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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밥은?”이라는 말
-밥빼기와 밥심

경산의 한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강연하는 날이었다. 행사장인 도서관에 일찍 도착해 이리저리 둘러보다 잠시 쉬려고 자리에 앉았다. 앉은 자리 바로 옆에 국어사전이 놓여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리로 손을 뻗었다. 앉은 자리가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를 뜻하는 ‘앉은자리’가 되던 순간이었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는 ‘밥’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한가득했다. 밥솥 뚜껑을 열고 갓 익은 밥을 주걱으로 조심스레 뒤섞듯 단어 하나하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사전을 보시네요?” 선생님 한 분이 놀란 말투로 물으셨다. “저는 사전이 제일 재미있어요.”

처음 마주친 단어는 ‘밥풀눈’이었다. “눈꺼풀에 밥알 같은 군살이 붙어 있는 눈”이라는 뜻인데, 밥풀눈을 가진 사람은 ‘밥풀눈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먹을 복 있다고 얘기하는 그 눈, 웃을 때 더욱 도도록하게 도드라지는 눈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에 눈길이 간 단어는 ‘밥빼기’였다. 난생처음 만난 단어였지만, 예문을 읽어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도 했다. 밥빼기는 “동생이 생긴 뒤에 아우 타느라고 밥을 많이 먹는 아이”를 뜻하는데, 예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전에는 잘 안 먹던 아이가 동생이 생긴 뒤로 갑자기 밥빼기가 되었다.” 심리적 허기를 달랠 방도가 달리 없어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었을 맏이를 생각하니 측은하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단어의 모험은 이제 시작이다. 첫걸음으로 아우를 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 ‘타다’를 찾아보았다. 아우를 타는 것은 영향을 쉽게 받는 것, 자극에 취약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아우를 타면 먼저 태어난 젖먹이는 관심을 덜 받게 되어 여위기 마련인데, 그 상태를 극복하고자 밥빼기의 상태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잘 먹는 것으로 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뺄셈하는 것을 의미하는 빼기는 아닐 테니, 이제는 접미사 ‘-빼기’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접미사 ‘-빼기’는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를 일컫는데, 곱빼기·밥빼기·악착빼기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곱의 성질, 악착의 양상을 떠올리니 고개를 절로 끄덕여졌다.

세 시간 넘게 이어진 강연은 9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역에서 강연을 막 마쳤다고 하니 다급하게 묻는다. “밥은?” 별안간 튀어나온 친구의 물음에 웃음이 터졌다. 의례적인 인사였겠지만, 밥을 담은 단어들을 강연 전에 그릇째 섭취한 터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강연장에서의 환대 덕분이기도 했으나, 상대가 쓰는 따뜻한 마음에 허기가 완전히 가신 것이다. 보통은 배부름이 마음 부름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마음 부름이 배부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가신 허기가 금세 다시 오신 것이다. 우연이 필연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마음 부른 내면이 더 이상 배고픔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웠으니 채워야 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른밥이든 까치밥이든 달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장에서 받은 샌드위치를 꺼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천천히 그것을 씹으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끼니때가 지난 뒤에 차리는 밥”을 ‘한밥’이라고 하고 “먹다가 그릇에 남긴 밥”을 ‘대궁밥’이라고 한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머릿속으로는 한밥과 대궁밥을 생각하자니 사람에게 밥때가 왜 있는지, “누에 몸에 광택이 나고 살이 찌며 식욕이 가장 왕성한 시기”를 가리켜 왜 ‘한밥때’라고 하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밥은?”이라는 말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끝끝내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국수나 떡, 과자 같은 것 없이 밥과 몇 가지의 반찬만으로 차려서 벌이는 간단한 잔치”를 ‘밥잔치’라고 하는데, 이 또한 한국 사회에서 밥이 갖는 굳건한 위상을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그릇 위까지 수북하게 담은 밥”은 ‘고봉밥’ 혹은 ‘감투밥’이라 불린다. 고봉은 외따로 높은 산봉우리를 뜻하는 고봉高峯이 아니다. 높게[高] 받든다[捧]는 의미의 고봉高捧이다. 감투는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의 하나”인데, “벼슬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높게 받든다는 말이다. 밥 먹는 게 다름 아닌 벼슬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감투밥이나 고봉밥을 주는 마음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에 대한 곡진한 마음 없이는 밥 푸는 손은 거칠 수밖에 없다. 고슬고슬 익은 밥알이 다치지 않도록 주걱으로 젓고 그것을 적당히 덜어내는 손길을 떠올려보라. “아기에게 처음으로 밥을 먹일 적에, 밥을 미리 씹어서 아기에게 되먹이는 일”을 가리키는 ‘밥물림’은 또 어떤가. 먹고 살고 사랑하는 일이 모두 밥 안에 있다. 밥알에 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밥은 ‘옥밥’이라 불리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관용적으로 쓰이는 ‘콩밥’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또한 ‘옥밥’이다. 밥을 지을 때 넣는 재료에 따라 연잎밥·달걀밥·기장밥·비지밥·도토리밥·보리밥·강냉이밥·콩나물밥·산나물밥 등이 만들어지기도 하니, 비읍으로 시작해서 비읍으로 끝나는 밥답게 밥은 순환하는 것 같다. 한편, “솥 안에 쌀을 언덕지게 안쳐서 한쪽은 질게, 다른 쪽은 되게 지은 밥”은 ‘언덕밥’이라 불린다. 취향이 더욱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어떤 집에서는 의도적으로 언덕밥을 짓기도 할 것이다. “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붙어 지내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가리켜 ‘드난’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얻어먹는 밥은 ‘드난밥’이다. 어느 정도는 ‘눈칫밥’일 것이다.

밥이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다른 말로 ‘밥자리’나 ‘밥바가지’라고 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졸시 「이력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밥을 먹고 쓰는 것. /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밥벌이가 숭고한 이유다. 한편, 밥을 하면 떠오르곤 하는 단어에 ‘축내다’도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밥주머니’가 있고 “밥을 제대로 삭이지 못해서 하는 지랄이라는 뜻으로, 놀고먹으면서 하는 일 없는 사람이 저지르는 쓸모없거나 못된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가리켜 ‘밥지랄’이라고 한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밥이 있는 셈이다. 먹어도 못 먹어도, 많이 먹어서 적게 먹어서, 빨리 먹어도 천천히 먹어도, 밥값을 해서 하지 못해서, 우리는 늘 밥상머리 앞뒤에서 밥을 이야기한다.

죽은 사람을 위해 젯밥을 짓는 것까지가 밥의 역할이다. 삶의 시작부터 죽음 이후까지를 아우르는 데 밥이 있다. 그것을 둘러싼 간절한 마음이 밥심이고, 그것으로 발휘되는 힘이 밥심[力]일 것이다. 끼니가 다가오는 한, 밥심은 닳는 법이 없다.

글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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