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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자유롭게 환상을 누비는
프랑크 소나타를 들으며

‘오월의 신부’가 관용어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오월에는 결혼식도 많다. 바쁠 때는 일일이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고, 다른 지인을 시켜 축의금이나 선물을 전달할 때도 있다. 선물로는 무엇이 좋을까? 가전제품? 주방용품?

1886년 어느 아침,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는 작곡가 샤를 보르드로부터 꾸러미를 받았다. “이거, 세자르 프랑크 선생님이 전해달라고 한 선물이야. 오늘 못 온다고 하셨어.” “선물이라고?” 이자이는 선물을 열어보았다. 그것은 새 바이올린 소나타의 악보였다.

이자이는 대충 악보를 읽어본 뒤 이 곡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인지 느꼈을 것이다. 새신랑에게는 정신없는 하루였겠지만, 그는 보르드의 여동생으로 그와 함께 온 피아니스트 마리 레옹틴 보르드와 당장 연습에 돌입했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새 소나타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의 공개 연주는 두 달 남짓 지난 뒤 통상의 연주회장이 아닌 브뤼셀 왕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역시 이자이와 마리 레옹틴 보르드의 연주였다. 곡을 연주할 시간이 되자 황혼이 내리고 연주회장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미술관 측은 “미술품 보호를 위해 조명은 안 된다”고 고집했다. 첫 악장에서는 어찌어찌 악보를 볼 수 있었지만, 나머지 세 악장은 연습 때의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프랑크의 제자였던 작곡가 뱅상 당디의 회상이다.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는 음반도 많이 나와 있고 음악 애호가들도 제법 좋아하는 곡이지만, 연주자들이 유독 이 곡을 더 사랑하는 편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만든 곡이지만 첼리스트와 플루티스트도 원래 첼로나 플루트를 위해 쓰인 것처럼 즐겨 연주한다. 심지어 색소폰이나 튜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주자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주자들이 유독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곡에는 프랑크가 가진 고유한 장기가 꼭꼭 다지듯 집약되어 있다. 몇 가지만 들자면, 순환형식, 돌림노래, 잦은 조바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순환형식이란 앞의 악장에 나온 선율이나 동기(모티브)를 뒤의 악장에 다시 불러내는 것을 말한다. 약간 바꿔서 쓰거나, 거의 그대로 가져오기도 한다. 이는 사실 베를리오즈나 리스트를 비롯해 앞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순환형식을 사용하면 처음엔 불분명했던 것들이 뒤로 갈수록 모이면서 통일되고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돌림노래는 더 설명하기 쉽다. 돌림노래는 사실 카논이라는 더 큰 양식의 일종이며, ‘가장 간단한 형태의 카논’으로 불리기도 한다. ‘파헬벨의 카논’으로 익숙한 그 카논이다. 한 주제가 나온 뒤 다른 사람들이 그 주제를 반복하거나 규칙에 따라 바꾸면서 화음을 맞춰 나가면 그걸 카논이라고 하고, 주제를 바꿀 필요도 없이 그대로 뒤쫓아 가면 돌림노래다. 영어로는 ‘round’(빙빙돌기)라고 한다. ‘오리는 꽥꽥’,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같은 노래를 여러 명이 시간차를 두고 시작하면 화음을 이루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된다.

소나타 A장조의 마지막 4악장에서 프랑크는 이 돌림노래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 피아노가 앞서가고, 바이올린이 쫓아간다. 프랑크는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돌림노래 또는 카논을 애용했다. 이 소나타와 함께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작품인 성가곡 ‘생명의 양식’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다른 대표작인 교향곡 D단조, 교향시 ‘속죄’ 등에서도 돌림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곡의 마지막 매력으로는 프랑크 특유의 잦은 조바꿈(전조轉調)을 들 수 있다. 프랑크는 섬세한 조바꿈을 통해 환상적인 효과를 내는 데 달인이었다. 앞에서 소나타의 공식 초연 장면에 대한 기록을 남긴 작곡가 댕디는 스승 프랑크가 제자들이 제출한 작품에 몇 줄 동안 조바꿈이 나오지 않으면 작품이 단조롭다며 바로 주의를 줬다고 회상했다. 이런 자유로운 조바꿈 때문에, 연주자들은 프랑크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마치 공중에 뜬 사다리를 휙휙 갈아타는 듯이 자유롭고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필자는 대략 30년 전 이미 ‘왜 다양한 악기의 연주자들이 이 곡을 이렇게도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때 4월과 5월 두 달 동안 국내 첼리스트와 플루티스트 등 연주자 다섯 명, 그리고 내한해 공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이 곡을 연주했다. 몇몇 연주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한 플루티스트는 이 곡의 다채로운 조바꿈이 마치 프리즘으로 분할한 빛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 첼리스트는 “멜랑콜리와 단순미가 훌륭히 혼합된 곡이다. 바이올린 악보 그대로 연주해도 기술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첼리스트는 “화음이 오묘하고 깊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곡을 초연한 이자이로 돌아가면, 그가 선물로 받은 바이올린곡은 이 소나타뿐이 아니었다. 그는 ‘명곡 헌정 받기의 역사’에서 챔피언으로 꼽을 만하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유일한 현악 4중주곡을 이자이에게 헌정했고,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운동의 선구자인 카미유 생상스도 첫 번째 현악 4중주곡을 그에게 줬다.

왜 그가 유독 많은 작곡가로부터 작품을 헌정 받았을까. 작곡가들의 의도에 맞춰 작품을 해석해주는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자이 자신도 수많은 바이올린곡을 작곡해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줬다. 그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한 여섯 곡의 소나타는 당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인 시게티· 티보· 에네스쿠· 크라이슬러· 크릭붐· 키로가의 연주 스타일에 맞춰 썼고, 이들에게 각각 헌정했다.

이자이가 프랑크의 소나타를 처음 연주한 그 아름다운 날이 오월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는 글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은 오월 못지않게 아름다운 9월이었다. 대신 올해 5월 12일은 시대를 뛰어넘은 명바이올리니스트이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여섯 곡을 비롯해 수많은 명작을 쓴 작곡가이기도 한 외젠 이자이의 타계 94주년이다. 이달에도 바이올린과 첼로를 비롯한 여러 연주자의 프랑크 소나타 A장조 연주가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다.

프랑크 소나타 실황이 궁금하다면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5월 1일 오후 7시 30분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외
한재민&알렉산더 말로페예프 듀오 리사이틀
5월 29일 오후 7시 30분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랑크 소나타 A장조(첼로 버전), 드뷔시 첼로 소나타 외

글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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