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쥭박쥭 서울
사투리
서울 토박이가 쓰는 말,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말, 스스로가 서울 사람이라고 믿고 쓰는 말. 모두가 서울말이다. 그것이 표준어와 같고 다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서울의 향기가 나는 말, 서울의 역사가 담긴 말, 서울에서 가장 먼저 쓰이기 시작했을 듯한 말 모두가 서울말이다.
『서울의 말들』, 10쪽
오래된 서울 사진이나 영상을 가져와 현재의 서울과 비교하는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좋아한다. 대학생 때도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을 몹시 좋아했던 걸 보면 갑자기 생긴 취향은 아닌 듯하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사는 곳의 예전 모습과 그곳을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문득 우리 동네의 오늘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 이 영상은 ‘21세기 초 서울 마포구 영상. 촬영자 미상’ 정도로 돌아다닐 수 있겠지. 촬영자는 몰라도 연대는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나는 느끼지 못하는 분명한 표식이 있을 테다. 지금의 내가 예전 영상 속 ‘서울 사투리’를 단박에 발견하는 걸 보면 말이다.
『서울의 말들』2024이 나왔다. 유유출판사에서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말들 시리즈’에서 드디어 사투리를 다룬 것이다. 서울과 충청이 나왔고, 곧 전라와 경상이 나올 예정이란다. ‘말들 시리즈’는 영화나 책·다큐·예능 프로그램, 일상에서 특정 주제에 맞는 문장 100개를 찾아 그에 관한 저자의 단상을 담아내는 책이다. 이번 시리즈는 다양한 정서를 품은 우리네 말이 자꾸만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각 지역과 연고가 있는 저자들이 사투리가 들어간 문장을 살뜰히 그러모아 우리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살피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사투리 관련 책은 워낙에 나오지 않는 편이고, 나왔더라도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획 의도가 몹시 반가웠다. 그런데도 『서울의 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당연히 서울에도 사투리가 있음을 알면서도 순간 놀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기반으로 정해졌고, 그렇기에 서울말이 방언의 한 종류라고 의식할 수 있는 순간은 몹시 드무니까.
책은 내가 인터넷으로 휙휙 넘겨 보던 예전 서울 사진을 공들여 읽는 과정이었다. 재밌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서울의 말들』에 수록된 문장 대부분의 출처는 192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가 주를 이룬다. 이 시기는 전국 각지에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몰려들기 직전이다. 반나절 생활권인 지금보다 교류가 훨씬 적던 때이기에 서울 특유의 말씨와 단어가 유독 생생했다. 그래선지 100개 문장을 읽으면서 자주 깜짝 놀랐다. 문장 전체를 읽어도 뜻이 가늠조차 안 되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잊고 산 단어도 있고, 또 어떤 단어는 너무 곱고 예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빨래말미’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여름철 지루하게 계속되던 장마 속에 날이 잠깐 들어서 옷을 빨아 말릴 만한 겨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 한 꾸미 주세요’라던 말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꾸미’는 국이나 찌개에 넣는 약간의 고기붙이를 뜻하는데, 고기가 너무 귀해 이 정도 양을 사고파는 시절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신기료장수’는 어떻고. “신 기우려~”라고 외치며 신을 깁고 고쳐주던 이가 있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신발을 고치지 않고 신다 버리니 자연스레 사라져버린 말이다.
고쳐야 할 대상이 사라졌으니 고치는 사람이 사라지고 뒤이어 말까지 사라졌다.
『서울의 말들』, 65쪽
‘동그랑땡은 동그랑땡이지!’라며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는데, 1969년 기사를 보니 ‘동그랑땡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은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었다. 서울내기 현진건 소설가의 작품에 나오는 ‘젊으신네’ 호칭도 인상 깊다. 서울 특유의 거리감 있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듯해서다. 당시 사람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상투적인 말씨를 썼지만, 말에는 고유한 지문이 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에도 특정 삶의 지문과 시절의 지문이 계속해서 묻어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저자는 표준어에서 서울말을 골라내 모으고, 그 골라내는 기준을 세우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을 테다. 방언은 어디서 발견하면 방언인 줄 알아챌 수 있는데, 서울말은 여간 쉽지 않았을 듯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집필을 마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감히 짐작건대 단순히 학자로서의 열망만 있지는 않았을 테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읽는 우리에게도. 나만 해도 이 독서 행위에는 말하는 이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다는 좋은 욕심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매일 쏟아지는 신간 중에 굳이 『서울의 말들』을 발견하여 낯선 말의 뜻을 고민하고, 말의 억양과 맥락을 세심히 살펴 읽는 일. 무인도에 살았다면 결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 남자의 편지 속에 있는 ‘뒤쥭박쥭’이란 말이 서울말의 매력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그렇게 각지에서 온 여러 사람들의 말이 섞였으니 그것이 표준어가 될 수 있고 그 말로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말들』, 12쪽
[문화+서울] 4월호 칼럼에서 『서울의 워커홀릭들』을 소개하며 서울은 ‘가장 화려한 회색 도시’라고 말한 적 있다. 이제는 여러 색깔이 섞이고 섞인 회색이라는 걸 알기에, 이 회색 도시에서 회색의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서울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전국 각지의 말들과 그네들의 색깔이 조금씩 조금씩 묻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다채로운 회색의 말을 쓰게 될까?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사투리가 억양만 남고 너무나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던 차에 몹시 반가운 책이었다. 다른 지역들의 말맛도 하나씩 차근히 느끼러 가볼까.
글 손정승 『아무튼, 드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