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해보자
5월 5일 청와대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초청한 어린이들이었다. 농어촌·도서벽지 거주 아동, 장애아동, 다문화가정 아동, 다둥이 가족 등 360여 명이 군악대의 환영 팡파르 아래 버블 매직쇼를 즐겼다. 대통령과 악수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색연필, 컬러링 북, 대통령실 시계 선물도 받았다.
매년 어린이날을 맞아 대통령이 해오던 초청행사지만, 요즘은 국민 누구나 원하면 청와대 관람이 가능하다. 청와대 이전을 약속한 윤 대통령이 2년 전 취임과 함께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면서부터다.
청와대 개방 이후 지금까지 545만 명이 청와대를 찾았다. 월별로 살펴보면 야외 활동하기에 제일 좋은 4~6월에 월평균 20만 명 안팎이 찾았다고 한다. 외국인 관람객도 늘었다. 개방 첫해인 2022년 5월 0.3%이던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지난 4월에는 21%를 넘어섰다.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이던 청와대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주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개방된 청와대 관리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다. 실무적인 관리와 활용은 청와대재단에 위탁하고 있다. 정부는 청와대가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 명소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 역사적 상징성과 특수성을 지닌 청와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 국민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미술협회를 비롯한 문화예술계는 이러한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 문화 공간 조성에 대해 환영한 바 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 접견실과 집무실, 침실 구경이나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개최로 청와대를 찾는 국민을 즐겁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활용만으로는 청와대 개방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청와대는 국가 권력의 산실이나 다름없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나라 살림을 챙긴 곳이다. 이 과정에서 권력 남용과 국정 농단으로 탄핵과 친·인척 구속 수사가 반복되는 등 대통령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을 시도했다.
과거에서 미래를 배운다고 한다. 청와대는 관람을 위한 공간으로의 활용만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화합을 끌어내는 소통 공간으로 활용할 때 개방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청와대 본관 내 국무회의실 공간을 미래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국무회의는 국정 기본계획과 일반 정책, 법률안, 예산안 등을 심의하는 국가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다. 역대 대통령과 각 부 장관이 국무회의실에서 국정을 심의하듯, 청소년들이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이 되어 청소년 문제를 놓고 결론을 도출해봄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면 청와대 개방의 취지를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문체부나 청와대재단 누리집에 청소년 국무위원 모집 안내 코너와 국무회의에 상정할 의견 수렴 창구를 만들면 된다. 청와대가 문화예술 복합 공간일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 소통의 장으로도 열려 있음을 온라인에서부터 알리자는 것이다.
국무위원 지원자가 많아 선출 방법을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이고 공정한 선출 방식을 사전에 공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광역시·도별, 학교급별, 성별 선정 기준 등 구체적인 선출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면 된다.
국무회의에서 상정할 안건은 일정 기간을 정해 신청받되, 청소년이 회의를 주재하는 만큼 청소년의 관심사로 좁히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2학년의 체육 수업 강화나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초등 1·2년생의 체육 교과 분리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의결한 이후 논란이 된 사안이다. 부모들은 비만 해소와 체력 향상 기회라며 환영하나 초등 교사들은 체육 수업 중 다치면 교사 책임이 된다며 여건 조성 미비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침해 요인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폐지한 데 이어 경기도교육청에서 새로운 학교 인권조례를 제정하려 들면서 학생 인권 침해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밖에 국민연금 개혁 방안이나 기후 위기 극복 방안 등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이슈도 청소년 눈높이에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무위원 선정과 국무회의에 올릴 안건 선정까지는 청와대재단 누리집에서 진행한다. 이후 최종 안건 심의는 청와대 국무회의실에서 청소년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국무위원에 도전하거나 안건을 낸 학생들은 본인의 위원 선출과 안건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청소년 국무회의 진행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나와 다른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대화와 토론으로 접점을 찾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청소년 국무회의 프로그램을 잘 운영한다면 미래 인재 양성은 물론 청와대를 진짜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촉매제로도 작동할 것이다.
글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현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