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현대 공예
지난해 국제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서울을 찾으며 뉴스에는 연일 이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올해 9월
두 번째로 열린 프리즈 서울에 관한 관심 또한
뜨거웠습니다. 놀라운 것은 프리즈 서울을
찾은 관람객 중 1980~90년대생 MZ세대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아트에 관심을 갖는
연령대가 대폭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신진 구매자, 잠재 구매자로 여기고 이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표한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에 따르면 “종합적으로
회화는 모두에게서 가장 우선시되는
매체이며, 소장 경험 기간에 따라 초보
구매자는 드로잉이나 공예/디자인을, 그리고
경력이 쌓인 구매자는 조각으로 관심이
확대해 나간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100만 원 이상 500만 원 미만 작품에 구매가
집중되는 MZ세대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무래도 순수미술이라 칭하는 회화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인식되는 드로잉과
공예/디자인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요.
여러 정황을 살펴보며 눈에 띈 대목은 ‘공예는
왜 순수미술보다 가격이 저렴하게 여겨질까?’,
‘왜 은연중 순수미술보다 공예의 지위가 낮게
평가될까?’라는 것입니다.
이는 공예가들 또한 느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미술시장 안에서 순수미술이 누린
지위에 비해 공예의 처지가 불만족스럽다고
말이지요. 그래서인가 전시장의 흰색 좌대,
테이블 위 한편, 선반 한 귀퉁이에 놓이던
공예품이 벽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예·목공예 등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장신구가
되어 회화로서의 변화를 모색한 것이지요.
이는 미술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공예가가 귀띔해주길,
오브제를 주로 만들던 자신에게 최근 들어
갤러리에서 평면 작업, 액자형 작업,
즉 벽에 걸 수 있는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기존
오브제 작업보다 시간과 노동력이 덜 들지만
가격은 더 높게 책정되고, 심지어 더 잘
팔린다고 합니다.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를
만들던 한 공예가는 자신의 시그니처
형태를 축소해 벽에 거는 오브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구매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테이블이나 선반 위에
두는 공예품은 먼지가 쉽게 쌓이고 어떤
경우에는 공간을 크게 차지하며, 도자나 유리
소재의 경우 깨질 것이 염려되는 등 관리가
까다롭지요. 하지만 벽에 거는 작품은 공간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회화 작품을 소유한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벽에 거는
공예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요즘 젊은 작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최근
이러한 미술시장의 요구에 편승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벽에 거는 작업’,
‘예술로서의 공예’로 작업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봐야 할 것 같다고요. 같은 재료를
쓰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었지만, 거기에
‘기능’이 들어가는 순간 공산품 시장,
즉 디자인 시장과 비교당하며 가격 경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은 기능이 있는 공산품의 가격과 비교해
스스로 어느 정도의 가격 선을 맞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노동 값은 넣을 수 없게
된다고 말이지요. 그에 반해 순수미술로
넘어가면 자신의 작업이 순수하게 미적
가치로만 평가받으며 가격도 미술시장
안에서의 기준으로 책정되니 시간과 노동력
대비 예술로서의 공예가 작가에게 훨씬
이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공예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예는 ‘손으로
만든’ ‘아름다운’ 물건입니다. 순수미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18세기 무렵부터 미술은
실용성을 떠나 순수한 미의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했고, 공예는 예술보다는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뛰어난 기술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응용미술로 구분되었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공장에서 기계로 생산되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물건이 창조되기
시작했고요. 이에 손으로 일일이 정성을
다해 만드는 공예는 디자인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만들 수 없어 가격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공예가 살아남기 위해 찾은 새로운 길이
예술공예이고, 이것이 최근 들어 더욱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예계의 상황이 가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수요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자본시장의 원리이긴 하나 작가의 신념마저
흔들리는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지요. 그저 공예를 어느 특정
장르와 비교하며 평가하고 값을 매기기보다
순수하게 공예 자체를 바라보고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수련하듯 갈고닦은 기술과 시간, 작가
개인의 미적 감각과 철학, 재료에 얽힌
이야기 등 공예는 역사와 자연과 문화의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장르니까요.
글 박은영 공예·디자인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