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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2019에 이렇게 썼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김영하는 이어 적었다.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거의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여행만을 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출발과 도착 예정 시간을 포함해 어떤 식당에서 어느 정도 줄을 서서 어떤 메뉴를 먹어야 ‘실패’하지 않을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무엇을 볼지도 사전에 예습하고 간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엉뚱한’ 전시실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최적의 경로로 봐야 할 유물이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체크한다. 우연이라는 것은, 21세기의 여행자들이 큰맘 먹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모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원하지 않았던 우연이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는 모험으로 내몰린다. 긍정적인 방식으로든 부정적인 방식으로든.

영화 <6번 칸Compartment No.6 > 2023의 주인공은 핀란드 유학생인 라우라다. 라우라는 모스크바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데, 모스크바를 떠나 무르만스크에 암각화를 보러 갈 계획을 세운다. 일행도 정해져 있다. 대학의 문학 교수이자 연인인 이리나가 암각화를 보고 싶어 한 것이다. <6번 칸>의 도입부는 어느 집에서 열린 작은 파티를 담는다. 문장을 누군가가 말하면 그 문장이 어느 작가의 어느 책에서 나온 것인지를 맞추는 놀이 중이다. 그야말로 이것은 취향의 공동체.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끼리,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끼리 어울리는 현장이다. 이리나는 그 모임의 중심에서 맹활약하지만 라우라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든 자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짓고 문간에 서 있다. 라우라의 세계는 이리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런데 이리나가 여행을 함께 가지 못하게 된다. 라우라는 혼자 떠난다.

이리나가 없이 떠나는 여행, 라우라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든 상황이 낯설기 때문이다. 승무원이 여권을 검사하러 기차의 침대칸 안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라우라와 같은 칸에 탄 남자가 반쯤 빈 술병을 꺼내는 모습을 본다. 그는 곧 술을 콸콸 따라 마시는데 와중에 술이 입가로 줄줄 흘러내린다. 라우라는 남자를 피해 식당칸에 피신하지만, 영원히 그럴 순 없다. 밤이 되어 자기 위해 다시 자기의 침대칸으로 돌아가 보니 남자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쉬지 않고 말한다. 이리나의 파티에서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과시적으로 이야기했던 광경을 떠올리면 좁은 침대칸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쉬지 않고 내뱉는 말은 극과 극의 경험이 된다. “기차는 왜 탔어? 몸 팔러 가?”라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남자는, 라우라의 아랫도리를 만지며 재차 질문하고 라우라는 탈출을 시도한다. 라우라는 기차 승무원에게 돈을 찔러주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이것은 망한 여행이다. 목적지에 가기도 전부터 망했다는 생각만 든다. 옮길 자리가 보이지 않자 라우라는 다시 자기 침대칸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잠들어 있다.

<비포 선라이즈>를 기억하는 (나아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6번 칸>은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비포 선라이즈>가 유럽 기차 여행에 대한 낭만을 증폭시켰다면,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과의 로맨스에 대한 공상을 부추겼다면, <6번 칸>은 지극히 현실적인 1인 여행자의 비애를 다루는 듯하다. 로맨스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목적지까지 무탈히 가기만을 바란 여행자가 대화는커녕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과 한 칸에서 버텨야 되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라우라는 중간 기착지에서 내려 모스크바로 돌아가려고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지만, 이리나는 옆에 있는 누구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서는 “설마 벌써 돌아오려는 건 아니지”라고 쐐기를 박는다. 라우라는 거기에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고, 다시 침대칸으로 돌아간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은 침대칸을 쓰며 장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6번 칸>의 악몽은 거기 있지만, 희망 역시 거기 있다.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자신과 비슷한 계급 혹은 성별, 성적 지향이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 갑작스레 무작위 추첨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상극인 사람과 3일 밤낮을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날은 악몽처럼 끝나버리고, 둘째 날은 그 악몽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어진다.

<6번 칸>은 관객이 남자, 료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료하는 라우라만큼이나 관객이 적대적 선입견을 갖도록 행동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된다. 그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 여행자가 여행 중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것. 하지 않던 일을 하고 시도하지 않던 것을 시도하며 목적지를 향해 우당탕탕 나아가는 것. 예상했던 모든 경로에서 이탈한 것 같지만 끝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것은 사랑도 로맨스도 우정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이 된다. 문학 교수인 이리나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암각화를 보러 가고자 했던 라우라의 목표는 여러 난관에 부닥치면서 시험당한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했던 여정에서 라우라가 찾은 것은 결국 자기 자신. 실패와 우연이 줄 수 있는 가장 기막힌 성취를 <6번 칸>은 보여준다. 낯선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게 만드는 영화.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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