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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어쩔수 없이 보게 된 그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모저모

한국에서 현재 가장 많이 회자되는 콘텐츠는 단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파급력 부분에서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오징어 게임>은 해외 시청자 반응이 폭발적이라 인기 요인, 잔인한 장면과 선정적 요소에 대한 비판, 각본에서 엿보이는 레퍼런스 등 극 내용을 분석한 글이 넘쳐난다. 이러한 이슈는 한차례 지나간 해일과 같으니 여기서까지 깊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나는 <오징어 게임>을 결말까지는 못 봤다. 그러니 이 칼럼이 기존 <오징어 게임> 리뷰와 차별성이 다소 있다면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의 글이라는 점이다. 이 시리즈가 내게 인상적인 것은 예고편만 봐서는 볼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조차 어쩔 수 없이 보게 만드는 현시점의 분위기다.
넷플릭스는 공격적 투자로 평균적으로 분기마다 새 오리지널 시리즈(드라마)를 2~3편 정도 제작하고, 각 시리즈가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공개 시점에 간격을 둔다. 8월 27일에는 <D.P.>가 공개됐고 이 시리즈 역시 한국 넷플릭스에서 톱1위를 차지했다. 군대 내 폭력을 소재로 한 현실성 짙은 이야기가 비평과 화제성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때, 9월 17일 <오징어 게임>이 공개됐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비평은 <D.P.>보다는 호불호가 갈렸다.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와의 유사성, 여성 캐릭터(극 중 한미녀)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SNS와 연예 뉴스를 달궜다. 자극적 장면과 빠른 스토리 전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는 반응도 다수였는데, 욕을 먹든 찬사를 받든 드라마가 세간에 오르내리는 일은 호재다. 더 크게 반응이 터진 것은 시리즈 공개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북미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이 드라마를 둘러싼 해외 시청자의 폭발적인 관심은 이 짧은 지면에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다.

<오징어 게임>이 이렇고 저렇고 요렇대

10월 13일 기준으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억 1,100만 구독 가구가 시청했으며 이는 넷플릭스 역대 흥행 1위인 <브리저튼>의 기록을 깬 수치다. 팬데믹 시대에 콘텐츠 시장 중심에 있는 넷플릭스에서 세계 1등을 먹어버린 것이다. 서양인이 달고나를 만드는 영상이 틱톡에 올라오고, 독일 거리에서 딱지를 치는 영상이 SNS에 공유됐다. 멕시코의 한 지역에서는 <오징어 게임> 초대장을 패러디해 전기 요금 고지서를 발송했고, 미국과 호주에서는 저학년이 <오징어 게임>을 모방하지 않게 가정에서 넷플릭스 시청을 지도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도 한다. 또한 로이터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의 대히트 후 언어 학습 채널 두오링고에 한국어 학습을 신청한 신규 사용자가 영국 76%, 미국에서 40% 증가 했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할 때에는 특정 작품과 아이돌의 ‘특수한’ 경우로 인지된 것이 <오징어 게임>에 이르자 ‘한국 엔터테인먼트에 뭐가 있긴 있구나’ 싶은 경지에 올랐다. ‘국뽕’에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의 뒷이야기까지도 ‘드라마틱’하다. 10년 동안 투자받지 못한 황동혁 감독의 각본에 넷플릭스가 과감하게 투자했다, 제작사 싸이런픽 처스는 직원이 1명 있는 작은 회사이고 김지연 대표는 소설가 김훈의 딸이다, 넷플릭스는 시리즈가 성공해도 제작사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 한국 드라마로 넷플릭스 좋은 일만 시켜줬다는 등의 뉴스가 넘친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끝까지 보지 못했고 ‘글로벌’ 감각으로 한국 영상산업의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다. 다만 이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확산 되고 각종 소비 지향적 마케팅으로 활용되는 방식이 현시대를 대변하는 게 신기해 그 순서를 되짚어 볼 뿐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언어장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한날한시 전 세계 구독자가 같은 콘텐츠를 보고 매료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곧바로 2차 패러디 영상과 밈meme을 제작해 틱톡과 유튜브에 전파한다. 개발자들은 드라마에서 영감 받은 게임과 앱을 제작해 앱스토어에 업데이트하고, 인스타그램과 스노우에서도 패러디 필터를 제작한다. 브랜드에서는 오징어가 들어가는 각종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내놓고 광고에도 드라마 유행어를 활용한다. 치킨·과자·스포츠웨어 브랜드는 드라마 속 기호를 이용해 제품을 만든다. 이 돌풍에 힘입어 넷플릭스 역시 직접 티셔츠를 제작해 핼러윈 시즌에 맞춰 판매한다. 이제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서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SNS 피드를 따라갈 수 없다. 절대 보고 싶지 않던 사람조차 온·오프라인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드라마를 보고 한 마디씩 얹는다. 인기 순위는 더 올라 가고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 모든 게 한 달 사이에 일어났다.

모두 한곳만 보는 세상은 징그럽지 않나

그런데 이 ‘반응’이 콘텐츠 성공 이후에 생긴 자연 발생 효과가 아니라 기획할 때부터 염두에 둔 것이라면? 드라마를 이용해 게임을 하고, 연관 상품을 제작하도록 사전에 게임 기호를 디자인 한 것이라면? 시청자가 밈을 제작하기 용이하도록 유행어가 될만한 대사와 인형 가면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한 것이라면? 드라마 회당 몇 분 몇 초에 일어날 감정의 연쇄작용 역시 섬세하게 계획된 것이라면? 과대망상일까?
기획·연출·음악·조명·미술 등 각 분야가 훌륭하게 분업화된 한국 제작 지형에서 뛰어난 가성비로 매끈하게 제작돼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간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우리의 현재를 조금은 암담하게 담고 있다. 어떤 이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이제 모두가 한국 콘텐츠를 주목할 것이고, 제작사와 배우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성공은 시장을 확대하기는 하되 여전히 가성비와 소비재 위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또한 부가 상품으로 이토록 높은 수익을 올렸으니 이 후 제작될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의 공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오징어 게임’은 무엇이 될까. 일단 11월에는 넷플릭스에서 연상호 감독, 유아인·박정민 주연의 <지옥>이, 12월에는 배두나·공유 주연의 <고요의 바다>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김송희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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