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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한국 수묵 추상 거장,
서세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화가는 그림을 남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은 진리다. AI 시대지만 여전히 손맛이 빚은 명품은 낡아도 빛을 낸다.

타계한 지 4년 된 ‘한국 수묵 추상’ 거장 고故 서세옥1929~2020 화백이 부활할 조짐이다. 올가을 대한민국 최대 미술축제 키아프·프리즈 아트페어에 작가의 작품이 설치미술가 아들(서도호)과 건축가 아들(서을호)의 손에서 재탄생된다.

‘매난국죽’ 전통에 찌든 한국화를 수묵 추상으로 진화시킨 서세옥의 ‘인간 군상’이 21세기 첨단 기술과 만난다. 먹선으로 어깨를 걸치고 춤추는 군상을 은유한 대표작 <춤추는 사람들> 등이 예술을 입은 기술의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아들 서도호는 작가로서는 최초로 LG의 투명 올레드OLED TV를 활용해 아버지의 ‘군상’ 작품을 오마주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버지의 작품 세계가 장남과 차남의 시각으로 재해석된다는 점과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의 특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서세옥 화백이 평생 종이 위에 담은 한국 현대 수묵 추상화를 두 아들이 오늘날 가장 최신의 디스플레이로 입체성을 더하고 공간성을 극대화하는 연출이다.

설치미술가 서도호는 기술을 활용하면서 생전 어렵게만 느꼈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냈다. “아버님은 수묵화를 하시면서 항상 무한한 우주와 공간을 자주 언급하셨는데, OLED 스크린이 투명해지는 순간 2차원의 평면에 3차원 공간감이 생기는 것 같았고, 수천 년 동안 볼 수 없던 그림 뒤쪽의 공간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경험이었다.”

예술은 이제 기술과 교감하면서 세대를 넘는 영감과 스토리를 다시 써내고 있다. 평생 먹과 붓으로 작업했던 서세옥 화백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분명한 건 예술의 힘이다. 예술가의 DNA는 대를 잇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91세로 별세한 서세옥 화백은 한국 화단의 큰 어른이었다. <춤추는 사람들> 군상 작품처럼 인간 연작을 작업한 작가는, 개인과 공동체의 연결성을 고민하며 수묵화를 한 단계 나아가게 했다.

작가의 예술적 DNA로 한국 현대 미술사의 계보도 이어지고 있다. 장남 서도호는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설치 작가가 됐고, 그의 딸도 예술적 재능을 보인다. 2023년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 서세옥 추모전 《삼세대: 서세옥(1929-2020)을 기리며》는 서도호와 서을호, 그리고 손주들의 작품이 함께한 전시로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서세옥 화백은 누구인가. 다시 한번 조명해본다. 1929년 대구 출생으로, 아버지는 한학자 서장환1890~1970이다. 독립운동과 의병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줄 역할을 한 항일지사였다. 서세옥은 어린 시절부터 한문과 서예, 시 쓰는 법을 배웠다. 한시를 자유자재로 짓고 또 쓸 수 있는 마지막 동양화가 세대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1기로 입학했다. 4학년 때인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60년대에 전위적 예술가 그룹 ‘묵림회墨林會’를 결성, 동양화 혁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6세에 서울대 교수가 된 뒤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전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수묵 추상’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을 개척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수묵의 선·점만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 등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을 그린 ‘사람들’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손에 손잡고’ 하나 된 사람들의 화합과 희열의 몸짓을 보여주는 수묵 군상은 작가의 상징적인 그림이 됐다.

어깨동무하고 어우러지는 그림처럼 작가의 작품은 사후 미술관에 기증돼 화제를 모았다. 유가족은 작가가 평생 그린 작품 2,300점과 수집한 작품 990여 점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성북구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작가의 성북동에 대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었다. 서세옥은 60년 이상 성북동에 살면서 2009년 개관한 자치구 최초의 등록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했고, 명예관장을 맡은 바 있다. 서세옥을 중심으로 1978년에 시작된 ‘성북장학회’는 성북의 미술인이 작품을 판매한 기금을 지역 장학금으로 조성하는 모임으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대규모 기증에 대해 “서세옥 작품 세계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기증의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미술관도 놀랐지만, 조건 없이 작품을 내놓은 유족의 결정은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성북구는 ‘서세옥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서세옥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생전에 “작품은 여러 사람이 보고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서세옥은 또한 타계 전인 2014년 자신의 시대별 대표작 등을 추려 10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미술품은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닌 같이 보고 공유하는 ‘공공재’다. 이건희 컬렉션이 미술관에 기증돼 전국 순회전까지 펼치며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박현주 뉴시스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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