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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전기톱 조각가
90세 김윤신의 화양연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마치 주문 소리 같은 제목을 단 조각 작품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이런 순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그는 지난 4월 개막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돋보인 작가다. ‘90세 전기톱 조각가’로 유명한 김윤신의 생애 첫 베니스 비엔날레 진출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구순 나이에도 꼿꼿한 허리와 트렌디한 패셔니스타 면모의 작가는 ‘백발의 카리스마’로 전시실을 압도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각국의 카메라 세례를 받은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 아니겠냐”며 “이젠 나를 완전히 미술을 통해서 내놓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가 전기톱으로 썰고 깎아 만든 무심한 나무 조각과 대리석(돌) 조각은 휘황찬란한 현대미술 작품 속에서도 눌리지 않는 기세를 보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와 인간의 노동으로 나온 작품은 원초적인 에너지가 강렬하다.

어느 해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맞은 조각가 김윤신은 지난해 부상했다. 40년 전인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한국에서는 잊힌 존재가 됐지만, 그의 열정적인 작업은 빛이 났다. 지난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연 전시가 화제가 됐다. 작가의 생애 첫 국내 국공립 미술관 개인전인 이 전시는 ‘김윤신 발견’이라며 열광적인 호평이 이어졌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과 세계적인 화랑인 리만머핀Lehmann Maupin의 대표가 전시를 관람하면서 김윤신은 날개를 달았다. 올해 생애 처음으로 상업 화랑 두 곳과 동시에 전속 계약을 맺었다.

유명 화랑과의 전속 계약은 국제 무대로의 길을 열었다. “1세대 여성 작가인데도 이제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이현숙 회장이 직접 전시를 추진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된 것.

김윤신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작업 열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197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해왔는데, 무려 50년이 지나 이런 크고 중요한 전시에 초대되리라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2024년이 내게 큰 행운이 깃든 해인 만큼,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응답하고자 한다”며 기쁨에 찬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김윤신의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어 작가의 조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품 제목이다.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합合과 분分은 동양 철학의 원천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나는 1975년부터 그런 철학적 개념을 추구해오고 있고, 그래서 나의 작품에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처럼 계속적으로,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하나가 된다.’

아름드리나무가 너무 부러워 한국에서 교수(상명대학교)로 살다 직업까지 포기하고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작가는 이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상업 화랑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러브콜은 ‘한국에서 더 일해보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에 오니까 주변에서 그 나이에 일을 하다니, 저렇게 무거운 톱을 들다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작가는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여전히 건강한 열정을 과시했다. “나는 나이 상관없이 그냥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열심히 작업하다가 딱 가는 거, 그게 내 소원이에요. 힘이 닿는 데까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찰나의 순간을 작품에 잡아내고 있는 김윤신은 황금보다 귀한 ‘지금’에 충실하고 있다. “앞으로 조각을 이어 붙인 ‘회화 조각’이라는 것을 연구하려고 결심했어요. 이 작품을 세계 미술사에 남기고 싶어요.”

1935년생 조각가는 라이징 스타로 다시 젊어지고 있다. “끝이 없는 게 예술”이라는 그는 마치 신화 속 시지프처럼 날마다 전기톱을 들고 나무와 대화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이 반복적으로 오잖아요.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죠. 똑같아요.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삶이 예술이죠. 예술이 곧 제 삶이에요.”

글 뉴시스 미술전문기자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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