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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역사가 그 바람처럼 관통한 공간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에 있다. 백제 건국 때부터 치자면 2천 년 이상이요, 지속성으로 따지자면 조선 건국 이래로 630년 넘게 ‘수도 서울’의 위상이 이어졌다. 그런 서울에서도 역사와 역동성의 공존이 가장 극명한 곳이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 서울’이다.

호텔 정문으로 곧장 들어서지 말고, 뒤뜰을 좀 거닐어보자. 팔각 지붕이 3개 층으로 쌓인 화려한 전통 건축물이 고층 빌딩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옛 환구단 터를 지키고 선 황궁우다. 고종이 1897년 이곳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사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고대 농경사회의 제천 의례는 고려 시대 원구제로 이어졌다. 조선에서는 1457년 세조가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꽤 오래 중단된 환구단 제사를 고종이 재개했다. 고려 때 명나라가 “하늘에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황제뿐”이라며 제후국 고려의 원구제를 폐지하게 했다. 이 같은 역사를 떠올린다면 자주국의 위상을 강조했던 고종이 굳이 환구단 제사와 함께 황제 즉위식을 개최한 것이나,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기어이 호텔 부지로 환구단 자리를 택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환구대가 헐린 터에 홀로 남은 황궁우는 고종의 지시로 1899년에 완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1888년 개항기 인천에 세워진 일본식 ‘대불호텔’이며, 두 번째 호텔이자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1902년 서울 중구 정동에 ‘손탁호텔’이 들어섰다. 1914년 건립된 조선호텔은 본격적인 호텔업의 시작을 알렸다. 일제 강점기 철도국이 관할한 ‘조선철도호텔’로 시작해 광복 직후 ‘조선호텔’이 됐다. 6.25 전쟁 때는 북한군이 점령했고, 서울 수복 이후에는 미군 휴양소로 사용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은 신세계그룹 계열사 중 하나로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호텔로 우뚝 섰다.

호텔의 품격은 로비의 예술품이 말해준다. 웨스틴 조선의 로비 한가운데를 차지한 작품은 영국의 조각 거장 헨리 무어의 1985년 작 <피난처 속 형상Figure in a Shelter>이다. 헨리 무어의 대표 시리즈 ‘와상Declining Figure’ 중 한 점은 2016년 6월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360억 원에 낙찰된 적 있다.

헨리 무어는 조각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중요한 작가다. 기념비와 인물상 위주로 전개되던 조각의 역사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오귀스트 로댕은 사실적인 인체 묘사에 적나라한 감정까지 담아내며 현대 조각의 서막을 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추상 조각’을 개척한 조각가가 있으니 알베르토 자코메티·콩스탕탱 브랑쿠시, 그리고 헨리 무어다.

영국에서도 제일 춥다는 요크셔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무어는 천부적 재능으로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는데 고전적 교육을 받았음에도 1925년 파리에서 본 아즈텍 문명의 조각들을 보고 마음을 뺏긴다. 유수의 박물관·미술관을 다니며 숱한 작품을 봤건만 근원적이고 아름다움은 정작 원시미술에 있었던 것. 파블로 피카소 등 당시 미술인들이 가장 오래된 원시예술에서 가장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찾으려 한 것이 일종의 유행이기도 했다.

이곳 호텔 로비의 작품은 참전 군인의 투구 같은 두 개의 반구형 구조물 속에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앉은 생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품이 가장 따뜻한 피난처 아니겠는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가스를 마시기도 했던 무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바로 이 ‘헬멧Helmet’ 시리즈를 시작했고, 평생의 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전쟁 상황이 더욱 갈구하게 만드는 피신과 안온의 감정을, 그는 유려한 형태의 추상 조각으로 그려냈다.

천천히 걸어 조각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자. 육중한 청동 조각이지만 강가에 뒹구는 조약돌 같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녔다. 파도와 바람에 쓸리기라도 한 듯한 표면도 돌멩이를 닮았다. 반듯하고 매끈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대신 다정한 생동감을 얻었다. 둥근 껍질의 안쪽이 아늑한 동굴 같다. 세모꼴·타원형 등으로 빚은 형상을 인물처럼 볼 수도 있지만 산 위로 달이 뜬 풍경이라 해도 상관없겠다. 옛 환구단을 품은 세련된 현대식 호텔 로비에 생명을 품은 동굴 형상의 작품이라니 더욱 상징성이 크게 느껴진다. 무어의 조각은 2012년 1월에 설치돼 1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와 시간이 그 바람처럼 호텔을 관통한다.

글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살아남은 그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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