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어느 맑은 아침에
믿을 만한 영양제 안내서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영양제를 잘 챙겨 먹을 것 같은 사람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영양제를 챙겨 먹는 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삶을 정성껏 가꾸는 이는 응당 영양제를 15종씩 먹을 것 같다거나 덜렁대는 친구는 어쩐지 영양제도 까먹을 것 같다든가 하는 편견이 조금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으로 친구가 먹는 영양제를 맞추려 들면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오지은 작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홍대 인디신을 크게 주름잡은 뮤지션으로서 내 인생의 어느 시절을 깊이 함께한 음악을 짓고 부른 사람. ‘홍대’와 ‘영양제’는 좀 안 어울리지 않아? 싶은 내 생각과 달리 저자는 매일 꼬박꼬박 영양제 13알씩 챙기는 사람이었다. 영양제만을 위한 서랍을 두 개나 내어주면서 말이다. 나는 음악가가 음악이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에 작가가 말하는 영양제 이야기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1번 서랍에는 빡빡한 기준을 통과한 영양제가 들어 있다. 내 몸이라는 경기장에서 선발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 그리고 서랍을 위한 서랍, 그러니까 2번 서랍에는 그 외 영양제들이 들어 있다. 영입할 때는 활약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선택받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 13~14쪽
이에 비해 내 영양제들이 머무는 장소는 단출하다 못해 사실 없는 자리로 봐도 무방하다. 부엌 한구석에서 아주 조금씩 유랑하는 모양새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종합비타민과 비타민D, 유산균과 오메가3다. 자,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가지고 있다고 했지, 챙겨 먹는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 부지런히 움직여 이들 중 두 가지 정도를 짝지어 삼킨다. 이 모든 영양제는 선물로 받은 것이다. 정확히 2년 전부터 생일이나 축하받을 일이 있을 때면 영양제가 선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이런 나이가 되다니!’ 은근하게 놀랐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양제 선물은 매번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조금 난감할 때도 있었다. 비슷한 영양제가 동시에 들어와 부모님께 드리기도 했고, 엄마는 큰 알약을 먹지 못해 그 영양제는 아빠에게로 넘어갔다. 나는 루테인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마그네슘을 먹으면 악몽을 심하게 꾸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토록 작은 알약과 가루에 대한 개개인의 사정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영양제 선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책에도 영양제 선물에 대한 어려움이 나오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출간이 더욱 반가웠다. 모르긴 몰라도 연초엔 영양제 구매율이 분명 오를 텐데, 그때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를 영양제를 선물하는 대신 이 책을 건네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법 많은 양의 영양제 관련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듯이 같은 설명도 영양제 회사의 말은 찰떡같이 이해돼도 백과사전의 설명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영양제 회사의 홍보 문구조차도 때때로 갸웃거리며 읽는 내게 이 책은 믿을 만한 안내서였다. 간에 좋다는 밀크시슬은 사실 식물 이름이며, 다른 간 영양제인 줄 알았던 실리마린은 밀크시슬에 포함된 성분명이라는 것, 프로폴리스는 플라보노이드의 함유량이 중요한데 플라보노이드란 우리가 아는 이름인 카테킨과 동일하다는 것… 늘 헷갈려서 둘 다 구매하거나 아예 몰랐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 책만 있으면 앞으로는 아주 기본적인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이 명쾌한 정보에 트위터리안으로 쌓아 올린 깊은 내공의 유머를 곁들여 독자를 쉴 새 없이 웃긴다. 웃음이야말로 돈도 안 드는 만병통치약이자 만능 영양제 아니던가. 나는 영양제 관련 책을 탐독하면서 이미 영양을 듬뿍 보충하고 있었다.
정화수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에게 정화수나 장독대가 핵심이 아니듯, 나에게도 비타민D의 효능이 핵심이 아니다. 그 마음이 이뤄내는 것들과, 마음에게 영향받은 나의 선택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영양제를 먹는 마음이다. -> 136~137쪽
『아무튼, 영양제』는 영양제의 효능을 간증하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 나와는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계속 부지런히 돈다. 드럭 스토어와 해외 직구의 세계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구매’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낯선 영양제를 몸에 넣는 일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비타민B·C·D와 매스틱 검, 리포조말 비타민과 프로폴리스를. 이것은 신뢰와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이 영양제가 적어도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와 내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필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기엔 ‘반드시 이걸 먹고 지구 최강의 인간이 되겠어!’ 하는 기대가 아닌 ‘아니면 말고…’, ‘그냥…’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나는 이 정신이 특히 좋았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에서 ‘아님 말고’의 정신을 자주 잊은 채 지나치게 치열하고 간절하게 매달리니까. 애석하게도 이런 마음은 몸과 마음에 썩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저자는 약사도 의사도 제약회사 직원도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영양제의 본질과 복용법을 잘 파악하고 제대로 복용하는 사람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는 부엌에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영양제의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남은 수량을 확인하고, 이왕 본 김에 (아주 오랜만에) 네 가지를 모두 먹었다. 마침 유산균이 거의 떨어졌는데 저자가 사막에도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 비타민B도 함께 사보려 한다.
새해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번엔 긴장이 바짝 서린 마음보단 저자가 영양제를 먹는 마음으로 임하려 한다. 이 새로운 일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신뢰, 내가 이 일에서 원하는 것과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여유, 최선을 다해 도전하되 ‘아니면 말고’의 정신으로 그냥…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 이 마음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낯선 출퇴근 속에서 매일 영양제 열몇 종을 먹은 듯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다.
*칼럼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제목을 차용했습니다.
글 『아무튼, 드럼』 저자 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