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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여백의 울림
이우환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우환 선생님께 초대받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 굉장한 영광이었다”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부산 첫 전시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가 망설임 없이 전시 초대에 응한 건 이우환 화백 때문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우환 공간’이 조성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덕분에 부산시립미술관은 신바람입니다. 방탄소년단 RM이 이우환 공간을 다녀가면서 아미들의 성지로도 등극했죠.

이우환 화백은 행복한 화가입니다. RM 덕분에 MZ세대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탔지만 이미 해외에서 더욱 주목하는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과 더불어 이우환 이름을 건 개인 미술관이 일본 나오시마와 ‘고흐가 사랑한 도시’ 프랑스 아를에도 있습니다. 유명 작가의 고향에 짓는 수장고 같은 미술관이 아닌, 동시대 살아 있는 작가로서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교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 거장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철학적인 작가,
이우환

1936년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으로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196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미대생에서 철학과로 전과를 한 건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 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등의 철학책에 빠진 게 지금의 ‘미니멀 아트’, 추상화를 하게 된 배경입니다. 1969년 ‘사물에서 존재로’라는 논문으로 일본 미술 출판사 예술평론상을 수상하면서 철학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1973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 디자인 명문 타마미술대학교에서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이우환 그림이 국내에 알려진 건 2007년부터로, 이른바 돈 되는 그림 ‘아트테크Art-Tech’ 광풍을 몰고 온 시기입니다. ‘내수용 작가’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난 건 2011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2014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인전을 열면서입니다. 당시 베르사유 궁전 마당에 알루미늄 철판을 깔고 아치형의 강철을 세운 강철 무지개를 선보였는데, 하늘과 주변 경관을 포용하는 작품은 동서양의 경계를 뛰어넘고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이질적이지 않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작가 최초의 전시로 ‘K-아트’의 존재감과 이우환 이름 석 자를 세계 미술계에 각인하는 계기가 됐죠. 베르사유 전시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미술기관 서펜타인 갤러리, 퐁피두 메츠 센터, 미국 워싱턴의 허시혼 박물관 조각정원 등 세계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러브콜이 쏟아졌고, 그는 한국 작가가 아닌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백남준 이후 세계적인 한국 미술 거장으로 등극했지만, 2016년에는 위작 사태로 영광의 상처가 새겨집니다. 직접 나서 작품의 진위를 따지던 그는 위작 논란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자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나라 망신”이라는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었습니다. 현재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높은 작가입니다. 2021년 서울옥션 8월 경매에서 1984년 작품 <East winds(동풍)>이 31억 원에 낙찰돼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생존 작가 중 미술 시장에서 30억 원을 넘긴 것은 처음입니다.

텅 빈 캔버스에 점 하나,
돌멩이와 철판

“뭘 보라는 거야?”, “나도 그리겠네!” 그의 작품은 보기엔 쉬운데, 대체 뭘 그렸는지 모르겠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그림이라고 하는데 텅 빈 흰 캔버스에 점 하나나 두 개, 세 개가 그려져 있거나 선이 죽죽 그어져 있는 게 전부입니다. 조각 작품도 커다란 돌멩이 하나와 그 아래 놓인 녹슨 철판이 다입니다.

이 화백이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2011년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때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기 그림과 조각이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고, 전시 안내인이 “앞에 있는 이게 조각이고 그림”이라고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니 이런 거 말고, 조각 말이야 조각”이라고 역정을 냈고, 안내인이 “이게 조각이고 회화”라며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죠. 그 순간 이 화백과 눈이 마주친 안내인도 자신도 멋쩍어했다고 합니다.

이 화백은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작품이라는 상식에 맞지 않은 작품”이라고, 자신의 작품론을 설명했습니다. “내 작업의 특징은 관점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만남을 제안하는 것”이라고요. “나의 모든 예술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암시’다. 점은 그림이 아니라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인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일 뿐이다.” 큰 화면에 점 하나만 있는 그림의 제목은 ‘대화Dialogue’ 연작입니다.

그림은 이렇고 조각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벗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본다는 것의 의미는 사물을 사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물감은 물감대로 캔버스는 캔버스대로 덜 건드리고 서로가 인정하면서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 현대미술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백의 울림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동양화의 여백의 미와는 다른 파동입니다. “점 하나를 찍었지만,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부딪혀 어떤 울림이 나오고 커다란 무언가가 일어나는 ‘여백 현상’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종을 칠 때 종과 사람, 공간 전체가 있어 그때 퍼지는 울림 같은, 그 여백의 울림을 추구하는 작업입니다.”

쉬워 보이는 그림이지만,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입니다. 단순한 점 하나를 찍기까지 1년이 걸릴 수도, 3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수십 번의 밑칠과 공기 반 소리 반 같은 생각의 힘이 응축되고, 시간과의 지난한 투쟁과 붓질의 오랜 훈련의 결과가 점 하나의 기운생동으로 창출됩니다. 돌멩이 작품(‘관계항’ 연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쁜 돌이 아닌 ‘아무렇게나 생긴 돌’을 찾기 위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40~50년째 찾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의 신념은 1960년대 일본의 전위미술 운동을 이끌며 창립한 ‘모노하mono-ha, 物派(모노파)’ 초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들지 않는다’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처음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돌·나무·흙·철판 등의 사물에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표현하는 그들을 향해 당시 일본 미술계에서는 “모노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지 사물을 주변에 던져놓을 뿐”이라고 치부할 정도였죠.

창조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새롭게 환기하는 작품은 단순함이 미학인 21세기에 명상과 힐링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공간, 무한의 감각을 경험하게 합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이 화백의 전시가 오랜만에 서울에서 열립니다. 오는 4월 국제갤러리에서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Stirling Calder와 2인전을 펼칩니다. “동시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며 칼더 재단에서 먼저 제안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이 화백의 영향력과 ‘K-아트’의 위상을 전합니다.

글 뉴시스 미술전문기자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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