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왜 공예가를 후원할까?
기업의 브랜드 캠페인은 대부분 그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합니다. 오랜 역사와 브랜드 고유의 뛰어난 기술력,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들이 장인 정신을 강조합니다. 장인 정신이란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공예가의 후원자로 나서는 브랜드가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예가들의 작품 세계에 빗대 캠페인 하는 방식이죠.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기에 꽤 괜찮은 방법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며 집 꾸미기가 대중적 관심을 받았는데, 좀 더 특별한 물건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예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브랜드와 공예가의 협업 캠페인이 더욱 주목받게 되었죠. 그저 공예가를 소비하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공예가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유통 채널을 만드는 등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젊은 공예가는 브랜드의 명성을 빌려 작품을 알릴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고요.
그중 지난해 글로벌 캠페인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LOEWE Craft Prize(이하 로에베 공예상)에서 한국인 수상자가 나와 국제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주 출신의 정다혜 작가가 제주의 오랜 전통 공예 중 하나인 말총 공예 기법을 자신의 이야기로 엮어 만든 ‘기器’ 형태의 작품 <성실의 시간>을 선보였죠. 로에베 공예상은 1년에 단 한 명의 우승자를 선정하는데, 전 세계 공예가들이 가장 탐내는 우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상금 5만 유로(한화 약 7천만 원)를 받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시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1846년 스페인에서 가죽 공방으로 시작한 로에베는 대부분의 유럽 럭셔리 브랜드가 그러하듯 최고 수준의 수공예 역사와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2013년에는 1984년생의 젊은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Jonathan Anderson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가죽 명가에서 감각있는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죠. 그는 2017년 로에베 공예상을 제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패션디자인이 오늘날 가장 큰 부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뼈대를 이루는 공예가 대중에게, 그리고 심지어 업계 내에서도 평가절하되는 현실이 무척 아이러니하다고 본 거죠. 이것이 로에베가 공예의 위상을 가시적으로 향상하는 것을 그 취지로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그는 공예가들이 작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야만 그 유산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공예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작업을 계속해갈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이거든요. 따라서 상금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참가자들이 로에베 공예상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더 좋은 기회를 더 자주 얻도록 돕는 것이 로에베 공예상의 진정한 순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Lexus가 2017년부터 전개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프로젝트도 국내 공예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업입니다. 이 또한 렉서스가 자신들의 장인 정신을 말하고자 만든 것입니다. 렉서스는 ‘타쿠미 정신’ 혹은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타쿠미’는 장인이란 뜻으로, 렉서스에서 특별한 기술과 감각, 경험을 지닌 직원을 이르는 호칭입니다. 드라이빙 마이스터부터 페인트, 용접, 바느질 등 렉서스 자동차를 만드는 다양한 공정에서 일하는 타쿠미들은 세심한 감각을 통해 공정상의 사소한 오차를 잡아내고 프로세스의 완성률을 높입니다. 렉서스 생산직 직원 가운데 2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대상자들이 3개월 이상 집중 교육을 받은 뒤 타쿠미로 거듭난다고 하네요. 이렇게 교육하는 이유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자동화된다 해도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훈련을 거친 타쿠미의 오감은 기계가 찾지 못하는 1mm 이하의 오차도 촉감으로 잡아내고, 자동차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도 포착해냅니다. 렉서스는 사람의 오감이 지켜내는 최고 수준의 완벽함을 크래프트맨십이라 생각하고, 이러한 장인 정신을 자동차뿐 아니라 일상 속 다양한 물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동차 회사인 렉서스가 공예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발전해갈 수 있는 생태계 형성을 위한 방법으로 공예가를 지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프로젝트를 만든 이유죠. 최종 우승자 1명과 파이널리스트 4명에게 상금을 지원하며,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시와 마켓 출품 기회를 제공합니다.
최근 공예가들과 협업하는 브랜드 중 눈에 띄는 브랜드 하나를 더 언급한다면 발베니The Balvenie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는 1892년 증류소 설립 이래 지금까지 전통 방식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리 재배부터 경작, 몰팅malting, 증류, 오크통 제작, 숙성 등 전 과정에 있어 수십 년 경력을 지닌 장인을 통해 전통 수작업 방식을 거치고 있죠. 이에 발베니 코리아는 브랜드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공예가들과 함께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부터 발베니 위스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에디션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장인들의 작품을
빌어 전통과 수공예의 장인 정신을, 현대 공예가들의 작품을 빌어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브랜드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반장 김춘식은 나주소반의 곡선미 넘치는 다리를 더욱 날렵하고 길게 늘여 위스키를 올려두고 마실 수 있게 만든 녹색 테이블을 선보이고, 선자장 김동식은 발베니의 오크통 조각을 합죽선 변죽에 사용해 부채를 펼칠 때마다 은은한 위스키 향이 나도록 했습니다. 옻칠 공예가 정해조는 위스키 잔을 만들고, 염장 조대용이 대나무와 실크 마감의 발을 만들어 전시장 곳곳에 드리웠습니다. 채상장 서신정과 소목장 소병진이 함께 만든 위스키병을 위한 선물함과 장식장이 주목받기도 했죠.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다양한 메세나 활동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예 교육에도 적극적입니다. 공예는 안목을 높이는 데 필요한 교육이며,
이는 곧 자신들의 미래 고객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을 ‘메세나’라고 하는데, 주로 순수미술·공연·음악 등에서 이루어지던 메세나 활동이 최근 국내에서 리빙 트렌드와 맞물리며 공예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아마도 에르메스의 메세나 철학과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글 공예·디자인 애호가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