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나라 안팎으로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 해가 시작됐다. 그래도 연초에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는 한 해가 되기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인 1791년은 그가 계획한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영화 <아마데우스> 후반부. 자루에 담긴 모차르트의 시신이 마차에 실려 가는 가운데 슬픈 합창이 울려 퍼진다. 모차르트 ‘레퀴엠(진혼미사곡)’에 나오는 ‘라크리모사(눈물의 날)’다. 마침내 자루에 싸인 시신이 구덩이에 떨어지면서 강렬한 “아멘”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아멘” 부분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라크리모사’의 첫 여덟 마디까지 쓰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후 제자 쥐스마이어가 작업을 이어받아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완성했다. 많은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쥐스마이어의 악보를 ‘모차르트답지 않다’고 여겨 자기 나름의 ‘모차르트 레퀴엠’ 악보를 만들었다.
오늘날 나와 있는 이 곡의 음반 대부분은 쥐스마이어의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요제프 아이블러·프란츠 바이어·리처드 몬더·로빈스 랜던 등이 완성한 다른 악보를 사용하는 음반이나 연주회도 많다. 당연히 ‘라크리모사’도 여덟 마디 이후의 선율은 각양각색이다.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가 1887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가 이 곡의 운명을, 나아가 자신이 맞을 운명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곡을 자신이 사랑하는 신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 쓰고자 했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들였지만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그는 1896년 세상을 떠났고, 4개 악장 중 피날레를 제외한 3개 악장의 악보가 완성돼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부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향곡은 4개 악장 구성이 표준이다.
그러면 마지막 4악장은? 주제 선율을 적은 여러 장의 스케치만 남았다. 흥미로운 점은 브루크너가 습관대로 이 스케치 악보들에 순서대로 번호를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이 번호에 따라 스케치 악보를 읽어보면 대략의 구조가 느껴질 정도다. 이에 따라 몇몇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완성한 4악장 악보를 발표했다.
브루크너 자신은 “완성하지 못한 4악장을 잊어버리고 내가 예전에 쓴 ‘테 데움(찬미가)’을 3악장 뒤에 연주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렇지만 이 교향곡 9번은 대부분 후대에 가필해 완성된 4악장도, ‘테 데움’도 없이 브루크너가 완성한 3개 악장만 연주되고 있다.
3개 악장만으로도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웅대하고도 완결된 듯한 구도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슈베르트가 ‘미완성 교향곡’으로 알려진 교향곡 B단조를 1822년에 쓰기 시작했을 때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악장과 2악장을 완성하고, 3악장 스케르초의 초고(120마디)까지 작성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작곡을 멈췄다.
다음 해인 1823년, 슈베르트는 그가 자주 방문해 곡을 선보인 그라츠시의 음악협회로부터 명예 회원증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완성 상태인 이 곡의 악보를 친구이자 협회 회원이던 안젤름 휘텐브레너에게 전했다. 그러고는 5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슈베르트도 남은 부분을 마저 작곡하지 않았고, 휘텐브레너나 협회의 누구도 곡을 완성해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1828년 슈베르트는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눈을 감았다.
슈베르트가 자신의 벗들 곁을 떠나고 37년이나 지나 1865년, 슈베르트의 음악에 빠져 있던 빈의 젊은 지휘자 요한 폰 헤르베크가 나이 든 휘텐브레너를 찾아갔다. 헤르베크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태어났다. 그가 찾아갔을 때 휘텐브레너는 71세의 노인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휘텐브레너가 잊을 뻔했다는 듯이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나한테 말이야, 슈베르트가 끝맺지 못한 교향곡 악보가 있는데….” 헤르베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휘텐브레너는 42년간 간직해둔, 누렇게 빛바랜 악보를 서랍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이 곡은 이해 12월 빈에서 헤르베크의 지휘로 초연됐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여러 지휘자와 음악학자들이 완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3악장은 120마디의 스케치가 남아 있었지만, 4악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1928년 슈베르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 컬럼비아 레코드와 빈 악우협회가 이 곡의 3·4악장 완성을 목표로 한 국제 작곡 콩쿠르를 열었다. 영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프랭크 메릭이 쓴 3·4악장이 1등상을 받았지만 초기의 열광과 달리 갈수록 인기가 떨어져 잊히다시피 했다. 유명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도 1934년에 자기 버전의 이 곡 완성본을 선보였다.
20세기 후반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로는 영국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의 작업을 들 수 있다. 3악장은 슈베르트의 스케치가 있으므로 기존의 작업들도 슈베르트의 색깔에서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는 듣지 않았다. 문제는 4악장이었다. 뉴볼드는 슈베르트가 쓴 극음악 ‘로자문데’의 간주곡 1번을 이 곡의 4악장으로 가져왔다. 이 간주곡은 B단조로 돼 있어 미완성 교향곡의 조성과 일치하며, 이전에도 ‘극음악의 간주곡으로 쓰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 때문에 슈베르트가 다른 목적으로 쓴 곡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돼왔다.
유명 지휘자 찰스 매커러스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이 뉴볼드의 완성본을 녹음하는 등 이 작업은 긍정적인 반향을 가져왔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1·2악장의 심오하고 낭만적인 드라마가 가져올 마지막 악장의 미학적인 깊이에 ‘로자문데’의 간주곡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오늘날에도 이 곡은 대부분 1·2악장만 연주된다. 어떤 음악학자나 지휘자들은 “2악장 끝부분의, 멀리 떠나는 듯한 여운은 그 뒤에 다른 악장이나 선율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만든다. 슈베르트도 그래서 3악장을 쓰다가 그만둔 것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미완성 상태 그대로 아름답다.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이 곡들은 그 자체의 유기적 구조를 갖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수용됐다.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굳이 바꾸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삶도, 우리가 새로 꾸려나갈 한 해도 그런 것 아닐까. 당초의 계획이 모두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끝에는 아름다웠다고, 부분적인 결실이라도 값졌다고 말할 수 있는 한 해를 모두가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글 유윤종 음악평론가, 전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미완성의 미학을 감상하고 싶다면
1월 9일 오후 7시 30분 | 롯데콘서트홀
야프 판 즈베던(지휘), 루돌프 부흐빈더(피아노)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F장조,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2악장까지),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서울시향 필리프 조르당의 브루크너 교향곡 9
1월 29일 오후 7시 30분 | 롯데콘서트홀
1월 30일 오후 7시 30분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필리프 조르당(지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메타모르포젠’, 브루크너 교향곡 9번(3악장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