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문화행정 혁신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10일, ‘문화행정의 혁신을 위한 좌담회’가 펼쳐졌다. 중앙과 기초, 현장과 행정의 일선에서 다양한 논의거리들이 오간 그날의 좌담회를 소개한다.
- 진행 |
- 김해보(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본부장)
- 토론 |
-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김정수(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송상훈(청년예술가네트워크 대표), 강지윤(시각예술가,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 김희정(공연기획자, 은평문화재단 공연예술팀)
- 일시 |
- 2017년 7월 10일 오후 3시
- 장소 |
-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김해보 오늘 첫 번째 질문은 ‘현장에서 체감되는 문화행정 혁신의 필요성’입니다. 말 그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이론적으로 진단해보는 문화행정 혁신의 필요성’인데요. 새 정부 출범 등 큰 흐름 속에서 예측되는 문화행정의 변화를 정책적, 이론적으로 진단해보고 전망과 요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문화정책의 혁신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큰 주제보다는 현장의 실무적인 현상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행정가는 열심히 하는데 현장에서는 왜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하는 충돌지점부터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당연히 최근 문화행정 시스템 문제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e-나라도움 얘기가 나올 것 같네요.
강지윤 저는 예전에는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올해는 서울문화재단에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원금을 받아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e-나라도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여기에서 시스템의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듯해요. 처음 공지하기로는 부정수급을 방지하고 정산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두 가지가 최고의 장점이라고 했어요. 어떻게 부정수급을 방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따져보면 정산 절차가 간소화되었다는 생각도 절대 들지 않아요. 그리고 이 문제는 예술인들의 자존감을 건드렸던 신용카드 개설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는데요. 사업을 포기하네 마네 하면서도 우격다짐으로 이 시스템을 쓰고 있는 우리 같은 단체들이 이런 시스템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들어요.
김해보 창작자의 자존감을 보호해주는 문화행정 시스템이 당연한 것 아닌가와 반대로 창작자들을 위한 보조금도 당연히 국가 보조금 관리 시스템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것 같아요.
강지윤 정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1차, 2차 면접이나 심의를 거쳐서 사업에 선정되었는데 딱풀 하나 사는데도 집행등록-집행요청-이체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쳐 보고해야하는 절차가 개인적으로는 소모적인 노동 같아요. 예전에는 보조금 통장에 지원금액을 교부받은 후 직접 지출을 했죠. 그런데 지금은 e-나라도움의 시스템을 통해 앞서 말한 이체실행까지의 3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해당 건에 대한 금액만큼 통장으로 입금이 되다보니 모든 지출을 일일이 검열하겠다는 태도로 느껴집니다.
송상훈 기본적으로 보조금 시스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창작지원금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실비용은 나오지만 창작단체 대표자나 핵심기획자의 인건비는 충당할 수 없어서 예술가들은 부업으로 별도의 수입을 마련해야 하는 구조이고요. 예산이 정당하게 쓰였는지에 대한 관리는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은 너무 세세한 기준으로 나눠져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번에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에 참여하는 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본적인 행정업무를 힘들어하더라고요. 지원사업 수혜 경험이 없는 것을 우대하는 제도이다 보니 이 영역에 대한 이해와 숙지가 안 되어 있는 친구들인데, 작업에 쏟는 비중 못지않게 단순한 서류 처리, 행정 비중이 높다고 해요. 현장에서는 심각하게 겪고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김정수 제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쪽 논리를 말씀드리면요. 정부의 기본적인 행정 시스템은 어느 영역이나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문화라고 봐주는 건 없어요. 교수들도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서 쓸 때 똑같은 불평을 해요. 심지어 논문 쓰는 것보다 정산이 더 힘들다고 얘기할 정도거든요. 방법은 둘 중 하나예요. 귀찮으면 안 받으면 돼요. 돈을 받아쓰고 싶다면 돈을 주는 쪽의 요구사항에 맞출 수밖에 없는 거죠. 부정수급 얘기도 잠깐 나왔는데,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정부에서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불평을 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겁니다.
김해보 행정 시스템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고치는 게 행정가의 역할 같거든요. 문화예술에 특수성이 있다면 문화체육관 광부(이하 문체부)나 문화기관들이 문화정책 영역의 경계 조건에 맞는 행정을 왜 만들지 못하느냐는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 정부도 출범했는데, 뭔가 달라질 전망은 없는지요?
김정수 그쪽 논리로는 문화가 특이하다고 봐주기 시작하면 체육, 교육, 복지도 그런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문화 안에서도 다 우리만의 특성이 있다고 하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룰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거죠.
