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 - 가스파르 울리엘 추모 영원한 끝, 그 시작
청춘의 모습으로 박제가 된 사람들이 있다. 멀게는 제임스 딘과 매릴린 먼로가 반항과 섹시의 아이콘으로 박제됐고, 가깝게는 장국영, 리버 피닉스, 브리트니 머피와 히스 레저 같은 배우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우리를 떠났다. 그리고 2022년 초 가스파르 울리엘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죽음을 앞둔 작가 루이 역할로 가스파르 울리엘이 빛난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을 다시 봤다.
차가운 비극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명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나탈리 베이)는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했고, 여동생(레아 세이두)은 오빠를 맞이하지만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동생을 못마땅해한다. 게다가 루이가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도 전에 가족은 서로에 대해 칼날 같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가족은 만나면 줄곧 상처를 준다. 그것이 그리움 때문인지, 그리운 시간 동안 쌓인 원망 때문인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단지 세상의 끝>은 발톱을 잔인하게 세우고 상대방에게 잔인하게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한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서로를 품고 위로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자주 만나는 가족의 보편적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자비에 돌란 감독은 그의 전작 <마미>나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 보여준 것처럼 결핍된 가족과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상하게도 불행은 유전처럼 대물림되는 것 같다. 그자비에 돌란은 애먼 가족의 화해를 내세우지 않고, 고전적 방식으로 주인공의 미래를 에둘러 방치한다. 그래서 무척 차갑다.
뜨거운 희극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 사건보다는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폭발시킨다. 그자비에 돌란은 배우들이 불화하는 순간들을 연극처럼 화면에 부려놓는다. 그래서 캐스팅이 영화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극적인 프레임 속에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야기의 절반 이상을 이끈다.소동의 중심에서 극적인 심리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가스파르 울리엘은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와 초조함, 기대가 깨어진 것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자조를 오가는 심리적 변화를 허망한 눈빛과 한숨과 같은 침묵 속에 드러낸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적의를 드러내지만 또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치 이해는 못 하지만 사랑은 한다는 그 말의 무책임하고 냉정한 여운은 씁쓸한 희극의 뒷맛을 남긴다. 어쩌면 나의 불행이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가장 무책임하고 손쉬운 변명을 택하는 순간, 결국 불행은 익숙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뜨거운 희극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 사건보다는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폭발시킨다. 그자비에 돌란은 배우들이 불화하는 순간들을 연극처럼 화면에 부려놓는다. 그래서 캐스팅이 영화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극적인 프레임 속에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야기의 절반 이상을 이끈다.소동의 중심에서 극적인 심리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가스파르 울리엘은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와 초조함, 기대가 깨어진 것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자조를 오가는 심리적 변화를 허망한 눈빛과 한숨과 같은 침묵 속에 드러낸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적의를 드러내지만 또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치 이해는 못 하지만 사랑은 한다는 그 말의 무책임하고 냉정한 여운은 씁쓸한 희극의 뒷맛을 남긴다. 어쩌면 나의 불행이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가장 무책임하고 손쉬운 변명을 택하는 순간, 결국 불행은 익숙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 남자, 가스파르 울리엘
여섯 살에 도베르만에게 물려 생긴 큰 흉터가 얼굴에 있는데, 얼핏 보조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7년 <한니발 라이징>의 한니발 렉터 역을 맡아 주목받았으며, <단지 세상의 끝> <생 로랑> <더 댄서> 등 다양성 영화를 선호하는 배우였다. 2022년에는 3월 공개 예정인 드라마 <문 나이트>에 출연했지만 스키장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나이가 들어 더욱 아름다워질 그의 주름과 한없이 깊어질 눈매를 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