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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세 개의 꽃꽂이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2025가 아이러니를 통해 짐 자무시Jim Jarmusch의 말년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감각과 기억의 통합이다. 신비가 걷힌 자리에 소박한 경이가 자리잡는다. 빛과 소리가 움직이는 찰나의 도입부를 지나 아버지가 거실을 연출하고 있다. ‘적당한’ 물건을 여기저기 흐트러트리는 그의 행동이 자신에게는 작위적이지만 자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지러운’ 환경을 연출하는 것임을 우리는 ‘아버지’ 챕터의 말미에나 깨닫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 ‘남매’의 세 장으로 나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다중 시점의 영화이자 하나의 시점을 제공한다. 가족이라는 역할극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방법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을 그려내면서 말이다.

세 챕터에는 모두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가 들어 있다.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를 자주 인상적으로 영화에 담아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장소를 이동하는 동안 공중에 붕 뜬 듯 말랑말랑한 특이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에릭 로메르 영화의 대사는 말하는 인물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나아가 배우까지도 드러낼 수 있으며, 대사가 많아도 충분히 재미있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대화를 읽는 방법에 대한 단서이기도 하다. 가족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말의 ‘내용’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못한다. 대신, 내용도 없이 이어지는 말이 상징하는 것, 침묵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방 안의 코끼리다. (억지로) 말하지 않고도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한 상대라면 친구나 연인, 배우자가 될 만하다는 통념에 기대어 말하자면, 많은 경우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친구나 연인, 배우자로 삼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쌓이면 서로 익숙한 역할극을 할 수 있게 된다. 수없이 반복되고 수정되며 현재에 이른 이 역할극은 거짓말임을 알지만 믿는 척하는 경청과 상대의 거짓을 간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타자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 안다고 확신한다. 나와 닮았지만 나 같지는 않은 문제적 타자를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른다. 일흔이 넘은 짐 자무시는 함께 작업한 이력이 짧지 않아 관객도 그 사용법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배우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언제나 이별이다.

‘아버지’ 챕터에서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을 찾은 딸과 아들과 짧은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 챕터에서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을 찾은 두 딸과 티타임을 갖는다. ‘남매’ 챕터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쌍둥이 남매는 부모님의 옛집이 다른 세입자를 맞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집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다.

사건이 없는 이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사물과 언술은 마치 빵 부스러기처럼 보는 사람을 향해 손짓한다. 물·차 혹은 커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롤렉스 시계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관용구.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표시하는 상징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반복해 끼워 넣다니. 이러한 해석되지 않지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거의 모든 대답이 정답처럼 느껴지는 빵가루들은 짐 자무시가 시어詩語를 다루는 방식이다. 짐 자무시는 자신에게 (분석보다) 직관이 중요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미지 사이의 병치나 연결, 혹은 관객이 거기서 만들어내는 의미는 직관적이거나 무작위적인데, 이것은 좋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연결된다.

<패터슨>에서 패터슨이 성냥갑을 두고 시를 썼다면 영화를 만드는 짐 자무시는 성냥갑을 그 자리에 놓음으로써 우리가 시를 상상하게 만든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서는 그런 면이 극대화된다. 짐 자무시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세 개의 꽃꽂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카메라는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며, 특정 캐릭터나 그들의 세계관에 중심을 두지 않는 세계를 정교하게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색이 입혀진 빛의 움직임과 특정한 감정을 촉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유하는 사운드, 암호 같은 관용어구, 사물들과 사람들. <패터슨>에서 자꾸 출몰하는 쌍둥이들처럼 (그렇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도 쌍둥이가 등장한다!) 반복해 보이는 대상 중에는 스케이트보더가 있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자기 방식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세 도시에 공히 등장하고, 이들이 나올 때면 시간은 잠깐 이상한 속도로 튜닝되며, 갑자기 화면에 미끄러져 들어온 뒤 인사도 없이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간다. 남부 캘리포니아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빈 수영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발상이 J.G.밸러드적이라고, SF 같다고 짐 자무시는 말한 적이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그런 맥락에서 비순응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라고.

게으른 통념?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포용적으로 된다. 경험이 쌓일수록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을 관상만으로 평가하는데 무슨 수로 포용적으로 될까. 책이든 영화든 사람이든, 좋아할지 알기 위해 사계절을 인내해보는 노력을 해가 갈수록 점점 하지 않게 된다. 인내심은 청춘의 자산이다. 말년의 짐 자무시는 짧아진 인내심으로 <데드 돈 다이>2019를 만들었다. 지식과 계몽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부정적인 뉘앙스의 표적이 된 데 분노하며. 현재에 존재하지만 현재에서 벗어난 감각으로 만든 영화였다. 그다음에 온 것은,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들을 신중하게 골라 넣은 보석함인 것 같다. 지극히 찰나에 머물기 때문에 영속성을 획득한 순간들이 과거가 되어 손짓한다.

이다혜 작가·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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