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말러,
호숫가의 두 남자
요하네스 브람스의 교향곡 2번 4악장.
시작부터 활기로 넘쳐 오르던 전체 합주가
잦아들고, 저미는 듯한 현의 반주 위에
목관이 나직한 음형 音形을 연주한다.
라-미-파-도-미-시, 세 음 떨어졌다가
한 음 올라가고, 다시 세 음 떨어졌다가
한 음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음? 이런 순간이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있는데?’ 말러 교향곡 1번 1악장
시작부가 그렇다. 현의 미세한 반주 위에
목관이 세 음 떨어졌다가 한 음 올라가는
음형을 반복한다. 이 부분만을 떼어놓고
들려준다면, 혼동하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브람스와 말러는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작곡 거장이었다.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은 1877년, 말러의
교향곡 1번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888년에 나왔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작품을 알고 있었을까? 또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기는 했을까?
물론,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90년, 말러
교향곡 1번이 세상에 나오고 2년 뒤였다.
당시 30세의 말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 감독이었고, 브람스는
부다페스트 음악원 교수들의 초청으로
이 도시를 방문했다. 교수들은 “천재
지휘자가 오늘 밤 모차르트 ‘돈 조반니’를
지휘합니다. 보러 가실까요”라고 제안했다.
평범한 지휘자들의 무대를 못 견뎌 하던
브람스는 강권에 못 이겨 박스석에
들어간 뒤 뒷줄 소파에 몸을 눕혔다. 서곡이
끝나자 브람스는 무대가 잘 보이는 앞줄로
자리를 옮겼고, 1막이 끝나자 달려 나가
말러를 껴안았다.
6년 뒤인 1896년, 말러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넘어 전 유럽에서 음악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인 빈
궁정오페라(현 빈 국립오페라) 감독직을
노리고 있었다. 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원로 브람스가 한마디만 거들어준다면
큰 도움이 될 일이었다.
말러는 잘츠부르크 근교 호수 지대인
잘츠카머구트 지역의 중심 도시인 바트
이슐에 있는 브람스의 집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은 호수로 유입되는 트라운 강가를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브람스는 바그너의
영향 속에 있는 당대의 혁신적인 음악에
대해 계속해서 따가운 말을 쏟아놓고
있었다. 이 점을 상기하면 그는 말러가
작곡한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말러야말로 당시 작곡계에서 가장
대담한 혁신가였기 때문이다. 또는 일부러
도발한 것일까?
그때 강물을 바라보던 말러가 브람스의
팔을 잡고 외쳤다. “박사님, 보세요!”
“무슨 일인가?” 놀란 브람스가 묻자 말러는
말했다. “저기 마지막 물결이 가고 있어요!”
브람스는 그 말을 즉각 이해했다. 모든
물결엔 다음이 따르는 것이지 자신의
세대만 진실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도
주저 없이 답했다. “좋은 얘기일세.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물결이 바다로 들어갈지,
늪에서 멈출지 모른다는 것이지.”
말러는 브람스의 집을 나서면서 창문으로
브람스의 모습을 한 번 더 흘깃 보았다.
혼자 사는 브람스는 소시지와 빵을 오븐에
데워 식탁으로 나르고 있었고, 얼굴은
황달기가 뚜렷한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날 준 것인지, 나중에 우편으로 보냈는지
모르지만 이즈음 말러는 교향곡 2번 ‘부활’
악보를 브람스에게 증정했다. 브람스는
특히 기괴함과 번쩍이는 빛이 공존하는
2악장을 마음에 들어 하며 ‘천재의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는 지금까지
반란군(음악계의 보수파와 경향을
달리하는 신세대 작곡가들)의 수장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가 말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람스는 말러를 만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와 말러가 걷던 트라운강은 근처의
트라운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브람스가
살던 바트 이슐은 수많은 호수와 산이
산재한 지역의 중심지였다. 브람스와
말러가 공통으로 사랑한 대상이 있다.
그것은 호수였다.
말러 교향곡 1번과 닮은 부분이 있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은 그의 여름 휴가지인
오스트리아 남부 뵈르터 호숫가의 작은
도시 푀르차흐에서 작곡됐다. 뵈르터
호수는 동서로 기다란 모습을 한 호수다.
푀르차흐는 이 긴 호수의 중간 북쪽에 있다.
브람스는 특히 이곳에서 호수 서쪽으로
황혼이 지는 모습을 사랑했다고 한다.
1악장 서두의 느긋한 부분이 무엇보다
석양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앞에 언급한 4악장 중간의 고요한 부분도
황혼을 연상시킨다.
이 호수의 남동쪽, 사람이 거의 없어
마을이라고 하기는 어색하지만
마이어니히라고 하는 지역의 호숫가에
말러의 ‘여름 작곡 별장’이 있다. 말러는
빈 궁정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하던
1900년부터 1907년까지 오페라가
공연되지 않는 여름마다 이곳에 와서
작곡에 몰두했다. 호숫가에는 가족이
지내는 집이 있고, 여기서 오솔길을 따라
언덕으로 걸어 올라가면 작은 피아노와
책상이 놓인 한 칸짜리 작은 오두막이 있다.
이곳이 말러의 작업실이다.
말러는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기 전에도
호숫가 작업실이 있었다. 1893~1896년
사용한 아터 호숫가의 오두막이다.
아터 호수는 그가 브람스를 만난 바트
이슐에서도 도보로 방문이 가능한 거리다.
반대 방향으로 그만큼을 걸어가면 관광
명소로 유명한 호숫가 마을 할슈타트와
할슈타트 호수가 나온다.
필자는 20여 년 전 4월 마지막 날
할슈타트를 처음 찾았다. 여행 시즌이
아니어서인지 마주치는 관광객은 없다시피
했고, 호수에 면한 널찍한 방을 잡았다.
새벽, 머릿속에서 어딘가가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
깊은 잠에서 차츰 의식이 깨어난 것은
호숫가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쿵’ 하는 대포 소리 같은 것이
들렸고, 멀리서 트럼펫의 팡파르가
이어졌다. 팡파르는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든 것이 말러 교향곡 1번 시작 부분과
일치하는 소리의 정경이었다. 이 악장
첫 마디부터 이어지는 현의 높은 소리는
새벽이면 외부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사람이 느끼는 ‘찡-’ 하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모방했다고 한다.
대포와 팡파르는 무엇이었을까. 그날은
세계 근로자의 날이었다. 이날을 축하하는
밴드의 행진이 멀리서부터 마을로 다가와
마침내 내가 머무는 숙소 앞을 지나갔다.
말러도 똑같은 소리의 풍경을 접한 일이
있을까. 그 모든 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두 작곡가의 교향곡이 궁금하다면
롯데와 함께하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합동연주회
KBS교향악단×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정명훈, 피아노 선우예권·이가라시 카오루코,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0번, 말러 교향곡 1번
KBS교향악단×정명훈의 브람스 I, II
지휘 정명훈, 브람스 교향곡 1·2번
글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