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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선,
넘을까 말까

‘선을 넘는다’, 통념에서 벗어난 발언이나 행동을 묘사할 때 쓰이는 구절이다. 그런데 문화예술에서 선을 넘는다는 표현은 틀을 깨는 것과 다름없다. 보편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야 가치가 올라간다는 의미다. 최근 선을 가운데 두고 팽팽하게 밀당하듯 양쪽을 넘나드는 작가들의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이들의 특징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상업과 순수, 금기와 파격을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것. 이렇게 관점의 틈을 유영하는 작업과 마주한 관객은 시각적·지적 유희와 함께 높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지난여름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한 디자이너 요시다 유니Yuni Yoshida의 개인전이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왔다. 그동안 흥행에 성공한 기존 전시를 새로 단장했단다. 2월 25일 막을 내리는 《YOSHIDA YUNI; Alchemy+》는 2023년 신작을 추가하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키리에의 노래> 포스터를 포함한 240여 점의 광고·뮤직비디오·앨범·북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요시다 유니의 작업은 ‘연금술’ 그 자체다. 흔하디흔한 물질을 귀금속으로 바꾸는 게 연금술 아니던가.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사물을 활용한 그의 작업은 보는 이를 착시와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첫인상은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듯하다. 요시다 유니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올린 <Layered>를 예로 들면, 깨진 픽셀과 영상 재생의 버퍼링 순간이 연상된다. 그러나 작업 기저에는 평범한 오브제를 해체하고 이어 붙이는 아날로그 방식이 있다. 이는 자연의 그러데이션을 사용해 모자이크를 구현하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자연에는 온전히 같은 색과 모양이 존재할 수 없고, 같은 빨간색이라도 여러 가지 빨간색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작품 기획안에 맞춰 자른 큐브 모양의 과일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려 완성했어요.”

<Playing Cards>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려서부터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가 손수 카드를 제작했다. 멀리서 보면 여느 카드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감자튀김·딸기·블루베리·크래커 등 평소 자주 먹는 식재료가 있음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손끝으로 마무리했다.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작품엔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따뜻함이 느껴져서란다. 흥미롭게도 전시실 곳곳마다 요시다 유니의 작업 과정이 펼쳐져 있는데, 나비효과를 부르는 건 거사가 아닌 작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걸 작가가 몸소 보여줘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DDP에선 시각적 난해함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슈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의 《Now Is Better: 지금이 더 낫다》가 3월 3일까지 진행된다. 그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다. 대표적으로 롤링스톤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프론트맨 루 리드, 제이 지 등 팝스타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그런 그의 작업은 그래미상 앨범 패키지 부문에서 두 번(2005년 <토킹 헤즈Talking Heads>, 2010년 <데이비드 번&브라이언 이노David Byrne & Brian Eno>)이나 수상한 바 있다.

슈테판 사그마이스터는 작가적 성격이 짙은 디자이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캔버스 위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데이터를 녹여 지금이 예전보다 나은 세상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1915년에 번개로 사망한 사람이 50명이었다면, 2015년에는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과 안전 장비의 발전으로 1명만 사망한 점’, ‘1820년부터 2015년까지 극심한 가난에서 탈출한 인구가 늘어난 점’ 등이 주요 재료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작품도 있다. 강대국이 전쟁을 벌인 비율, 운전자가 교통 체증으로 차에 갇혀 있는 시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Now Is Better: 지금이 더 낫다》에서 그가 빌린 데이터는 회화뿐 아니라 렌티큘러, 디지털 캔버스, 손목시계, 컵 등에 새겨져 있다. 텍스트로는 단순하게 다가오겠지만, 슈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작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소 난해하고 모호하다. 여러 개의 레이어를 겹친 탓인데, 해석하려면 리플릿이 필수다. 리플릿에 적힌 데이터 해설을 숙지해야 작업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전시실에 들어서기 전 입구에서 챙기는 것을 잊지 말자.

마지막 주인공은 대림미술관에서 3월 말까지 《MSCHF: NOTHING IS SACRED》를 개최하고 있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미스치프. 서촌에 상륙하기 전 미스치프는 데이미언 허스트·앤디 워홀 등의 작품에 도발적 시도를 한 작가로 알려졌으나, 경복궁 담벼락 낙서 사건 이후 뉴스 사회면에 등장하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낙서범이 범행 후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 나는 예술을 한 것뿐”이라는 글을 남겼기 때문. 심지어 낙서범은 전시실에 설치된 작업 <MSCHF Wholesale>의 모자도 훔쳤다. 대담한 범행 덕분(?)인지 미스치프는 12월 중순 포털사이트 검색량에서 측정 최대치인 100을 기록했다.

정녕 낙서범과 미스치프는 같은 범주로 묶이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낙서범은 자기 행동을 예술로 포장했지만, 미스치프의 행위는 무분별한 절도·훼손과 거리가 멀다. 대신 그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직접 구매한 유명 작품을 리폼한 뒤 재판매했다. 그중 3만 달러(한화 약 4천만 원)에 사들인 데이미언 허스트의 <L-Isoleucine T-Butyl Ester>2018 속 88개의 점을 오려내 하나당 480달러(한화 약 65만 원)에 판매한 일은 희대의 사건으로 꼽힌다. 더욱이 구멍이 뚫린 전체 틀도 경매에 출품, 7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또 앤디 워홀의 <Fairies>1954는 위조품 999점과 뒤섞어 모두를 미궁에 빠지게 했다. 이러한 기행은 일종의 불문율로 여기는 예술적 관습에 반기를 든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제껏 그러려니 했던 관념에 물음표─예컨대 ‘개인 소유의 미술품도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 ‘작품 가격과 가치는 비례하나?’, ‘진품과 위조품이 주는 감동의 차이가 있을까?’─를 던지게 된다.

이외에도 《MSCHF: NOTHING IS SACRED》에서 미스치프는 경제·의료·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건드린다. 내용이 어려울 것이란 걱정은 접어두시라. 작업은 IT 기기, 브랜드 의류, 비용 청구서 등 익숙한 대상을 소재로 채택해 접근 문턱을 낮췄다. 미스치프는 “우리의 예술은 갤러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서로 소통하도록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한다. 관객은 전시를 즐기면서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 미스치프의 프로젝트를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다.

글 노블레스·아트나우 에디터 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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