랫폼과 장소로서 중요하니 극장을 꼭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쪽으로 방향이 분명해졌어요. 과거의 극장은 야외에서도 하고 열려 있던 공간인데 전문화되면서 점점 닫힌 공간이 되었습니다. 전문성이 있지만 열린 공간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도착하는 공간이 바로 극장이고, 로비에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공간 자체가 극장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출발이었습니다. 1991년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건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당의 애매모호한 공간감이 아쉬웠어요. 마당을 중심으로 테라스식 건물이 있는데 마당에서 행위가 일어나지 않아 썰렁했어요. 귀중한 공간이 비어 있는 걸 보고 막연하게 마당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운드 스페이스’의 연장선상에서 이 장소의 중심 공간은 마당이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습니다. 팀원들도 이에 동의하고 마당을 살려보기로 했습니다.

김종휘

마당이나 각 층에서 사용자들 스스로 온갖 것들을 새로 발견하는 경험을 하고 즉흥적으로 활동이 벌어질 여지가 많은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4층은 재단 직원들이 밀집한 사무 공간이 될 테지만 여기도 재단 직원들에게 나날이 발견되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구조는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용처가 달라지면서 쓰는 사람에 따라 켜켜이 쌓이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마침 대한민국 유일의 장애인 작가 레지던시인 잠실창작스튜디오에 다녀왔는데요. 유니버설 디자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넘어 그들 스스로 존엄하고 특별한 존재로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이 건물 전체에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할 때 ‘모두’의 의미를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의 서점에 간 적이 있는데요. 4면 서재 중앙에 4각형의 카운터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 한 명이 앉아 있는데 시각장애가 있는 원주민이었습니다. 혼자 있지만 모든 공간과 기계를 다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인 걸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음성으로 처리되었고 비장애인들도 줄을 서서 자연스럽게 그 속도에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멋있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도쿄 긴자에 있는 스완 베이커리(Swan Bakery)의 제빵사는 절반이 장애인이고 서빙은 전부 장애인이 합니다. 느리지만 그들의 속도와 몸짓에 맞추는 문화가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이 바로 예술적인 체험이라서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있어도 안심할 수 있는 공간, 같이 더 훌륭해지고 멋있어지는 관계를 촉진하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김준성

대표님 명함을 받는 순간 점자를 보고 손으로 전달되는 정보에 대한 배려가 깊다고 느꼈습니다. 신축이 아닌 기존 건축물이라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최상급으로 하기는 어렵지만 있는 것을 최대한 응용하려고 합니다. 소프트웨어 부분은 진행하면서 염두에 두겠습니다.

조종우

배리어프리는 기본적으로 법적 최소 기준을 적용해서 합니다. 이 건물은 자체에도 레벨이 많고, 극장 내부에도 레벨이 많습니다. 전부 실현하기는 힘들겠지만 장애인 관련 부분을 우선순위에 두고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리어프리 등급보다는 다르게 할애해야 할 공간이 생길 것 같은데 서로 합의해서 정리해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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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게 쓰는 사람들이 주인

김종휘

공간을 통해 정리할 재단 정체성의 기본은 새로워져야 할 예술창작입니다. 정형화되고 고답적이었던 정의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와 나란히 어떤 질문을 갖고 어떤 창작이어야 할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대화를 시작하려 준비 중입니다. 현재 재단에서는 대학로 창작 플랫폼을 위한 운영 모델과 콘텐츠 발굴을 위해 예술청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공론화를 시작했습니다. 예술청 공론화 기획을 준비하면서 이 공간에 대한 시각이 충돌하는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연극인에게는 오래전 극장의 향수와 더불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반면 대학로가 ‘연극의 거리’로 등식화된 것을 생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동안 대학로에서는 연극 이외의 다른 장르에 대한 실험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타 장르 분들의 기대치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시작되었지만 함께 공론화에 참여하고 있어서 이 자체가 건강한 논의 과정, 유기적 상호 참여의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김준성

건축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여기는 창작 플랫폼이니만큼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공론화해서 개선해나갔으면 합니다. 건축 법규에만 맞추지 않고 예술로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장소입니다. 이번에 과감히 시도해보면 좋겠습니다.

김종휘

건축의 전문 영역 안에서 해법을 제공해주기보다는 고민하는 지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같이 질문을 던지고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빠르면 1월부터 기획단을 꾸려서 이곳을 다양하게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인데요. 이것만 해도 분야별 예술인들은 신선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보통은 공간의 용도가 정해져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무언가를 하려면 본인들이 의자도 가져오고 공간 연출도 직접 해야 합니다. 공간 운영의 원칙은 없지만 자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진행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궁금합니다. 건축 과정과 함께 이 경험도 아카이빙해서 개관 이후 전시를 하자는 얘기도 나왔고요. 이 건물에 매년 한 달이나 2주간이라도 안식 기간을 주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1년 중 일정 기간은 무조건 비워두고 우리가 계획하고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여기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열어주자는 주장입니다. 재단에서도 고민이 더 있어야 하겠고 이러한 운영을 촉진하는 공간에 접근하려면 설계하는 입장에서 부담도 될 것 같습니다.

