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을 누르자,
추억이 하나둘 새어 나왔다
공연계 관계자는 아니었고, 그냥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그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냉장고에 추억의 사진과 그간 본 공연 티켓이 줄줄이 붙어 있다. 무심코 눈길이 갔고, 넌지시 물었다. “공연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는 티켓을 한 장씩 손끝으로 짚어 보며 말했다.
“이 공연을 봤던 날에는요, 공연 끝나고 봄비가 내렸어요. 우산이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좋았어요.” “이건 생애 처음 본 발레였는데요. 그날 이후로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졌어요.” “이건… 아, 이건 친구랑 크게 싸우고 화해한 날이네요.” 한 장의 종이에 불과했는데, 그에게는 추억의 보따리였다.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티켓을 하나씩 누르는 그의 손은 마치 추억의 버튼을 눌러 자신만의 추억 극장의 막을 여는 것 같았다.
티켓의 ‘기능’이 끝나는 곳에서, ‘기억’은 피어난다
내게 티켓은 사무용 도구에 불과하다. 공연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내게 티켓은 ‘공연장 입장 확인서’에 가까울 뿐이다. 일상에서 쥐고 있는 마우스에 애틋함을 부여하지 않듯, 상의 주머니에 꽂힌 볼펜에 추억을 담지 않듯, 나는 티켓에 의미를 부여해본 적이 별로 없다. 취재를 가면 관계자에게 티켓을 받으며 안부를 묻고 답한다. 그렇게 그 작은 종이는 잠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가, 곧바로 업무 용품이 된다.
물론 나도 가끔은 그처럼 티켓을 ‘재활용’할 때도 있는데, 대개 책갈피용이다. 크기도 딱 좋다. 하지만 그가 ‘기억’을 담을 때, 나는 그저 작은 표식으로서의 ‘기능’만 챙길 뿐이다. 티켓이 내 책 속에서 하는 일은 ‘여기까지 읽었음’을 표시하는 것뿐.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 티켓은 하나의 기념품, 즉 굿즈였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공연장에서는 직업인으로 냉정하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만 가면 태도가 달라진다. 전시를 보는 것만큼이나 굿즈를 고르는 데도 진심이다. 전시실을 몇 바퀴씩 도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꼭 아트숍에 들른다. 도록 한 권은 기본, 몇 장의 엽서와 사용하지도 않을 머그잔 하나를 꼭 챙긴다. 어느새 굿즈를 고르는 일은 나만의 ‘전시 뒤풀이’가 됐다. 그걸 사서 집에 온 순간, 전시는 내 일상에서 꾸준히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심정에 십분 공감한다. 그리고 그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티켓을 굿즈처럼 만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송년 국악 공연의 티켓에는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정성스러운 문양을 넣고, 신년 음악회의 티켓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담는다. 공연의 성격에 따라 종이의 질감도, 색도 다르게 한다. 그러면 티켓은 더 이상 ‘버리는 종이’가 아니라 ‘보관하는 물건’이 된다. 한마디로, 티켓의 굿즈화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된 데는 국립국악원에서 간혹 접하는 굿즈의 변화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솔직히 말해 조금 촌스럽거나 형식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나쁘지는 않지만, 굳이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확실히 달라졌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무엇보다 ‘국악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느껴졌다. 고가의 상품도 아닌데,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굿즈의 상품화가 잘되면 어떨지 생각도 든다. 이때마다 늘 떠오르는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넓고 쾌적한 전시 공간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의 상품관은 치열한 전쟁터와도 같다. 그만큼 굿즈가 불티나게 팔린다. 물론 본질적으로 공연·교육·연구·보존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국립국악원과는 상황이 다르다. 국립국악원에서 굿즈 제작과 유통은 안 되는 게 아니라, 하기 어려운 구조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굿즈의 역할은 예술계 곳곳에서 더 분명해지고 있다.
국립국악원과 스펙트럼이 협업해 제작한 춘앵전 티슈케이스
굿즈가 있는 곳에서 애호가가 태어난다
생각해보면 국립국악원에서 나만의 굿즈를 모은 적이 있다. 고교 시절이던 1990년대 중후반에 나는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국립국악원 1층에 위치한 가게에 매번 들렀다. 악보나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였는데, 매번 부지런히 구매한 것은 음반이었다. ‘굿즈’보다 ‘기념품’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웠던 당시, 그것은 나만의 굿즈였고, 국악을 듣고 공부하는 데 나의 귀를 잡아준 훈련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 음반의 음원이 온라인 공간으로 무심히 들어와 무료로 유통되는 지금, 그것은 나만의 추억팔이 물건들이 돼 서가의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그때 그것들을 왜 그리 열심히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연이 끝난 후 돈을 탈탈 털어 구매한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음악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나도 공연 티켓을 애지중지 보관했다. 시인이 되고픈 이는 책 사이에 낙엽을 꽂고, 부자가 되고 싶은 이는 책 사이에 비상금을 꽂아두듯, 고교 시절부터 평론가가 되고 싶던 나는 그때 아끼던 전공 서적 사이에 티켓을 늘 꽂아두었다. 지금도 새벽에 글을 쓰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1997년, 1998년, 1999년이라고 적힌 티켓이 툭 떨어지면, 그 순간을 입구 삼아 추억의 터널로 하염없이 달리게 된다.
어쨌든 국악은 공연장 안에서만 살아남는 예술이 아니다. 지금의 관객은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경험을 계속 소유하고 싶어 한다. 이때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국악을 일상으로 이사하는 작은 문이 된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물건 하나가, 다음 공연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 국악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그의 냉장고에 붙어 있던 티켓을 떠올려본다. 그 작은 종이들은 한 사람의 시간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국악도 그런 증언을 가질 자격이 있다. 소리는 흘러가도, 기억은 남고 싶어 한다.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