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의 평안을 위한
진관사 수륙재
북한산(삼각산) 서쪽 기슭에 고려 시대부터
역사를 잇는 고찰이 있다. 조선 시대 한양
근교 4대 사찰 중 하나였던 은평구 진관동
진관사다. 이곳은 2009년, 일제 강점기
때부터 보관한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이
불단과 벽체 사이에서 발견되면서 한 차례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일장기에 태극기를
덧그린 흔적은 (1919년 3월 1일 이후)
독립운동에 참여한 스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항일독립운동 연구를 보완하는
주요한 자료로 소개됐다. 그렇다 보니,
‘태극기가 발견된 절’로 진관사의 존재를
알게 된 이도 많다. 하지만 이곳 진관사의
진면목은 왕가의 비호를 받는 절이자
수륙사(수륙재를 올리는 절)로의 역할을
명 받은 곳이라는 데 있다.
진관사의 기원은 고려 목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아래
지하 굴을 파서 당시 왕위 계승자였던
12살의 대량원군을 자객으로부터 구한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의 이름을 따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대량원군은 훗날
고려 8대 왕인 현종이다. 왕이 된 현종은
생명의 은인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인연을
계기로 진관사는 역대 왕의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 태조에 의해
수륙사로 지정됐고 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태조가
관음굴·견암사·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설하도록 명을 내렸고 매년 봄과 가을에 항상
거행되는 것으로 하며 전조(고려)의 왕씨를
위한 것이다”라고 진관사 수륙재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태조 6년, 29칸의
수륙사가 완성되면서 국가적인 정기 행사가
시작됐고, 수륙재에 대한 여러 기록이 연산군
때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이 기록에는 의식에 사용되는 그릇의 개수와
음식까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어 후세에 이를
복원·전승하는 유용한 자료로 사용됐다.
2010년에는 이 기록을 기반으로 장엄과
지화 일체를 복원했고, 그 결과 2013년
삼화사 수륙재와 함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현행 진관사 수륙재는 1977년 자운율사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매년 49일 동안
일곱 차례 재를 올리는데, 올해는
9월 3일의 입재를 시작으로 10월 21일
6재로 마무리됐다. 올해의 경우, 1397년
이후 625주년을 맞았을 뿐 아니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 1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오랜 역사와 의미를 더하는 수륙재의 의식은
일주문 밖에서 영가를 맞이하는 ‘시련’,
연에 영가를 모시고 들어와 가와 국수를
올리며 영가를 위로하고 모시는 ‘대령’,
영가의 고단함과 번뇌를 씻어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관욕’, 불교의 수호신인 신중을
초청하는 ‘신중작법’, 괘불을 대웅전에서
꺼내 괘불대에 거는 ‘괘불이운’, 영산회상을
재현하며 음악과 무용을 펼치는 ‘영산작법’,
조계종 큰 어른 스님이 들려주는 ‘법문’,
수륙재가 비롯된 연기설화에 대해 들려주는
‘수륙연기’, 시방세계에 수륙재가 열리는 것을
알리는 ‘사자단’, 하늘의 다섯 방위에 공양을
올리는 ‘오로단’, 불보살 성중을 청하는
‘상단소청’, 삼장보살을 청하는 ‘중단소청’,
외로운 영혼들을 청하는 ‘하단소청’,
모든 불보살 성중에게 공양하는 ‘상단권공’,
삼장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중단권공’,
외로운 영혼에 시식을 베푸는 ‘하단시식’,
재를 마치고 사찰 밖으로 배웅하는 ‘봉송회향’
순으로, 총 17가지로 이뤄진다.
수륙재에 ‘물 수水’ 자가 쓰이는 것을 보고
물에 살거나 물에 빠진 혼의 넋을 기리는
행위일 것으로 추측하는 이들은 의식
과정이나 장소를 의아해한다. 하지만
수륙재의 ‘수륙’은 여러 신선이 흐르는 물에서
음식을 취하고, 귀신이 깨끗한 땅에서 음식을
취한다는 데서 따온 말로, 세상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십법계의 뜻을 지닌 말이다. 결국
죽은 자와 산 자, 하늘과 땅 그리고 물까지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거기다
‘제祭’가 아닌 ‘재齋’를 쓰는 것은 이것이
제사와 같은 제의가 아니라 수행하고
참회하며, 평안과 행복을 위해 공덕을 쌓는
장이라는 것을 말한다. 즉, 세상 모든 존재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수행하고 참회하는 것이
수륙재다.
물론 수행과 같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어도
진관사를 찾을 이유는 다분하다. 1년여의
세월과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지화와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먹는다는
사찰음식만으로도 보고 느낄 것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 염색부터 시작해 꽃잎을 한
장씩 만들고 이어 붙여 완성하는 지화는 특별
전시를 열 만큼 수려하고,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된 계호스님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음식은 수백의 장독대가 늘어선
모습에서 느끼는 시각적 기대에 부응한다.
직접 보고, 느끼며 수행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랄까. 하지만 발품 팔지 않고도 진관사의
면모를 경험할 방법이 있다. 진관사 수륙재는
유튜브 중계를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현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상 서비스에는
인물 정보나 의식에 관한 정보까지 자막으로
제공해주니, 실제 현장에서보다 더욱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일찍이
수행이란 건 어디서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에서
배웠으니, 온·오프라인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진관사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 김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