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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경쟁하는 몸,
경쟁하는 마음

파리 올림픽으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름 내내 다양한 몸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에도 미디어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지만 올림픽 중계는 관념적인 사람이 아니라 구체적인 몸, 움직이고 땀 흘리는 몸들을 보여줍니다. 내가 곧 몸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올림픽은 다양한 종목을 한데 모은 이벤트입니다. 파리 올림픽에선 총 32종목 329개 경기에 약 10,500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거기엔 가늘고 긴 몸, 우람하고 단단한 몸, 살집이 있는 몸, 갈라진 근육이 도드라진 몸, 혹은 평범해 보이는 몸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의 몸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점은 새삼 놀랍습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적인 몸이 엇비슷하다면, 실제 선수들의 몸은 훨씬 다양하니까요.

선수들의 몸은 다르고도 같습니다. 종목별로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종목 내에선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상체가 발달한 수영 선수의 몸, 가늘고 긴 높이뛰기 선수의 몸, 작고 가벼운 승마 선수의 몸, 우람하고 단단한 역도 선수의 몸. 특정 종목에 유리한 몸이 선발되고 또 그 종목을 오래 수행하며 다져지다보니 종목 내의 몸은 서로 비슷해집니다. 이상적인 몸에 가까울수록 유리한 것은 당연합니다.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긴 몸통과 짧은 하체, 키보다 긴 양팔 길이와 큰 폐활량으로 인해 ‘인간 물고기’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가 올림픽에서 총 28개의 메달을 차지할 수 있던 데는 물론 엄청난 노력이 작용했지만, 타고난 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타고난 몸이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수들의 몸은 각자 다르고 불완전합니다. 탁구 여자 단체전 16강전에서 대한민국 팀과 대결한 외팔 탁구 선수 브루나 알렉산드르나와 도쿄 올림픽 당시 신유빈 선수와의 대결로 유명해진 고령 탁구선수 니 시아리안은 운동선수의 전형적인 몸과는 거리가 멉니다. 청각장애인에 왼손잡이인 골프 선수 딕샤 다가르, 교통사고로 짝발이 된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 천식에 우울증과 ADHD를 앓은 육상 선수 노아 라일스는 또 어떤가요? 이들 역시 완벽한 몸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스포츠에서의 경쟁은 냉정하고, 그렇기에 공정합니다. 누가 더 잘하느냐,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내는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되지 않습니다. 10점 과녁에 화살을 맞힐 수 있다면 키가 크든 작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탁구는 한 팔로 치는 것이고 골프는 타수만 적으면 승리합니다. 양궁·사격 같은 종목은 타고난 몸의 조건에 영향을 덜 받기에 종목 특유의 몸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이들을 보며 우리는 스포츠가 몸의 외형을 완성하거나 전시하는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역량을 겨루는 활동임을 깨닫게 됩니다. 구체적인 제약하에 동등하게 겨룬다는 규칙이 오히려 우리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다양한 몸을 포용하게 합니다.

다양한 종목을 교차 시청하면서 스포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포츠의 본질은 신체적인 능력인가요? 스포츠에선 반드시 몸을 열심히,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움직여야 하나요? 몸을 잘 움직인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흔히 운동을 잘하기 위한 기초 체력으로 근력과 근지구력·심폐지구력·민첩성·순발력·유연성·평형성 등을 듭니다. 테니스나 축구·리듬체조 같은 경기를 보면 이러한 기초 체력을 골고루 갖춘 올라운더all-rounder의 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사격이나 양궁처럼 기초 체력이 덜 중요한 영역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체력이 필요하지만, 승부에 결정적인 요소는 근력이나 지구력보다는 집중력이나 판단력, 자신감과 같은 마음의 역량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는 신체의 경쟁이거니와 마음의 경쟁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은 신체적인 능력이 유의미하게 차이난다기보다는 그 순간의 집중력과 자신감, 그리고 약간의 운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곤 합니다. 사격 25미터에서 0점을 쏜 김예지나 0.005초 차이로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한 노아 라일스를 보면 스포츠가 신체 능력 너머의 승부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중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며 되뇌던 박상영 펜싱 선수의 주문이 감동이었던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체 능력보다도 마음 능력이 더 우선된다면 이를 스포츠라 할 수 있을까요? 일명 마인드 스포츠와 e-스포츠로 불리는 영역은 몸이 아닌 마음의 스포츠요, 경기장이 아닌 컴퓨터에서 겨루는 스포츠입니다. 일정한 규칙하에 경쟁하는 것은 일반 스포츠와 같지만, 신체적인 능력이 핵심이 아닌 것이죠.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마인드스포츠로 바둑·콘트랙트 브리지·샹치·체스, e-스포츠로 리그 오브 레전드·피파온라인 4·배틀그라운드 모바일·스트리트 파이터 5·도타 2·몽삼국 2 등이 포함됐습니다.

마인드 스포츠 종목은 아직 올림픽에선 정식 종목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특히 e-스포츠가 폭력적이고, 신체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진정한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포용하려는 전략에 따라 향후 포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그 자체로는 스포츠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는 신체적인 역량이 핵심적이고 마음의 역량은 부수적인 것인가요? 땀을 흘려야만 스포츠일까요? 전통적인 스포츠가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면, 마인드 스포츠로 확장된 스포츠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질문이 옮겨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고 몸은 곧 마음이라고 본다면 스포츠의 확장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무용 연구자인 제겐 확장된 스포츠가 흥미롭습니다. 춤 역시 몸이 중요한 영역이지만, 모든 춤이 반드시 신체적 수월성으로 귀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처럼 예술춤에서도 무용수들은 어려서부터 고된 훈련을 감내하며 성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고난 몸이 아닌 몸, 신체적 역량이 부족한 몸은 도태되곤 합니다. 하지만 신체 능력이 춤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대두하면서 춤은 훨씬 다양한 몸을 포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념적인 작업을 하는 컨템퍼러리 댄스에선 잘 훈련된 몸이나 끝없는 운동성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신체 역량의 비중이 기존 춤보다 적다고 해서 그 자체로 열등한 것도, 그렇다고 우월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수많은 종목이 보여주었듯 춤도 다양한 몸과 다양한 역량을 지닌 인간을 포용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글 정옥희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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