김희정 저는 공연기획자로 살다가 재단에 들어간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젊은 국악인들의 공연기획을 주로 했는데 그분들이 기획서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요. 재작년에 맡았던 팀 대표자도 예술가지만 회계도 알고 행정도 아는데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만은 못하겠다고 저를 고용한 경우였어요. 이런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기획자로 살아남아서 밥벌이를 했지만, 오히려 이런 것을 쉽게 만들어서 예술가들이 직접 행정을 하면서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지윤 원천세도 정산을 해야 하는데 그걸 이해하고 있는 작가들이 거의 없어요. 저도 회계나 행정업무에 남들보다 익숙해서, 이런저런 사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제가 하기도 했는데요. 행정 시스템이 강화될수록 부정수급을 막으려는 원래 취지와는 반대로 시스템에 익숙한 꾼들이 더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 같거든요. 행정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진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경우 저는 기초문화재단에 있다 보니 서울문화재단이 만나는 예술가나 단체들과는 조금 다르거든요. 기초에 가면 장르 구분이 의미가 없어져요. 주민과 예술가의 구분도 점점 없어지고 있고요. 행정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아래에서부터 들여다보면서 설계되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진행되는 측면이 분명 있어요. 예를 들면 최근 행정 시스템은 점점 세밀하게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측면이 있어요. 행정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혁신이나 협치 등 전반적인 정책 운영 방향을 생각하면, 제 생각에는 오히려 행정 시스템이 반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규정을 최소화함으로써 유연한 접근이나 대처가 가능할 수 있는 구조를 행정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해보 말씀하신 문제는 저희 재단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신입직원들이 뭐가 맞는지 혼란스러워서 선뜻 일을 하기 힘들어해요. 현실에 맞게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감사에서는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하니까요.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혁신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이 행정 시스템입니다. 위에서 정책적 가이드라인과 믿음을 주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 사회적기업 지원제도가 처음 나왔을 때 중간지원기관이 그런 역할을 했었는데요. 공공기관의 행정 시스템을 따를 수 있는 중간지원기관까지만 공공기관의 시스템을 적용하고 범퍼역할을 해주어야 해요. 반면 중간지원기관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기관의 목적에 맞게 설계한 시스템으로 현장과 만날 수 있어야 하고요.
김정수 ‘공무원들이 무슨 동기로 일할까’에 대해서는 비난회피동기(Blame Avoidance Motivation)1) 이론이 있어요. 칭찬받으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욕 안 먹으려고 일한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많은 부분이 설명될 것 같아요. 공무원은 이런 존재고 행정은 이런 시스템이라는 것을 전제하면, 어떻게 대응하고 접근할지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왕자님과 슈퍼맨을 그리면서 위에서 누군가가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 합니다. 예컨대 서울문화재단이 신청서나 평가나 정산을 따지지 않고 자율성을 갖고 공모사업을 할 여력이 있다면, 문체부의 시스템과는 차별되는 친예술가적인 방식으로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해보 어떤 실험을 해야 할지 이야기해볼까요. 서울문화재단은 문학지원사업을 적절히 정산할 길이 없어서 결국 상금 방식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런데 도출된 우수한 성과에 대한 상금 지급 방식은 다양한 시도의 시작을 지원한다는 원래 목적을 훼손시킬 수도 있습니다. 지원금이 실제로 보조금이냐 용역의 대가이냐 하는 부분은 예술가의 노동과 자율성, 충분한 보상의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문화서비스의 구매가 공공행정 안에서 계약으로 적절히 흡수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고요.
송상훈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소액多컴’2)도 정산을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시도들이 좀 더 확장되는 건 필요하고요. 부정수급 방지도 필요하기 때문에 선정 과정에서 좀 더 잘 거르는 장치나, 신고와 징계 시스템이 갖춰지는 쪽으로 가야지 모든 팀에 빡빡한 규정을 적용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티스트들이 작업할 때 계약관계가 성립되는 작업의 영역 자체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약서를 쓸 만한 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표준계약이 도입된다고 해도 아티스트들의 노동 문제, 정당한 보상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고민이 들어서 저는 용역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역에서 구청 주무관과 얘기할 때, ‘절대 보조금 사업으로는 하지 말자, 서로 불편해지고 관계가 틀어질 확률이 크니 용역계약으로 가자’는 얘기를 하기도 해요. 기존의 행사 대행사로 가던 일들이 좀 더 문화적인 색깔을 낼 수 있는 예술가그룹으로 가고,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경제 영역까지 연결되어서 계약관계가 성립되는 일거리들이 더 많이 주어질 수 있도록 정책이 정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해보 예전에 교수님께서는 오류를 걸러내는 비용과 실제 오류가 발생하는 확률을 고려하면 차라리 제비뽑기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김정수 사실 부정수급자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요. 실제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을 걸러내기 위해 복잡한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까다롭고 공정하게 심사한 결정이 최적일까요?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아요. 작은 규모의 펀드라도 어느 정도 자격이 되는 분들을 놓고 제비뽑기해서 나눠주고 정산 없이 작품 하나만 하라고 하는 거죠. 꼼꼼하게 심사해서 뽑든지, 추첨해서 뽑든지, 재단에 오래 근무하신 분들이 감으로 뽑든지 나중에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차이를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심사비에 들어가는 돈을 예술가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죠.
