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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이게 다, 노트북 때문이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작업할 무장을 마쳤다는 뜻이다. 급하게 확인해야 할 건이 있는데, 지나가던 길이나 로비에 작은 테이블이라도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 더운 여름이라면 에어컨이 가동되고, 옆에 정수기라도 있다면 더더욱 고맙다.

문제는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다. 급하게 들어간 카페에서 콘센트가 있는 자리부터 탐색해야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에 비하자면 콘센트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럴 때마다 머릿속에는 묘하게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떠오른다.

우리의 콘센트를 찾아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1991년 방송을 시작해 20년 넘는 세월 동안 라디오 전파를 탄 프로그램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민요·굿·노동요·상엿소리 같은 전래 음악은 물론 대숲을 스치는 바람과 냇가의 물소리까지 기록한 라디오 다큐멘터리로, 단순한 ‘음악 프로그램’이라기보다 문화 인류학적 보고라 해도 좋겠다.

어느 기사인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최상일 프로듀서의 유언은 이러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배터리와 함께 묻어달라”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오지에서 전승되는 한국의 전래 노래를 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프로듀서는 산을 넘고, 강 건너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그 소리를 채집하기 위한 녹음 장비의 배터리는 지금보다 훨씬 컸겠지만, 그 기능은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노래가 풀리며, 한 많은 세월의 빗장이 풀리고, 희로애락의 선율을 녹음테이프에 담을 때, 배터리가 방전되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통음악의 그린벨트로 탐사를 떠난 소리의 모험가는 결국 소리의 발견에 기뻐하지만, 방전되는 배터리의 공포와 사투해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떠오른 이유는 배터리 공포에 시달린 프로듀서의 유언(?)과, 나 역시 ‘우리의 콘센트를 찾아서’ 방황하기 때문이다. “충남 연기군 ○○○씨가 소 모는 소리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의 소개 멘트처럼, 지금의 21세기를 넘어 28세기가 되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이런 노래가 나올지도 모른다. “이곳으로 가도~ 막혀 있고~ 저곳으로 가도~ 막혀 있고~ 이 소리는 서울 어느 음악평론가가 카페에서 콘센트 찾는 소리입니다.”

노트북이 있으면 편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합리적 이성이 오히려 정신병이라는 사회악을 만들고, 편리한 자동차가 도로 체증을 빚는다는 철학자 푸코의 분석처럼.

예전에 깊은 산속에서 열린 사찰 음악회를 취재하러 갔을 때다. 불교음악도 한국 전통음악의 한 갈래다. 신자들에게는 종교의 음악이지만, 종교와 무관한 이에게는 예부터 전승되는 전통음악이자 문화유산이다.

공연장 무대 위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인공적인 세련미는 다소 떨어졌지만, 대신 적막한 산사와 자연을 채우는 불교음악은 인상적이었다. 소리가 반사되는 물질이 도시와 공연장을 채우는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을 이루는 산·꽃·나무일 때 그 소리는 우리의 감동에 더 진하게 남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이 현장을 급히 담아 원고를 신속히 송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술에 관심이 많던 스님은 내 옆에 딱 붙어 설명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스님께 물었다. “스님, 혹시 와이파이가 되나요?”

평소 어딜 가든지 자주 묻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산사가 아니던가! 스님의 눈빛은 “굳이 이 탈속의 공간에서?”라는 질문을 담고 있었고, 거기에 응수하는 나의 눈빛은 “그것이 있어야 저는 노트북을 타고 해탈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변하는 듯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원고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유서를 쓸 일이 있으면 이렇게 적고 싶었다. “나 죽으면 와이파이존에 묻어달라고.” 이게 모두 노트북 때문이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본의 아니게 찍게 된, 한 편의 ‘전원-일기’

섬진강으로 취재하러 갔을 때였다. 섬진강은 판소리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 강을 중심으로 서쪽(서편)에서 발전한 소리를 ‘서편제’, 동쪽을 중심으로 한 소리를 ‘동편제’라 부르기 때문이다. ‘서편제’는 음악 전문 용어의 하나로 태어났지만,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면서 많은 이에게 잘 알려졌다.

섬진강 인근의 생가를 찾은 판소리 명인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특히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을 보냈던 명인은 나의 이해를 돕고자 드라마 <전원일기>를 계속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툇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이야기를 듣던 중 이제는 노트북을 펼쳐 본격적인 이야기를 담아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가방에서 꺼낸 노트북에는 전원 버튼이 빠져 있었고, 살펴보니 아주 뾰족한 것을 찔러 넣어야 할 것 같았다. 휴대하는 연필은 심이 너무 두꺼웠다. 일상에서 ‘뾰족한 수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노트북을 들고 헤매고 있으니, 명인은 자신도 잠시 쉬고 있을 테니 묘수를 찾으라고 했다. 집 앞으로 아주 작은 냇물이 흘렀는데, 잠시 발을 담근 명인은 어린 시절 생각이 났는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평소 무대에서 정통 판소리만 부르던 노장의 목이 잠시 샛길로 빠져들며 어디선가 들어본 트로트 가락을 흥얼거리는데, 판소리의 구성진 기법이 파놓은 길로 흐르는 트로트가 여간 맛있게 들리는 것이 아니던가! 동행한 이들도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이것을 들어야 한다고 호들갑이었다.

하지만 나는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대신해야 할 뾰족한 것을 찾아야 했다. 산속에 잔잔히 울리는 명인의 노랫소리와 함께, 자연과 전원田園을 벗 삼아, 나는 온갖 것을 다 넣어보았다. 이쑤시개처럼 가느다란 나무부터 심지어 민들레 줄기까지. ‘전원’ 버튼 구멍에 온갖 자연을 다 집어넣어본, 나만의 ‘전원-일기’를 그렇게 완성했다. 결국 이것도 노트북 때문이었다.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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