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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극장은 정말 모두를
환대할 수 있을까

모두예술극장에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최근에 개관한 이 극장은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으로 장애인 관객은 물론 장애예술가와 기술 스태프까지 물리적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성되었습니다. 직접 가보니 과연 객석과 무대의 바닥면이 평평하게 연결되고 휠체어석이 객석 맨 앞줄에 나란히 위치했으며, 극장 곳곳에 점자 안내와 핸드레일 난간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한 공연에 휠체어 관객 세 명이 나란히 앉은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개관 축하 공연이 시작한 지 십여 분 지났을 때 저는 기침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아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심해진다는 게 기침의 이치지요. 하필 음악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작품이라 조용한 극장에서 기침을 연달아 하는 게 당황스러워 서둘러 객석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곤 다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한 번 퇴장하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방침 때문입니다.

알레르기 비염 및 천식을 오가는 저는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극장에선 심해지곤 합니다. 비평 활동을 하는 저로선 고민이 많습니다. 빽빽한 좌석 열 한가운데서 기침이 나면 옆자리 관객들을 방해하며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게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꼭 봐야만 하는 공연 중에 기침을 멈추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큽니다.

공연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저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습니다. 최첨단 세면대에선 손만 가져가도 물이 콸콸 나왔지만 아이러니하게 느꼈습니다. 영어와 점자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휠체어 관객을 환대하지만 기침 관객은 품지 못하고,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나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는 위축시키는 공간이라니요. 모두를 위한 극장이 모두를 품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요.

극장은 많은 몸들을 배제해온 공간입니다. 무대 위의 공간이 특정한 몸을 공연자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몸에 대해선 배제하거나 왜곡해왔다면, 무대 아래의 공간 역시 특정한 몸만을 관객으로 받아들입니다. 두 시간 내내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몸들 말입니다. 하지만 꼼짝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저에겐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엄마와 발레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 중반부쯤 엄마가 살며시 신발에서 뒤꿈치를 빼고 계신 모습을 본 겁니다. 하지 정맥류가 있던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발이 붓고 아파 힘들어하셨지만, 저는 교양 있는 관객이 되지 못한 엄마가 부끄러워 날카롭게 쏘아붙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공연 중 기침이 나와 눈물 콧물이 범벅될 때면 그때의 엄마가 생각납니다. 어느새 저도 저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민폐 관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정유진 기자의 칼럼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잠재적 노인이고,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시간에 맞춰 극장에 도착해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몸들은 그러지 못하는 몸들을 쉬이 비난하지만, 모든 몸들은 긴 스펙트럼 위에 위치하며 조금씩 노화와 장애를 향해 이동합니다.

다양한 몸들을 배제해온 극장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높아지며 최근 공연장과 공연들은 접근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점자 안내서 및 터치 투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과 자막, 그리고 지적장애인 등을 위한 쉬운 글 안내서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연이 풍성해지며 접근성 공연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접근성 공연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성 서비스가 유형화된 장애 너머 좀 더 다양한 몸들을 품기엔 아직 부족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두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없거나 소리 내기를 참을 수 없는 이들, 의자에 앉기 힘들거나 몸을 가만히 두기 힘든 이들, 수유를 해야 하거나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 힘든 이들, 불안감이 높은 이들,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는 이들, 그리고 기침을 참을 수 없는 이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접근성 공연에서도 배제되는 이들을 품을 느슨한 공연relaxed performance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조금 돌아다녀도 되고, 말해도 되는 공연 말입니다. 어린이 대상 공연 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느슨한 공연은 아마도 크리스마스 시즌의 <호두까기 인형>일 것입니다. 어린이 출연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동화 발레이자 연말 가족 공연으로 자리 잡은 덕에 객석의 어수선함이 비교적 용인되니까요.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객석은 다시 엄숙하고 건강한 몸들로 채워지고 맙니다.

극장은 극장을 버틸 수 없는 몸, 나아가 극장에 미처 오지 못한 몸까지 바라봐야 합니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모인 서울 대학로는 공연예술의 중심지이지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한 명도 타지 않은 저상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극장에 도착해 휠체어석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구비된 공연을 관람할 때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극장은 충분히 모두를 환대하고 있나요? 환대하지 않는 사회에서 환대를 연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모두예술극장에서의 관람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한적한 지하철 안, 다시 한번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독감에 예민해진 승객들이 싫어할까 봐 객차 구석으로 향했지만 야속하게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 누군가가 사탕 한 알을 건네주었습니다. “사탕 한번 먹어봐요.”

“사람이란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다”(김현경 저, 『사람, 장소, 환대』, 2015, 64쪽)고 합니다. 누군가는 극장에 올 수 있고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으며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여기에 딸린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자리가 없는 이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환대하는 극장을 꿈꿉니다. 또한 환영의 공간으로 고립되지 않게 길을 터주고 점을 연결시키는 극장을 꿈꿉니다. 그 역할은 모두예술극장뿐만 아니라 모든 극장의 몫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극장은 모두를 위해 존재할 것입니다.

글 무용평론가 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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