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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시조,
그 시절의 풍류

남산에 자리한 국립극장 너른 문화광장에 가설무대가 세워졌다. 삼삼오오 나들이하던 이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국악관현악의 멋에 취했다. 무대 앞, 객석에 자리한 이들은 술도 한 잔 기울이며 풍류를 즐겼다. 이날 공연은 옛 선조들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음악을 즐기던 것을 국악관현악과 더불어, 이 시대의 것으로 재현한 것이다.(6월 1일과 2일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 야외 음악회 <애주가>) 현대판 벽송연 혹은 장미연이라고나 할까. 이날의 공연은 술과 음악이 중심이었지만, 사실 옛 선조의 풍류에서 중심이 되는 건 바로 시였다. 그리고 그 시에 음가를 붙인 것이 바로 시조창이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그렇다면 시조는 무엇일까? 가곡 혹은 시조를 모르는 사람도 ‘청사~안~’ 하며 길게 늘여 부르는 황진이의 ‘청산리’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거다. 느리고 또 느려서 듣다 보면 잠이 쏟아지는 음악이라고 치부하던 그 음악이다. 하지만 옛 선조들 생각은 달랐다. 놀라지 마시라. 우리가 듣는 이 지루한 음악이 그들에겐 ‘빠르다’고 이름 붙일 만한 곡이었단 사실. 가곡에는 ‘만-중-삭’이라는 표현이 있다. 쉽게 설명해, ‘느린-보통의-빠른’ 곡이라는 의미다. ‘만’과 ‘중’은 사라졌고, 지금은 ‘삭’에 속하는 빠른 음악만 남았기에, 선조들 입장에선 빠른 노래만 남은 셈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앞서 언급한 시조나 가곡 외에 가사까지, 비슷해 보이는 노래들이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음악 장르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셋을 통틀어 아정하고 정대한 노래라는 의미로 ‘정가’라 일컫기도 한다.

세 장르의 특징을 소략해보자. 먼저 가곡과 시조를 비교해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이 둘은 같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한다. 가곡은 선비들이 풍류방에 모여서 가야금·거문고·대금·장구·세피리 등 소규모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던 것이고, 시조(창)는 민간에서 즐긴 만큼 비싼 악사를 대동하지 않고 가볍게 무릎 반주나 장단 정도만 갖춰 불렀다. 비교적 편하게 부르고 즐길 수 있어서였는지, 가사는 널리 퍼져 지역의 특징을 담아낸 ‘제’를 형성했다. 민요가 경기민요·서도민요·남도민요로 나뉘듯, 시조도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불리는 경제와 향제, 전라도 인근에서 불리는 완제, 경상도의 영제, 충청도의 내포제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가사는 이 둘의 중간쯤이라고 할까. 5장이라는 시 형식에 맞춰 부르는 가곡이나 시조와 달리 자유로운 형식의 노랫말을 부를 수 있었다. 지금은 총 12곡의 가사가 남아 있어, ‘십이가사’라 부른다. 오늘은 이 중 시조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비우고 덜어내며 즐기는 시조를 읊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부르짖으며 쫓기듯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노래가 새로운 힐링 포인트로 자리하고 있다. 레치타티보recitativo처럼 빠르게 끊어지는 음악이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엔도르핀을 생성하기도 하지만, 쉼표 없는 달리기에 지치기 마련인 법. 그래서 계절의 풍요를 간직한 자연 안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조들의 지혜를 빌리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흘러가 사라지고 마는 그 시간을 즐기는 셈’이다. 그래서 시조를 ‘시절가’ 혹은 ‘시절단가’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7월이면 뙤약볕 아래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자연의 노래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바로 매미의 울음이다. 선조들은 이런 소리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매미 울음의 어감을 살려, 세상의 시비를 떠난 은둔 거사의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바로, 시조 ‘매아미’다.

매아미 맵다하고
쓰르라미 쓰다하네
산채山菜를 맵다더냐
박주薄酒를 쓰다더냐
우리는 초야草野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청구영언』 육당본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차렸으리라. 시조의 이름은 가사의 첫 단어로 붙인다.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하기에 ‘청산리’, “매아미 맵다하고”로 시작하기에 ‘매아미’인 것. 한자가 많고, 역사적 배경이 가사에 녹아 있어 어렵게 느끼는 이도 있지만, 이렇듯 쉬운 부분도 있다.

쉬운 부분의 하나로, 노래 제목에 창법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평시조는 평평하게 내는 소리를 의미하고, 지름시조는 질러서 내는 소리, 중허리시조는 첫 박부터가 아닌 중간에 해당하는 3~4번째 장단에서 내질러 소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쓰르르’ 하는 소리를 ‘쓰다’로 연결하는 재치나, 산채와 박수를 세상사에 비유하는 것이나, 노래 제목에서 투명하게 드러내는 창법의 묘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더해진다. 이러한 재미 요소를 곱씹으며 느린 곡조에 마음을 얹으면, 이만큼 즐겁게 고즈넉한 감상을 일으키는 노래가 있을까 싶은 정도다.

현대인의 쉼표로 우리 노래가 알려지기 전부터 시조의 깊은 풍취에 푹 빠진 이들도 있다. 바로 경제시조보존회다. 이들이 7월 5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정기 발표회를 연다. 창덕궁의 얼굴인 돈화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자연음향 공연장이다. 오래도록 정가에 빠져 사는 어른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정가 합창단과 고등학생 시조회까지 가창자로 무대에 오른다.

최근 지구 기온 상승 폭이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을 거라는 추측이 나왔다. 그만큼 올여름은 뜨거울 예정이고, 이번엔 또 몇 년 만의 폭염 수치를 갱신하게 될지 두려울 정도다. 이렇게 더울 땐 무엇이든 훌훌 털어내고 얕게 흐르는 바람 한 점에 집중해야 하는 법이다. 자연음향으로 전해지는 시조 한 수를 들으며 여유롭게 더위를 식히는 게, 올여름 가장 ‘핫’한 트렌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글 칼럼니스트 김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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