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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함께 듣고 싶어서

아직 데이터가 그리 많지 않아 수집과 정리가 가능하다. 30개월이 된 딸아이의 음악 감상기에 관한 이야기다.

좋은 음악을 선별해 양껏 들려주겠다는 나의 결심은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실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 이전까지 우리 집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이 늘 흐르고 있었다. 단조 악구가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되기라도 하면 어둡고 부정적인 무언가가 드리울까 염려하고 조심하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의 아이는 ‘로보카폴리’, ‘퍼피 구조대’의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늘 어딘가로 출동해 무언가와 싸운다.

좋은 연주곡을 들려주고 싶은데, 환경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다. 바깥 놀이를 할 때는 당연히 듣기가 어렵고, 실내에서는 각종 장난감이 조악한 소리를 내기에 음악을 틀어두어도 묻히곤 한다. 때로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도무지 고요한 상태를 맞기가 어렵다. 그나마 가능한 때라면 그림 그리기, 만들기 같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 차로 이동하는 시간 정도다.

10분 남짓. 집중력이 유지되는 이 짧은 시간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밝고, 경쾌하고, 의욕을 북돋울 만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유지되는 다섯 곡을 모아 듣는다. 중요한 건 어른이 듣기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 집중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건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엄마 혹은 아빠가 진정으로 즐거워야 그 행복이 아이에게도 전해진다. 밀착한 채로, 함께 귀를 완전히 여는 순간은 아이가 자랄수록 자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소중한 마음을 느끼며, 함께 듣는다.

몰입의 세계로, 즐겁게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의 ‘Obituary’는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으로 자연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의 오프닝 테마다. ‘부고’라는 뜻의 제목이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편집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잡지사의 핵심 멤버들이 마지막 호를 활기차게(!) 준비하는 장면을 열어주는 역할로 쓰인다. 뒤뚱거리는 듯한 튜바 사운드와 하프, 목관악기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가 시대를 모호하게 규정한다. 영화에서 배경으로 삼는 ‘블라제’라는 도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상상한 가상의 도시.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게, 가뿐하게 몰입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작은 아씨들> 등 신비로운 분위기의 서정적이고 선율적인 음악 스타일로 잘 알려진 영화음악가인데, 초현실적인 그림엽서 같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서만 발현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앨범에서 신비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다양한 분위기의 사운드트랙을 찾을 수도 있다.

벨기에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플로리안 노악Florian Noack이 올해 발매한 신보의 맨 마지막 트랙으로 실은 ‘I Wanna Be Like You (The Monkey Song)’ 또한 ‘가벼운 심오함’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아이의 주의를 기분 좋게 환기하기에 좋다. 원곡은 디즈니 소속 음악가로 활동했던 셔먼 형제Richard M. Sherman & Robert B. Sherman가 영화 <정글북>을 위해 쓴 곡이다. 재지한 리듬에 허풍스럽고 익살스러운 표현이 즐거움을 자아낸다.

노악은 영화의 긴 서사 중 일부였던 이 곡을 단독으로 감상할 수 있게 짧은 전주를 써넣는 한편, 원곡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는 감각적인 피아노 연주로 단순하고 선명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빈티지한 무드의 원곡이 어른 감상자에게는 더 흥미로운 선곡일 수 있으나, 아이에게는 조금 난해한 선택일 것이다.

집중과 교감의 행복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1886와 브리튼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1945은 어린이를 위한 연주곡 리스트로 늘 가장 먼저 언급되는 대표 작품이다. 생상스는 감각적인 관현악법으로 여러 동물의 이미지를 능란하게 그려 보이며, 브리튼은 헨리 퍼셀의 선율을 따와 악기들을 하나씩 소개한 후 오케스트라를 다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전체 곡의 완성도를 높인다. 두 작품 모두 음악 듣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친절하고 세련된 안내서 같다.

‘동물의 사육제’ 중 서주 이후 처음 등장하는 ‘사자 왕의 행진’이 이 플레이리스트에 가장 잘 맞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경쾌한 움직임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동양적인 선율이 늠름하고 당당한 사자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묘사한다.

동물 이미지나 애니메이션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몇몇 ‘동물의 사육제’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는데, 테아트로 델 라고 예술학교Teatro del Lago School of the Arts의 연주 실황이 특히 좋다.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과 뛰어난 연주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어 이미지에 과몰입하지 않으면서 감상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다.

브리튼의 작품은 초연 당시 악기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중간중간 곁들여 연주했지만, 오늘날에는 작품 전체를 하나의 변주곡처럼 쭉 이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전곡을 심도 있게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제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하는 목관악기를 위한 변주를 떼어 듣는 것도 방법이다. 높은 음역의 부드러운 소리들이 기분 좋은 긴장감을 만든다.

마지막 곡은 장 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가 들려주는 거슈윈의 피아노곡 ‘Dance of the Waves’. 티보데는 ‘거슈윈 랩소디’라는 제목의 신보에 그동안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는 거슈윈의 작품을 네 곡 포함했는데, 이 곡이 그중 하나다. 두 사람이 함께 추는 기분 좋은 춤을 묘사하는 짧은 곡이다.

아이는 이 시간의 무엇을 기억할까. 음악이 주는 즐거움, 집중이라는 감각, 교감의 행복 그 무엇이라도 좋을 것이다.

글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 저자 김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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