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밖에서, 고전의 귀환을 기다리며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클라이스트 덕택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를 의지해서 살았다. 나는 그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이 나를 붙들어주었다. 그는 나에게 삶의 의지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내가 여러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주었다. 그저 한 여성, 그저 한 남성의 삶이 아닌 복수複數의 삶 말이다. 불붙고자 하는 의지, 불타고자 하는 의지, 죽을 정도로 열렬히 살고자 하는 의지도 그에게서 배웠다.”(『새로 태어난 여성』, 나남, 2008) ‘프랑스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작가인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이토록 상기된 목소리로 19세기 초반의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를 소개하고, 그의 작품인 ‘펜테질레아Penthesilea’1807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낯선 이름이고, 생소한 작품인가? 그도 그럴 것이, 클라이스트는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이름인 괴테가 혹평한 작가이며, ‘펜테질레아’ 또한 클라이스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거의 100년 동안 원작 그대로는 무대에 오르지 못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후 토마스 만은 클라이스트에 대한 괴테의 평가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했고, 스위스의 작가 헤르만 부르거는 “괴테가 클라이스트에게 내뱉은 그 교만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파우스트’ 2부를 포기하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하지만, 클라이스트가 죽음의 순간 떠올릴 수 있었을 평가는 “소름과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괴테의 것뿐이었을 터. 요컨대 클라이스트는 제때 변호받지 못한 채 서른넷의 나이에 생을 마쳤고, 그 때문에 흔히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불리곤 했다.
허나 인류의 역사, 특히 예술의 역사가 꾸준히 진보해왔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예술가도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될 수는 없을 터. ‘시대를 앞서간 천재’는 너무도 이상한 말이다. 예의 그 성긴 사유의 관용구 대신 나의 언어로 클라이스트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평가보다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작품이 예술가의 사후,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던 시선으로 다시 읽히고 그 새로운 시선이 지금의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판단된다면, 오래도록 잊힌 그 예술가 또한 소환돼야 마땅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토마스 만에게, 헤르만 부르거에게, 엘렌 식수에게는 보인 ‘펜테질레아’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까닭은 우리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닐까. 반복적으로 공연되는 작품들만큼이나—참조돼야 마땅한 평자들의 찬탄에도 불구하고—여전히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고전들 또한 이 시대에 대해 들려주는 말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무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펜테질레아』(지식을만드는지식, 2016)를 다시 읽어보았다.
베르텔 토르발센의 조각 <아킬레우스와 펜테질레아>(1801)
‘펜테질레아’는 사랑 이야기다.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니 찬찬히 따라가보자. 때는 바야흐로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 시기.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와 아마존족의 여왕 펜테질레아가 전투에서 마주했다. 자고로 트로이 전쟁이라 하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납치하면서 시작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사이의 전쟁일진대, 무슨 까닭으로 아마존족의 여왕이 이 전쟁에 개입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더하여 아킬레우스는 또 왜 그리스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펜테질레아와의 전투를 피하지 않는지도 아리송한 가운데, 그들은 서로를 기필코 정복하겠다며 전투를 이어간다. 끝없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사람을 얻겠다며 두 사람은 모두 ‘미친’ 선택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 때문이다. 펜테질레아는 아마존족의 법에 따라 자신이 무력으로 정복한 남자만을 사랑할 수 있고, 가부장적인 그리스 사회를 대표하는 남성인 아킬레우스 또한 사랑을 복종시키는 일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겐 승리만이 상대를 얻는 방법이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서로가 자신만의 것이길 소원하며 창을 겨누고 있을 뿐, 상대가 진정한 위기에 처하면 주저 없이 서로를 구한다. 게다가 승리한 아킬레우스는 펜테질레아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조언에 잠시나마 전투의 결과를 숨긴다. 그는 펜테질레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은 “무장해제 당했다”고 고백하고, 이에 펜테질레아는 마침내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며 환희한다. 두 사람은 실로 거짓 속에서 순연히 기뻐한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여느 동화의 결말처럼 ‘그 후로 그들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다’가 마지막 문장일 것만 같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야기는 고작 절반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때마침 들이닥친 그리스군에 의해 두 사람의 찰나의 행복은 끝이 난다. 허나 그들의 마음까지 끝난 것은 아닌 터, 그리스군으로 복귀한 아킬레우스는 책략을 세운다. 펜테질레아에게 또 한 번의 거짓 승리를 선사해 그녀를 얻어 보겠다는 것. 허나 아킬레우스에게 패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펜테질레아는 왕으로서, 전사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겹겹의 수치심을 느끼던 차, 아킬레우스의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나아간다. 거침없이 활시위를 당겨 그의 목을 관통시킨 후 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왕이자 전사로서 동경한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가장 난폭한 일’ 이상을 해낸다. 지나치게 뛰어난 전사이자, 책임감 있는 수장이며, 미련할 정도로 정직하고 순정적인 여자. 결코 단 하나의 역할로는 환원될 수 없는 펜테질레아는 이처럼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겠다며, 자신의 전부였던 사랑을 죽여,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소름 끼치지 않고는 들어줄 수 없는 괴물”이라는 한 화가의 혹평을 시작으로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는—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결코 설명될 수 없는 인물로 여겨왔다. 허나 그 누군들 쉬이 설명되던가. 더하여 수많은 전통 서사가 유독 여성 캐릭터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단순함을 요구해온 것은 결국 여성은 남성의 이야기를 위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은 아니었던가. 기실 클라이스트 이전에 전승되던 그리스 신화 속 펜테질레아는 오롯이 아킬레우스의 뒤늦은 회한을 위해 존재했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펜테질레아를 죽인 후, 그녀의 투구를 벗기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랑을 느끼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나. “여전사란 자신 속에 있는 여성을 죽여버린” 것이기에 더는 “여성이 아니”며, 하여 “그녀는 죽음을 통해서만이 다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절망적인 사유가 낳은 플롯이라고 식수가 일갈하는 전개이며, 이러한 전개 속 여성 캐릭터는 그 어떠한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여성이며, 그런 까닭으로 현실의 여성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는 허구다.
기실 ‘펜테질레아’는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여성적’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으며 현실에 존재했으나 지워진 여성들을 다시 살게 하는 전복적 글쓰기 말이다. 고릿적 남성 작가가 쓴 지독한 이성애 로맨스가 ‘여성적 글쓰기’의 모범적인 사례라니, 이상한가? 만약 그렇다면,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우리 시대의 접근이—이미 매우 다양해져왔으나—여전히 협소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대부분의 한국 여성이 어떤 위치에서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는 한, ‘여성’과 ‘서사’가 만나는 자리는 결코 그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나의 동시대가 ‘펜테질레아’를 기쁘게 맞이하는 시대가 되길 바라는 진짜 이유다. 그러니까 사실 ‘펜테질레아’의 귀환은 징후일 뿐, 진심으로 기다리는 건 극장 밖의 변화다.
글 전영지 공연 칼럼니스트·드라마터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