권경우 저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한 가지 구분해야 할 것은 그러기에는 기본적으로 자원이 너무 많다는 거죠. 결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차원에서 예산이나 공모사업의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기초에서는 실제로 가능해요. 일상적으로 예술가나 단체의 활동을 샅샅이 훑어서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에요. 문예위나 서울문화재단 예산의 상당부분이 다른 방식으로 기초에 더 내려와야 하고 기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정수 자격요건을 명확히 해서 심사 대상 후보군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첨을 하게 되면 선정 단계에서 공정성 문제를 시비 걸 것이 없으니 서로 깨끗하고요. 운이 없어서 떨어진 거니까 실력이 없어 떨어졌다고 자존심 상할 일도 없어요.
권경우 지역의 인력들이 조금 더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면 지원사업의 층위가 달라져야 해요. 기본적으로 서울에서 해야 할 것과 기초에서 해야 할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저는 팔길이 원칙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요. 기초문화재단은 자치구 차원에서,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 차원에서 칸막이 행정을 부수는 역할을 같이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보 최근 지원사업을 할 때 신청단체의 소재지를 한정할 수 없는 문제도 있거든요. 실제로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에 꼭 서울 단체만 참여할 수 있느냐고 해요. 반대로 여기에서 잘하는 기획사가 저기에 가서도 하다 보니 똑같은 프로그램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구조가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원리에서는 나쁜 게 아니지만 지역의 문화다양성을 생각할 때는 문제가 있습니다.
권경우 예술가의 생존과 문화예술생태계 문제와 연관 있다고 보는데, 문예위가 개별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는 모든 예술가들이 그것만 바라보고 있게 되거든요. 그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많아야 예술가들이 살고 있거나 활동 중심의 근거지로서 지역에서의 예술활동으로 전환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지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축제나 공연, 문화행사 등만 해도 꽤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지역 예술가들은 정작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축제 등 대형 행사는 대부분 이벤트업체 등이 하는 식이죠. 개별 예술가나 문화예술단체가 주민 커뮤니티에 합류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다양한 공모사업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고 있는 상황입니다.
송상훈 공모사업 몇 개 떨어지고 나서 예술을 지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예술가들이 비일비재해요. 예술영역에서 행정의 혁신은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성장해가는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되고요. 그렇다고 예술가만을 위한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사회적으로 공공의 자원이 없진 않은데 예술가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대형 이벤트 대행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영역을 예술가들이 더 예술성 있고 공공성 있게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김희정 저는 지원사업을 10년 동안 해왔고 2년 경력단절 후 복귀했는데요. 점점 행정에 적응하는 게 어렵고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는 느낌이에요. 제조업이나 산업은 하청업체, 중간 과정에서 부정수급이 발생할 수 있지만 문화예술은 개인이 바로 받거든요. 그래서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도입한 e-나라도움의 복잡한 프로세스는 업계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 기관들 사이의 관련 지침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내린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최근 몇 년간 신종플루, 메르스, 블랙리스트 등으로 인해 문화예술계의 텃밭이 많이 흔들린 상태예요.
김해보 지역의 문화재정이 중앙에 종속되어 있는 문제, 기획재정부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예산구조에 편입되는 구조 안에서 지역의 문화행정 기준이나 문체부 나름의 기준을 만들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시대의 문화행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실제 지역에서 벌어지는 혁신적인 문화활동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는 문화제도, 문화행정, 문화정책의 혁신으로 가야 한다는 큰 그림에서 이야기될 것 같은데요.
권경우 중간지원조직과 활동하는 주체나 단체들이 지역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예요.
