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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서울,
이질적인 충돌이 만드는 참신함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은 종종 새로움을 낳는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이름부터 이국적이다. 서울시가 이란 수도 테헤란시와 경제 협력 등 우의를 다지며 1977년 ‘테헤란로’로 명명했다.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테헤란로의 과거 이름은 선·정릉이 있는 삼릉공원 일대를 지난다고 하여 ‘삼릉로’였다. 테헤란과 서울의 공간적 교류에, 왕릉이 조성되던 조선 시대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 자리잡은 호텔 ‘조선 팰리스’ 로비를 찾아가보자.

차로 도착해 주차장에서 나오든, 지하철 역삼역이나 선릉역에서 들어오든 조선 팰리스 입장객은 대부분 지하 1층의 전용 입구를 거치며 대단한 위엄을 마주하게 된다. 최고급 호텔의 수문장답다. 미국 작가 대니얼 아샴Daniel Arsham의 2019년 작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Blue Calcite Eroded Moses>이다.

의자에 앉고도 높이가 26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다. 근육이 우람하지만 살결은 매끈한 몸, 구불거리는 머리칼이 가슴팍까지 닿는 수염을 지나 무릎까지 덮은 옷 주름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아름다움이 탁월한 조각상이다. 이뿐이었으면 박물관에서 만나는 평범한 ‘옛것’이었으리라. ‘모세상’의 벗겨진 피부 아래로 희고 푸르스름한 수정들이 반짝인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땅을 파고 흙을 살살 걷어내다 찾아낸 귀한 유물을 마주한 것과 같은 쾌감이 느껴진다.

이 ‘모세상’의 원본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유언에 따라 묘당을 꾸미기 위해 1513년부터 제작해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의 조각이다. ‘피에타’, ‘다비드’와 함께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으로 꼽힌다.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들고 마을로 돌아온 모세가 금송아지를 놓고 우상숭배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모세의 정수리 쪽에 뿔이 솟아 있는데, 히브리어의 기록을 ‘뿔’이라 번역하는 이도 있고 ‘빛’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그 솟아난 영험함이 모세를 신성한 존재로 부각한다.

조선 팰리스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는 대니얼 아샴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 ⓒ조상인

아샴의 모세상은 미켈란젤로의 것과 크기도 똑같다. 조각 속에서 수정이 드러나는 차이가 있을 뿐. 오른손에 든 십계명 석판 한 귀퉁이가 뜯긴 자리에서도 수정이 삐죽이 자라나 있다. 이마 쪽에서 자라난 수정은 모세의 시선과 정확히 일치하며 호텔 엘리베이터 홀을 향하고 있다. 헛된 가치를 좇지 말라고, 근본적인 고귀함이 무엇인지 되새겨보라 일깨우는 듯하다.

이처럼 작가는 500년 전의 고전 조각을 차용하되, 옛것 안에서 돋아나는 새로움을 강조한다. 오래된 새것이요, 새로운 옛날이다. 작가는 이것을 ‘미래의 유물’이라 부른다. 현대 한국의 황금기를 보여주며 낙관적인 미래를 펼쳐 보이고자 한 조선 팰리스의 공간 개념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샴이 원본으로 삼은 미켈란젤로의 원본 ‘모세상’과 테헤란로의 핵심 문화유산인 선·정릉의 조성 시기 또한 비슷하다.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무덤인 선릉이 1495년에 조성돼 1530년에 정현왕후가 나란히 묻혔다. 11대 임금 중종의 정릉은 1545년 축조됐다. 아샴의 이 ‘모세상’은 선정릉을 옆에 둔 이곳에 놓일 운명이었던 것일까.

1980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아샴은 12세 때 허리케인이 마을을 뒤엎고 건물을 찢어놓는 것을 목격했다. 견고할 줄 알았던 땅과 집이 허망하게 파괴된 장면이 훗날 작업으로 이어졌다. 남미 이스터섬의 고대 모아이 석상을 보고서 우리가 사는 현재도 언젠가 과거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만나 아샴의 세계관인 ‘허구의 고고학the fictional archaeology’이 탄생했다. 카세트 플레이어·공중전화·구형 카메라·영사기 등 아직은 존재하지만 머지않아 사용하지 않게 될 물건들을 석고로 만들어 화산재 아래에서 발굴한 것처럼 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2020년 개인전 제목에 ‘3020’이라고 적어 현재의 관람객을 미래로 보내기도 했다. 결국 현재가 ‘미래의 과거’라는 의미였다. 디올·티파니·포르쉐·아디다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작가다.

오래된 미래와 오래된 새것. 그 이질적인 충돌이 만드는 참신함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살아남은 그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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