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에서 허허바다로
—들으면 절로 시원해지는 말
얼마 전 국어사전에서 ‘쏠’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처음엔 “소나뭇과의 모든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 ‘솔’을 떠올리고 나무와 관련한 단어라고 짐작했다. 그러다 “먼지나 때를 쓸어 떨어뜨리거나 풀칠 따위를 하는 데 쓰는 도구”인 또 다른 ‘솔’을 떠올리고, 어쩌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도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계이름 중 하나인 ‘솔’에 긴장을 담아 발음하는 단어라면? 솔기의 다른 이름인 ‘솔’에서 유래한 단어라면? 얼른 뜻을 보면 되는데, 나는 자꾸만 유예하고 있었다.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유추하는 이 시간이 참 좋은 것이다. 심호흡을 한 뒤, 쏠의 뜻을 보았다. “작은 폭포”. 순간 머릿속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쏠쏠한 물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이는 한여름에 꼭 필요한 단어가 아니던가.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탄성이 터졌다. 시원했다.
쏠 다음에 있는 단어는 ‘쏠라닥쏠라닥’이었다. ‘쏠락쏠락’으로 줄여 쓰기도 하는 이 단어는 “쥐 따위가 이리저리 쏘다니며 물건을 함부로 자꾸 잘게 물어뜯거나 끊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뜻한다. 다락과 쌀자루를 재바르게 오가는 쥐의 모습이 그려진다. 쏠라닥쏠라닥의 두 번째 뜻은 “남의 눈을 피해 가며 좀스럽게 자꾸 못된 장난을 하는 모양”이고, 세 번째 뜻은 “가위로 자꾸 조금씩 베거나 잘라 내는 모양”이다. 마치 틈날 때 국어사전을 뒤적이는 내 모습을 가리키는 것 같아 웃음집이 터지고 말았다. 국어사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리저리 쏘다니는 것 같고,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닌데도 남의 눈을 피해 가며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위로 자꾸 조금씩 베거나 잘라 내듯, 이 단어에서 저 단어로 건너가 머물렀다가 그 단어가 이끄는 또 다른 단어에 도착하기도 한다.
쏠에서 출발한 단어의 여정이 어디에 당도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오늘은 물속을 유영하기로 마음먹었다. 더위를 가시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더위를 잠시 잊게 해줄 수는 있으니까. ‘물보라’부터 시작한다. 물보라를 떠올리면 으레 눈보라가 떠오르니까. 여름에 겨울을 그리워하고 겨울에 여름을 바라는 건 내 오랜 피서避暑법이자 피한避寒법이니까. 물보라는 “물결이 바위 따위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물방울”을 가리킨다. 물보라가 인다고도, 물보라를 일으킨다고도 쓰인다. 흔히 이를 순리로 여기지만, 나는 물결의 의도에 대해 상상해 본다. 자신이 떠안은 일의 부피가 너무 커서 하염없이 부딪쳐 그것을 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보면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은, 마침내 일어나고 마는 것은 물 자신일지도 모른다. 모양이 비슷한 데서 착안해 물보라를 비유적으로 ‘메밀꽃’이라고 하기도 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바다에서는 매일매일 메밀꽃이 피어난다.
물보라 하면 자연스럽게 ‘물보낌’이 따라온다. 물보낌은 “여러 사람을 모조리 매질함”이란 뜻이다. 이 단어가 물과 관련된 단어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란다. 물이 누구나 무엇을 해친다고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이 다니기 어려울 만큼 땅 위에 넘쳐흐르는 물”을 뜻하는 ‘물마’나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물. 또는 그런 물을 뒤집어쓰게 되는 일”을 가리키는 ‘물벼락’을 마주할 때도 가슴이 철렁한다. 물은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그것이 넘치거나 부족할 때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고인 물은 썩지만,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 고여도 흘러도 넘쳐도 물을 늘 예의주시해야 한다. 물을 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물과 불’은 “서로 용납하지 못하거나 맞서는 상태”를 일컫는다. ‘물과 고기’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리키고 ‘물과 기름’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여 겉도는 사이”를 뜻한다. 물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적으로 “한풀 꺾인 사람”을 ‘물 건너온 범’이라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린 사람”을 ‘물 밖에 난 고기’라고, “물에 흠뻑 젖어 몰골이 초췌한 사람”을 ‘물에 빠진 생쥐’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물 찬 제비’를 꿈꾸는 사람이 ‘물 만난 오리걸음’처럼 어기적거리며 급히 달려가는 때가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된더위와 열대야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으면 절로 시원해지는 말이다. 무슨 물이 시원할까, 물이 고픈 듯 생각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몸이 시원해지는 말, 속이 시원해지는 말이 필요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질 때 마시는 물 한 모금 같은 말이 절실하다. 물 흐르듯 나의 시선은 ‘마중물’이라는 단어에 가닿는다. 마중물은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물”을 뜻하는데, 마중물을 부어야 비로소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의 결심이 마중물이 되기도, 누군가의 도움이 마중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찌 되든 마중물이 있어야 가능성을 한껏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뭍물’은 “바닷물 이외에 육지에 있는 모든 물”을 뜻한다. 호수나 하천에 있는 물이나 지하수 등을 떠올리면 된다. 이 중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골물’이라고 부르고 “보얀 빛을 띤 샘물”은 ‘암물’이라고 일컫는다. 한편 “물의 겉면”은 ‘물낯’이라고 한다. 물이 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도 흙탕물이나 “무엇을 씻거나 빨거나 하여 꽤 더러워진 물”을 가리키는 ‘고장물’을 떠올리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붉은 황토가 섞여 탁하게 흐르는 큰물”을 ‘붉덩물’이라고 하는데, 붉은 것이 덩이져 떠다니는 물이 절로 떠오르는 단어다.
물에 대한 상념은 바다로까지 내뻗는다. 물의 종착지일 바다, 물에 의지가 있다면 아마도 마지막에는 바다로 흘러들고 싶지 않을까. 개중 ‘허허바다’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바다다. 허허바다는 “끝없이 넓고 큰 바다”를 가리킨다. 아마도 빌 허虛 자에서 유래한 듯하지만, 기막힌 것을 보거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허허”라고 말한다. 허허 다음에 으레 찾아들곤 하는 쉼표 덕에 우리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한여름에 바다를 찾는 이가 많은 이유는 일단 물속이 시원해서이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끝없이 넓어지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커지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쏠이 허허바다가 되는 장면을 상상한다. 작은 폭포가 커다란 물웅덩이를 이루고 물웅덩이가 고여 있기를 멈추고 유유히 흐르는 장면을, 작은 물줄기가 강줄기를 만나고 마침내 바다로 스스럼없이 스며드는 장면을, 바다가 몸집을 키워 대양이 되는 장면을. 그야말로 만경창파萬頃蒼波다. 머릿속에 쏠을 둔 사람에게는 상상이 마를 날이 없다.
글 오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