김정수 전반적인 행정 시스템 차원에서의 큰 흐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투명성과 공정성이 그 자체로는 지극히 이상적인 가치잖아요. 그걸 구현하기 위해 더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이니 거스를 명분이 사실 없죠. 문화행정 쪽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근본적인 방향 선회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때 대부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거든요. 실제 어떤지 알아보려면 실험을 반드시 해야 해요. 실험을 해보고 비교해서 어떤 게 나은지 자료를 갖고 얘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재단 차원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펀드를 만들어서 써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얘기해야 근거가 되고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강지윤 아까 제비뽑기라는 말이 왜 불편한가 생각해보니 지원금을 그냥 주는 행위에 그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지원사업은 예술가가 성장하거나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야지 지원금만 주고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본적으로 국가는 국고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곳인데 마치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해요.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는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으니, 예술가 본인이 정책이나 제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을 하면서 민관 협치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예산편성에서 운영까지 운영단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산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말씀하신 모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수 두 가지 오해가 있네요. 제비뽑기는 의사결정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지금처럼 하는 것과 심플하게 하는 방법 중 무엇이 더 나을까 하는 차원의 이야기고요. 두 번째는 국가가 자기 돈이라면 마음대로 쓰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국민의 돈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까다롭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권경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부업을 하고 있어요. 성북구에 살면서 지방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요. 성북구를 예로 들면, 부서별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을축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여성, 다문화 등 지역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많지만 의외로 지역 사회에서는 공유되는 측면이 적은 거죠. 구청 역시 기존에 했던 관습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에서 예술가들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첫째, 부업을 줄이는 것, 둘째, 다른 지역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존에 필요한 수입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 이를 통해 지역에서 주민이자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것, 이러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해보 창작자들이 본연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뒷바라지를 해줄 사람은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뒷바라지 행정이 본연의 일을 억누르는 상황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예술가들이 본연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시인이 문체부 장관이 되었는데, 시인이 만족할 만한 문화행정의 혁신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정수 지금과는 다른 시스템을 한 번쯤 실제로 시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 행정부처는 바뀌기 어려우니 지역에서부터 한 번씩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문화재단을 통해서 이렇게 하니 좋다는 것을 지역의 주민들이 알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솔직히 행정학에서 문화행정은 아주 변방입니다. 영향력이 없고,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별로 안 불편하죠.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예술가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지 자기들끼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예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알게 해주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해야 합니다.
송상훈 서울문화재단도 창작지원사업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 규모의 사업이 생겼을 때 행정력에 대한 확충도 있어야 하고요. 예술가도 사회와 만나는 접점이 좀 더 필요하고, 실제 그런 기회가 많이 확보되어야 해요. 이 외에도 예술가들이 정책적인 의제화에 스스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책의 설계과정, 심사과정, 보조금 문제나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 대해 같이 계속해서 협의하고, 문제점을 담당자가 들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의 혁신적인 정책사례들이 중앙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게 협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기초단위로 갔을 때는 예술 외 도시재생, 창업 등의 영역을 연결하여 예술단체를 안정화시키고 발전시켜나가면서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형성할 수 있는 거리를 연결하는 입체적인 과정이 같이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희정 저는 e-나라도움 문제를 방송에서 파헤쳐주기 바랐어요. 예술가들은 굉장히 불안정하고 예술계 종사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감이 드는 경향이 있는데 행정이나 정책이 안정시켜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문화재단은 예술가 개개인부터 상위의 행정기관까지 만나는 부분도 있는데 기관과 기관 사이의 협업을 잘 정리해주었으면 합니다.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납득이 가고 따라가기 좋은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강지윤 행정은 사용자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원래의 목적에 맞는 공공성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는 것 같고요. 저는 중간지원조직의 직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예술에 관심이 있어서 문화재단에 들어왔는데 행정인력으로만 소비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이분들이 즐거워야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과도 협력이 이뤄지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관심도 더 가지게 될 것 같은데요. 지금은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이나 구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독립된 예산이나 기획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같이했고요.
권경우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예술가들이 동원되거나 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활동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공모지원사업도 필요하겠지만 지방분권시대에 맞게 문화 분야 예산이 기초행정이나 기초문화재단 등과 결부될 수 있고 나아가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살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사업설계 구조 자체를 바꾸면 행정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정수 솔직히 예술가가 아닌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는 축제를 누가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행사하는 거 보면서 그냥 좋다고 하지 우리 동네 예술가가 안 나왔다고 화내지 않아요. 다르다고 믿는 분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줘야 아는 거죠.
김해보 공무원들의 비난회피동기를 자극할 만큼 현장 예술가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 문화행정 혁신의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오히려 문화예술로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시민들의 믿음과 수요가 폭발하는 인식전환의 임계점이 오면 그에 맞추도록 문화행정도 바뀌지 않을까요? 한 번 트인 감각은 후진 것을 다시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1) Weaver, R. (1986). The Politics of Blame Avoidance. Journal of Public Policy, 6(4), 371-398.
2) 지원금 100만 원을 상금 형식으로 지원하므로 정산 불필요. 세금 4.4% 원천징수.
- 정리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