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전의
계보학을 위한 서문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알파벳 표기가 생전에 불리던 그녀의 이름에 가장 가까운지조차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사람. 930년에서 935년 사이에 태어나 973년에서 1002년 사이에 사망한 흐로스비타Hrotsvitha, 흐로츠빗Hrosvit 또는 로스비타Roswitha. 그녀는 ‘최초의 여성 극작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줄곧 ‘고전의 계보학’에서 누락되어왔다. 이를테면, 연극사 교과서로 가장 흔히 쓰이는 오스카 G. 브로켓Oscar G. Brockett의 『연극의 역사History of the Theatre』2005(연극과인간)는 목침 같은 외형의 두 권의 책으로 총 1,325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흐로스비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소략한 소개로 갈음할 뿐이다.
예배극이 생길 무렵 독일 북부 간더샤임 수도원의 율수律修 수녀인 흐로스비타가 테렌스의 극을 모방한 6편의 극을 썼으나 주제는 종교적이었다. 그녀는 테렌스의 문체에 끌려 극을 쓰게 되었으나 이러한 이교도적인 작품이 미치게 될 악영향이 두려워 적절한 대안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한다. 그녀의 작품들―‘아브라함Abraham’, ‘칼리마쿠스Callimachus’, ‘둘키티우스Dulcitius’, ‘갈리카누스Gallicanus’, ‘파프누티우스Paphnutius’, ‘사피엔티아Sapientia’―이 그 시대에 공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501년 처음 출판되었고 이후 16세기 종교극과 교훈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흐로스비타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연극사적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흐로스비타는 지금껏 알려진 첫 여성 극작가이며 고전 시대 이후에 알려진 최초의 극작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첫 여성 극작가’ 또한 흐로스비타가 성취한 업적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는 명명이다. 6편의 희곡뿐 아니라 8편의 전설과 2편의 서사시를 집필한 그녀는―미국의 한 비교문학 학자가 기술하듯―“기독교 최초의 극작가이자 최초의 색슨족 시인이며 독일 최초의 여성 역사학자”라고 칭해야 마땅하다. 상황이 이러한바, 진부할 정도로 ‘최초’를 탐닉해 온 역사서의 문법을 기억할 때 흐로스비타에 대한 경시는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들은 시간의 시험test of time을 통과하지 못한 듯하나, 이 실패에 대한 책임은 흐로스비타가 아니라 시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를 잊어 우리가 지금껏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를 물으며 흐로스비타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그로테스크하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남성에게 겁박당하고, 이에 담대하게 저항하는 듯하나 끝내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청하고, 심지어 죽은 후에도 자신의 몸을 탐하는 남성의 욕망에 위협당한다. 하여 지금 공연을 올리고자 한다면 그 공연의 기획자는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의 문구를 오래도록 다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는 역설적으로 흐로스비타의 이야기가 가부장제의 억압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뜻일 터다. 게다가 그녀가 설계한 비판의 대상은 가부장제를 넘어선다.
흐로스비타가 집필한 희곡 작품 여섯 편은 모두 오롯이 남아 있지만, 한 작품만 살펴보자. ‘성녀 아가페, 치오니아, 이레네의 순교The Martyrdom of the Holy Virgins Agape, Chionia, and Hirena’라고도 알려진 ‘둘키티우스’는 세 명의 여성이 디오클레스 황제에게 소환되어 끌려온 상황에서 시작한다. 황제는 그녀들이 혈통이 고귀하고 외모가 아름다우니 마땅히 자신의 궁정에 있는 지체 높은 남자들과 결혼해야 한다며 개종을 요구하고, 여성들이 이에 거부하자 분노하여 그들을 집정관 둘키티우스 관하의 감옥으로 보낸다. 그러나 그녀들의 미모에 반한 둘키티우스는 “여가시간에 종종 방문”하고 싶다며 여성들을 창고에 감금한다. 잠시 후, 그는 창고로 찾아들지만 ‘솥과 팬pots and pans’을 세 여성으로 착각하여, 온몸이 그을음으로 더럽혀지는 것도 모른 채 그 주방 도구들을 애무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몸부림을 지켜보는 세 여성의 시선을 따라 관객·독자는 여성들의 승리를 기대해보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나아가지 않는다. 아가페와 치오니아는 화형당하고, 이레네 또한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세 여성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켰으며 그리하여 구원받을 것이니, 이 극의 결말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솥과 팬’이다. 둘키티우스가 이들과 펼칠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상상한다. 이 장면에서 ‘솥과 팬’은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양초와 찻주전자처럼―의인화되어―‘춤추고 노래’하지 않는다. 흐로스비타는 그들에 대해 그 어떤 묘사도 남기지 않았다. ‘솥과 팬’ 그 자체에 어떤 활력이 이미 잠재되어 있었다는 듯, 둘키티우스의 오인을 마법이라거나 ‘신의 역사’로 규정하지 않았다. 하여 나는 흐로스비타의 생략에서 생태학적 위기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신유물론적 사유를 발견한다. ‘인간 이하나 비인간less human/non-human’으로 간주해온 존재들에 대한 반反위계적 목소리가 전근대에 이미 제기되었음을 확인한다
‘둘키티우스’의 세계에서 ‘솥과 팬’은 실로 고유의 존재 방식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터다. 오인은 여성의 몸을 그저 ‘솥과 팬’ 정도로 여겨온, 여성이든 사물이든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믿어온 인간 남성, 둘키티우스에게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여성이 그러하듯―사물은 그저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살아 있다. 오인을 유도하여 타자에게 군림하려는 오만한 인간 남성을 조롱하며, 조롱받도록 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허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둘키티우스’의 ‘솥과 팬’은 타 존재를 지배의 대상으로 여겨온 남성들에게 흐로스비타가 보내는 재치 있는 반격이라고, 그녀는 반격의 주체를 사물로 설정하여 인간의 군림하는 못된 습성을 보다 본질적이고 급진적으로 되묻는 것이라고. 신유물론 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생동하는 물질Vibrant Matter』2020(현실문화)에서 말하듯, “죽어 있거나 철저히 도구화된 물질이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자만심과 정복 및 소비 등 지구를 파괴하는 우리의 환상을 키”워왔으니 말이다.
‘여성 선구자들’의 이름을 지워온 전통적 연극사 계보학에 대항하여 흐로스비타를 다시금 세상에 알린 저명한 여성주의 연극학자 수 엘런 케이스Sue-Ellen Case는 말한다. “흐로스비타를 극장 공연에서 배제한 것은 최초 여성 극작가의 중요성을 억압”했으며 “이러한 억압은 그에 따른 가치 저하를 낳음으로써 선구자와 뒤이은 이들 모두 미미한 관심을 받[게 했]다”고.(『여성주의와 연극Feminism and Theatre』1997, 한신문화사) 나는 케이스의 비판을 딛고 흐로스비타에게서 발견되는 신유물론적 사유를 지렛대 삼아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흐로스비타를 모범 삼는 글쓰기가 이어졌다면, 인류가 조금은 다른 근대를 경험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역사의 가정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일찍이 고전의 계보학이 달리 써졌다면 역사 또한 달리 써졌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전의 계보학을 새로 쓰는 것이야말로 다른 미래를 위한 고전 읽기라고 믿는 까닭이다.
*‘둘키티우스’의 내용은 카타리나 윌슨Katharina Wilson이 영문으로 번역하여 출판한 Hrotsvit of Gandersheim: A Florilegium of Her Works (D. S. Brewer, 1998)를 참조했습니다.
글 공연 칼럼니스트·드라마터그 전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