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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저 레고 얼마예요?

국악이나 전통예술에서 “남도는 소리, 영남은 춤”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부산과 대구를 중심으로 영남권에서 전통춤이 발달했다. 서울을 떠나 전라도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면 현지인들이 던지는 추임새는 서울보다 더 진하고 징하다. 예로부터 춤이 발달한 부산에서 지금도 전통춤 공연을 보다보면 관객들이 강한 사투리 섞인 추임새를 던지기도 한다. 춤의 고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남다른 관객 반응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이러한 영남권의 춤 기류를 해마다 영남춤축제로 퍼 올린다. 올해는 《춤추는 레고》라는 특별한 전시회도 함께 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갖고 놀던 레고로 전통춤의 장면을 묘사한 전시다. 국립부산국악원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들어섰을 때, 머리속에서 전통춤과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추억의 블록들을 맞춰보며

내가 초등학생이던 1980~90년대에는 학교 정문 앞은 문방구의 세계였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준비물을 구매하는지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 당시 문방구는 ‘어린이들의 작은 백화점’이었다.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는 불량 식품이 버젓이 나열됐고, ‘뽑기’라 불린 장난감 판매기와 ‘뿅뿅’이라 불린 오락기 등 어린이 유흥 시설(?)도 마련돼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오만가지가 다 있었지만, 레고는 없었다. 대부분 고급 백화점 완구 매장에서 유통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수입품인 데다 완구치고는 고가였기 때문인 것 같다. 간혹 국산 레고가 있기는 했지만, 정품 레고에 느낄 수 있던 디테일은 내 고사리손이 기억할 만큼 떨어졌다. 블록의 색깔도 선명하지 않았고, 완성해도 모양새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부품이 2~3개 모자라거나, 블록들 사이의 결구가 깔끔하게 세공되지 않아 ‘이’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중학생이 되며 세상에는 레고보다 재밌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레고도 중학생의 시선에 맞게 진화했다. 모터가 장착된 제품이 출시돼 완성하면 ‘전시’의 기능을 넘어 움직이고 ‘작동’되는 것이다. 타이태닉호 같은 거대한 크기의 모델도 출시됐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레고를 끊지 못했다.

레고에 블록과 함께 설명서가 동봉돼 있었는데 설명서를 따라 맞춰나갈 때는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하지만 어린이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었고, 엄마의 도움이 늘 필요했다. 완성된 후에는 며칠의 전시 시간을 거쳤다. 지금은 TV가 얇아지고 이동도 가능하지만, 당시 가정 거실마다 있던 TV는 부피가 컸다. 우리 집 TV는 나만의 레고 전시실이었다. 나만의 개인전(?)이 끝나면 또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다시 또 엄마를 조르기 시작하고, 새 제품을 획득하면 기존의 전시물은 폐기 처분, 즉 흩어진 블록의 형태로 돌아갔다.

설명서를 보며 만드는 과정에는 집중력이 필요했던 반면, 블록으로 흩어진 레고를 다시 가지고 놀거나 설명서를 분실했을 때는 상상력이 발휘됐다. 어느 날은 모친의 화난 얼굴을 못생긴 악마의 모습으로 완성해서 TV 위에 올려놓으니, 모친은 그게 뭐냐고 물으셨고 “엄마야!”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 작품은 흩어진 블록으로 돌아가 있었다.

ⓒ국립부산국악원

레고의 ‘점’과 전통춤의 ‘선’이 만나며

국립부산국악원 《춤추는 레고》에도 ‘설명서’와 작가의 ‘상상력’이 공존한다. 설명서라면 영남춤축제에 오른 전통춤이 될 것이다. 콜린 진(소진호) 작가는 전통춤을 묘사하기 위해 자신만의 설명서를 먼저 구상했을 테고, 여기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춤과 무용수들을 묘사했다.

지하 1층 다목적홀로 들어서면 인트로 영상이 펼쳐진다. 블록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전통춤의 무용수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물씬 밀려왔다. 전시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드러운 선, 춤이 시작된다’라는 주제를 담은 실감 전시실에는 개막 공연을 장식한 무고부터 선유락·춘앵전·동래학춤·금회북춤 등 전통춤을 만날 수 있다. 레고 블록은 직선과 점의 언어이고, 한국의 전통춤은 곡선과 호흡의 예술이다. 블록의 픽셀과 점이 모여 전통춤이 지닌 선의 아름다움이 흥미롭다.

두 번째 섹션은 탈춤과 탈을 만날 수 있는 ‘탈을 쓰고, 세상을 비추다’ 섹션이다. 영남권에서 전승되는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말뚝이·각시·원양반의 탈과, 탈춤의 여러 과장(부분)을 이루는 장면들을 레고 블록으로 묘사해놓았다. 세 번째 섹션은 ‘나만의 춤사위 만들기’다. 제목처럼 관람객이 레고 블록을 이용해 갖고 놀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사람들은 공연이나 전시에서 본 전통춤의 장면들을 자기만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끌어와 각자의 춤사위를 블록 위에 입혔다.

레고는 1932년 덴마크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설립한 목공소에서 나무 장난감으로 제작돼 플라스틱 블록 완구로 진화했다. ‘LEGO’라는 이름은 덴마크어 ‘leg godt’에서 유래했는데, ‘잘 놀자play well’는 의미다. 완구에 담긴 놀이와 유희의 철학은 영남의 전통춤에도 잘 담겨 있다. 하위징아는 인간이 지닌 놀이의 본능을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호모루덴스를 춤과 연결지어 살짝 비틀면 ‘호모루댄스dance’가 된다. 즉 놀이와 춤은 어떻게든 통한다는 말일 것이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미쳐서 갖고 놀던 레고였지만,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그만큼 뜨거운 장난감은 아닌가 보다. 어떤 아이는 전시실 한구석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눈빛이 이글이글했다. 그 역시 나처럼 어린 시절, 레고와의 추억에 깊이 빠져 있는 듯했다. 더불어 국립부산국악원은 법률상 굿즈 제작과 판매를 할 수 없는데, 개정돼 이런 굿즈도 나왔으면 한다.

송현민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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