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기 훈련
내 귀에 별 감흥 없는 음악을 억지로 들을 필요는 당연히 없다.
기껏해야 상성, 하지만 그래도 상성이다. 오카다 아케오, 『음악을 듣는 법』, 2023, 37쪽
일본의 음악학자 오카다 아케오Akeo Okada는 음악의 좋고 싫음이 인간- 음악의 상성 때문이라 말한다. 상성. ‘서로 성질이 맞음, 또는 그런 성질’이라는 뜻이다. 수백 년 동안 인간사의 곡절과 함께 발전하고 변화해온 클래식 음악부터 자본을 움직이며 세계인의 일상 곳곳에 침투하는 동시대 대중음악까지, 음악을 둘러싼 그 많은 논쟁과 담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말이 아닌가. 결국 인간이란 그저 하나의 감성 수신기일 뿐. 나에게 좋은 음악과 당신에게 좋은 음악은 따로 있는 것이니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
언뜻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상성’은 사실 사람의 ‘내면의 도서관’의 이력에 의해 규정된다. (…) ‘상성이 좋고 나쁨’은 우리 각자의 인생 자체와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카다 아케오, 『음악을 듣는 법』, 2023, 37쪽
아케오가 문학 이론가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표현을 빌려
쓴 ‘내면의 도서관’이란, 이를테면
지금까지 들어온 음악, 제목이나
음악가는 모르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 주변인이 좋다고 혹은
형편없다고 했던 음악, 어디선가
비평을 읽어 본 음악 등 기억의
단편들로 이루어진다. ‘나’라는 감성
수신기는 내면의 도서관으로부터
주파수를 설정해 좋은 음악들을
걸러낸다. 그저 그런 음악을 굳이
참아가며 들을 필요는 물론 없지만,
나의 ‘내면의 도서관’이 풍부하지
못해 좋은 음악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건 좀 다른 문제다.
음악 감상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신체적인 행위라 언어화하기
어렵다. “문명화된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은 고대 주술의 잔재일지도
모른다”(45쪽)는 아케오의 표현만큼은
아니더라도 형체 없는 소리에 대한
몰입 경험이란 지극히 정신, 감각에
의한 것이라 ‘~처럼’, ‘~같은’ 식의
추상적인 설명만이 가능하다. 나의
‘내면의 도서관’과 타인의 ‘내면의
도서관’은 때때로 대화를 통해
마찰하거나 충돌하기도 한다. ‘내면의
도서관’이 비슷한 사람 간의 대화라면
눈빛만으로도 척척 알아차리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겠지만, 엇갈리는
사람끼리의 논쟁이란 서로 다른
국적의 언어로 하는 대화처럼 되고
만다. ‘내면의 도서관’이란 “신체
생리의 일부, 우리가 자라온 환경 그
자체인 셈”(36쪽)이라는 점에서 서로
깊이 상처를 주거나 반대로 큰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내면의 도서관’이란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만의 도서관 음악 섹션을 풍부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음악 경험치를
늘리는 게 좋겠다. 시간을 내어
공부하듯 음악을 들어나가기는
어렵겠지만, ‘아, 저 음악이 나랑
주파수가 맞는구나’ 혹은 ‘음, 저 음악은
나와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어떤 유의미한 신호가
있으려나’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음악이란 사람이 발하는 무엇이기에
선율, 리듬, 표현의 굴곡, 질감 같은
것들에 창작자의 어투나 오라aura,
신체적 특징들이 새겨져 있다.
이 음악가가 청자인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나, 혹은
어떤 심상을 그려 보이려는 걸까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그 감각을
느끼고 추측하는 게 이상적인
음악 감상 방식일 것이다. 지극히
추상적인 내용이 버겁다면 명확히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참고하면 된다.
짧게나마 실험을 한 번 해보자.
한국에서 거의 연주된 바 없는 미국
작곡가 캐롤라인 쇼Caroline Shaw의
‘Entr’acte’를 함께 듣고 싶다. 그에 대한
짧은 문장들을 나열해본다.
이 곡의 길이는 11분이다. 2019년
발매됐다. 앨범 제목은 ‘오렌지Orange’.
첫 번째 수록곡이다. ‘오렌지’라는
제목은 자신의 앨범을 연주한 아타카
콰르텟Attacca Quartet과 함께 가꾸고
있는 정원을 이른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곡은 밝고, 야생적인 감각을
내뿜는다.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로 현악
4중주가 서로 포개지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앨범은 2020년 제62회
그래미상 최우수 실내악/앙상블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그보다 앞선
2013년, 쇼는 서른 살 나이로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해 큰 관심을 모았다.
최연소였다. 작곡가로서 그는 현악
4중주 편성에 강점을 보이고, 목소리에
집중된 이야기를 많이 쓴다. 스스로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에게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겨준 앨범도
‘여덟 목소리를 위한 파르티타Partita for 8
Voices’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잘 다듬어진
음색과 흥얼거림, 투덜거림 같은 숨결을
독특한 흐름으로 연결했다.
뉴욕 필하모닉이 팬데믹 기간에
개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기리는 공연에서 백인 남성 작곡가의
작품만 포함해 비난받아 변경된
프로그램의 첫 곡이 쇼의
‘Entr’acte’였다. 유색 인종 음악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은
여전했지만, 연주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보도됐다. 대중음악가와
협업하거나 영화음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음악 바깥에도 관심을 보여
‘매버릭maverick’(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불리거나, 전통 음악신scene으로부터
‘관련성을 가지라’는 압박을 받기도
하지만 쇼는 굴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매일 아침 달걀을 삶는
동안 들은 음악을 기록한 적이 있다.
이 곡을 그냥 들었을 때와 몇 가지
정보, 의견들을 접하고 들었을 때
감흥이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음악은
그 자체로 들어야 한다, 음악을 둘러싼
말들이란 편견을 낳을 뿐, 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다. 풍부한 감각을 위한
단서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글 김호경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