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발레, 무용해서 유용한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여전히 춤을 글로 쓰는 사람으로서 ‘취미’가 맞느냐고 되묻겠지만, 진심이다. 예술을 취미로 즐기는 것과 업으로 삼는 것은 다른 차원의
감각이니 말이다. 예술하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고나서야 온전히 즐겁게 춤추리라 마음을 먹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더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발레학원으로 이끌었다.
오랜만에 피아노음악을 듣는 것도, 박자에 맞춰 오밀조밀 조화롭게 팔다리를 움직여 스텝을 수행할 계획도 모두 즐거운 상상일 뿐이었다. 가장 먼저 부닥친 난제는, 연습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의 올록볼록한 선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꺼이 하얀 연습실 한가운데 서기는 했으나 그 모습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왜곡 없이 거울이 투사해낸 나에게 적응하는 기간을
견뎌내고서야 춤추는 즐거움을 맞이하고 있다.
1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양을 위한 발레 수업이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발레 수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발레란 어쩐지 좀 어렵고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그때만 해도 발레를 취미로 하는 어른이란 조금은 독특하게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꾸준히 취미 발레 인구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놀랍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에선 발레용품 판매가 늘어나고, 아마추어만을 위한 콩쿠르가 열리거나 이들로 구성된 발레단이 고전발레 대표작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공공 발레단에서는 공개 발레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발레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고, 유명인이 발레 연습실에서 찍은 인증사진이 그 열풍에 한몫하기도 한다. 발레를 즐기는 이들의 숫자가 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한다.
ⓒAgathe Poupeney/Opera national de Paris
발레는 잔인할 만큼 너무나 예술적인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하게 빛나지만, 연습실에서의 과정은 그와 달리 잔잔하고도 무척이나 부단하게 흘러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 무용수의 자태는
황홀하지만,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렇게 될 수 없다. 태생부터 대다수가 그 조명을 받지 못하는 예술이다. 게다가 발레는 나의 몸을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불편한 모습으로
유지하려 애쓰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숱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쉽사리 발레를 취미로 삼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도 이 지점 때문이었다.
마음먹고 찾은 학원의 ‘성인 중급반’에는 이미 오랫동안 수업을 함께해온 이들이 있었다. 다수가 저녁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직장에서의 업무를 해치운 뒤 고단함을 이기고 퇴근한, 평범한 이들이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도 이 시간만큼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연습복을 챙겨 입고, 쉬는 시간에는 인기 무용수가 출연하는 공연의 ‘피케팅’에서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공유하며, 유명 해외 무용수가 최근에
올린 영상을 봤느냐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쁘다.
취미를 넘어 이들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 반갑고도 의아해서, 하면 할수록 어렵기만 한 발레를 왜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누군가는 반주음악으로 사용되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게 좋다고, 또 누군가는
예쁘고 아름다워서 좋다고 했다. 힘든데, 하다보니 더 좋아진다고도 했다. 이해가 되는 듯 아닌 듯 아리송한 답변 가운데서도 확실한 건,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예술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취미로 발레를 10년 넘게 해온, 그리고 춤에 관한 사유를 자신의 작품에 담기도 하는 박연준 시인은 발레와 시가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저는 시 창작 수업을 할 때 이 말을 자주 해요.
시詩란 ‘무대에 서기 위한 언어’라고요. 시는 의사소통을 위해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가는 단어처럼 곤두서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게 발레가 그렇거든요. 이 춤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자꾸 시키잖아요. 그래서 시와 발레 모두 ‘계속해서 아름다움에 복무하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는 “발레는 백 년을 해도 잘 안되는,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도
덧붙였다.
온몸을 섬세하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근육통이 한 차례 지나가고 연습복을 입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질 즈음 나름의 답이 떠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되지 않는, 그러나 잘한다고 해서 딱히 내
삶이 바뀌지도 않는, 너무나 무용하기에 유용한 아름다움의 감각이야말로 예술을 즐기는 이유인 것 같다고.
글 김태희 무용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