김준성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건축가끼리 해도 소용없고 타 분야 사람들이 참여해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협업하기 가장 적합한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공간의 안식 기간 부여 등 운영 원리는 저희도 3차원적인 공간으로 계획한 것이라 그 안에서의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입체적인 마당에 벼룩시장이 열리는 상상도 해보았는데요. 건축에서 다루는 물리적 공간에는 시간이 따릅니다. 동숭아트센터는 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굉장히 다릅니다. 시간대도 그렇고 계절적으로도 개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김종휘

대학로로 출퇴근하는 연극인들이 많다 보니 멀리서 오는 분들은 밥값이 비싸다, 연습하다 보면 차가 끊긴다, 사우나에서 자야 한다, 복사할 곳이 없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서울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을 배려하고 주변 생태계를 바꿔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인근의 서울연극센터도 내년 여름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는데 이곳과도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고요. 동시에 대학로 일대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이 집주인으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더라고요. 여기에서 좋은 품질에 가격 경쟁력을 갖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재단의 극장에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공연이 몰릴 것이라는 소극장 건물주들의 우려도 있습니다. 지금 대학로를 둘러싸고 있는 대학 극장들은 학생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습니다. 대학 극장의 거리이자 공공기관의 거리 틈새에 공유 공간이 열리고 장르별 예술인들이 모여서 놀다 보면 분명 영향을 줄 것입니다. 공공은 공공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을 하되 무례하게 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준성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민간과 똑같이 하면 갈등 구조가 생깁니다. 이곳은 공공이니 같은 행위라도 수요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김종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독점하지 않고 소중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이 공간의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는 것이 오픈 이후의 숙제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로 인해 그렇게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들고 그것이 이 지역의 트렌드가 되어 궁금한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이 안에서는 상호 배려와 존중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예술청 공론화의 흐름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정한 무엇이 자신을 과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품격은 있으되 검박하고, 다양하게 사용하되 독점을 허용하지 않고 서로에게 시각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공간이라는 가치들을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에 대해서 동시적이고 단계적으로 매핑해나가려고 합니다.

마당의 부활

김준성

저희 웹사이트 첫 화면에 나오는 말이 ‘우리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장소를 주고 싶다’입니다. 어떤 프로젝트든지 건물보다는 장소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연극은 장소가 좋아서 오기보다는 제목을 보고 오는데요. 여기는 창작 플랫폼이니 ‘무엇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에서 출발했습니다. 동숭동 일대에서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마로니에 공원’이었는데 이쪽에도 거점이 생겨서 여기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김종휘

존재하지 않던 수요를 창조해내는 공간이 마당일 것 같습니다. 기존의 마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요. 중정이 생기고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되면 이 건물에서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양식을 시도해볼 것 같습니다. 각 층 내부에서 중정을 보는 방향은 특별한 객석이 될 것 같아요. 옥상의 좋은 전망도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중정으로 들어와서 동선을 따라 걸어서 옥상까지 올라가 야경을 보고요.

김준성

2층은 세미나실이지만 가변적으로 만들어서 활용하지 않을 때는 오픈해 또 다른 행위의 장소로 사용하면서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는데요. 이 건물이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가변적이어야 할 곳은 최대한 가변적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하 극장도 고정된 벽 없이 공연이 시작할 때 닫히면서 벽이 생기는 상상을 해보았고요. 옥상은 ‘누가 여기까지 올라가느냐’며 설왕설래가 있었는데요. 행위가 계속 일어난다면 올라갈 것 같고요. 여기는 입체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 일어날 행위가 과감하고 멋질 거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운영과 기획이 공간과 잘 맞아 들어간다면 가능성은 꽤 높습니다.

김종휘

설계안을 발표할 때 얘기하신 극장에서의 경험이 인상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극장의 콘셉트를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준성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에쿠우스>를 봤는데요. 굉장히 작은 극장이지만 객석이 3단까지 있었습니다. 입장권을 구입했는데 출입문은 막혀 있고 지하로 내려가게 해놓았어요. 지하 통로로 입장했더니 말의 머리가 놓여 있는 분장실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어요. 어두운 조명 아래 분장하던 배우들이 쳐다보았을 때 외로운 인간상들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오니 무대 밑이었어요. 무대 밑에서 올라가 객석에 앉게 한 것이 극의 내용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 거죠. 극에 따라 공간을 기가 막히게 운영했어요. 70~80명의 관객을 한 단에만 앉히고 위는 그냥 비워두더라고요. 연극 공간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것이 치명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벽으로 구분된 극장보다는 그냥 비워둔 곳이 극장이라는 개념이면 좋겠어요. 원래 극장은 기둥을 경계로 구분하는데 저희는 기둥을 노출시키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극장 안에 아직 들어와 있지 않다는 착각이 들었다가 갑자기 3차원적인 행위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음향은 요즘 전문 장비가 잘 나와서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입체적인 마당의 개념이 극장 안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의 3차원적인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는데요. 이 공간에서도 3차원적인 기획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관객과 배우의 위치가 서로 바뀌기도 하고요.

협의의 과정에 대한 기대

김종휘

재단은 관과 민 사이에 있습니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만, 재단은 관을 대변하는 것도 있고 민의를 모아내는 것도 있습니다. 매번 평균 중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런 현안에서는 저렇게 해보고 저런 현안에서는 이렇게 해보며 균형을 잡아가는 중간인 셈입니다. 이 점에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공간들이 관에서 지어놓은 다음에 운영을 시작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설계, 운영, 사용자의 어떤 경험과 아이디어들이 모아지면서 공간과 건축에 구현되는 방향을 최대한 견지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밖에서 볼 때나 들어왔을 때나 검박한데 매력적이었으면 합니다. 운영상으로는 다양한 사용자들 스스로 독점과 과시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느껴졌으면 합니다. 이 공간 안에서는 한 집단이나 서너 명만 차단되어서 무언가를 하는 일은 가급적 최소화했으면 합니다. 옆에서 무언가를 해도 방해하지 않는 장소, 공간, 관계를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김준성

재단에서 해석을 잘해주어서 저희가 설계하고도 놓쳤던 부분과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이것도 소통의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소통하면서 일하는 과정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큽니다.

조종우

기존 건물이 있다 보니 신축 건물에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장소에도 의미가 있고 특수한 용도도 있고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거기에서 찾아내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협의하면서 만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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