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매드몬스터 오빠 가짜라는 루머 퍼뜨리지 말아줄래요?

보통 이런 설정값을 가진 ‘부캐’(한 사람이 지어내 연기하는 인물, 모두가 가짜임을 알지만 모른 척 함께 논다)의 활동을 검색하면 적어도 나무위키나 포털 내 정보 검색 채널에서는 진실을 알려주건만, 매드몬스터는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조차 그들의 가상세계관이 나열돼 있다. 다행히 친구는 “매드몬스터는 세계적 아이돌이고, 매드엔터테인먼트가 소속사야. 전 세계 45개국에 팬클럽 인구만 60억”이라 주장하지 않고 친절히 매드몬스터에 대해 알려줬다. 샌드박스 네트워크(유튜브 콘텐츠 제작사)의 빵송국 채널에서 기획한 그룹이며 데뷔 연도와 이전 타이틀곡, 멤버 간 불화설이나 1집 활동 에피소드 역시 만든 이야기라고. 대중문화 칼럼을 오래 써오고 있지만, 부캐의 세계관까지 공부하고 팩트 체크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내가 늙은 것인가, 세계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인가.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유야호나 개그맨 김신영의 부캐 다비이모까지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신곡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드라마 작가가 시놉시스를 짜듯 부캐의 지난 활동 에피소드와 서사까지 촘촘하게 설정해 놨으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헛갈린다. 유튜브 빵송국 채널에 들어가면 매드몬스터라는 아이돌 그룹의 각종 영상이 올라와있다. 신곡 콘셉트 회의, 연습 영상, 쇼케이스와 일상 브이로그까지 영상 떡밥이 무궁무진한데 어느 댓글처럼 “아이돌 하는 건 다 하고 있”으니 진짜 아이돌이라고 믿을 수밖에. 하지만 이 그룹의 멤버 탄과 제이호의 본체는 개그맨 곽범과 이창호다. 이들은 남자 아이돌이 팬 서비스 영상을 찍을 때 보여주는 전형적 몸짓이나 말투를 따라 할 뿐 아니라 외모까지도 저 아이돌처럼 변신했다. 메이크업이나 가발 따위로 변신하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는다. 얼굴 변형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조그마한 얼굴에 커다란 눈, 오똑한 콧대를 재현한 것이다. 더구나 이 애플리케이션은 그다지 정교하지 않아서, 얼굴 쪽으로 손이 갈 때마다 마법이 깨지듯 원래 얼굴로 돌아오고 얼굴 바깥 주변부가 일그러지기도 한다. 매드몬스터는 이러한 부작용까지 코미디로 활용한다. 얼굴 보정과 “매드몬스터에게 악귀가 씌었다”는 논란이 월드클래스 아이돌 유명세에 따른 악의적 소문이라며 소속사를 통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해명을 한다. 이들의 설정은 코미디일지 몰라도 노래나 안무, 활동하는 모습만큼은 진짜 아이돌과 같고 노래 역시 중독성이 있어서 <내 루돌프> 뮤직비디오는 벌써 유튜브 조회수 666만을 돌파했다.

가상세계관에 진심인 사람들

조회수와 미래적 설정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아이돌이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Aespa다. 그룹명 에스파는 ‘Avatar와 Experience’를 표현한 ‘ae’와 양면이라는 뜻의 영단어 ‘aspect’를 결합해 만든 이름으로,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세계관이 바탕이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야겠다. 에스파의 멤버는 몇 명일까? 에스파는 4인조일까 8인조일까. 멤버는 카리나·윈터·지젤·닝닝 4명이지만 이들의 뮤직비디오와 온라인 인터뷰에는 나머지 4명의 ‘아이 에스파’가 등장한다. 에스파 멤버 4명의 개성을 본뜬 아바타 ‘아이^Ae’와 함께 가상 세계에서 활동한다는 설정이다. 에스파의 신곡 <넥스트 레벨>의 뮤직비디오 콘셉트는 퓨처리즘^Futurism이고, 영화 <아바타>나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알록달록한 가상 세계가 등장한다. 신곡에는 “광야로 간다”는 가사가 있는데, 이 역시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에스파와 아이(에스파 아바타)의 연결을 방해하는 ‘블랙맘바’를 찾기 위해 비정형의 공간인 광야로 떠나는 멤버들의 여정이 가사이자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아바타와 함께 가상 세계에서 모험을 한다는 세계관은 독특하지만 사실 SM엔터테인먼트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세계관 설정을 꾸준히 해왔다. 보아의 데뷔곡은 <ID PeaceB>이고, 동방신기와 엑소 역시 동방불패와 초능력 설정을 가지고 데뷔했다. 앞서 소개한 매드몬스터가 ‘60억 팬클럽’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에스파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정말로 1억 뷰다. 이는 K팝이 이제 한국 내수 시장보다는 글로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가능한 조회수다. SM엔터테인먼트의 유튜브 공식 채널 구독자는 2,790만 명이고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공식 채널 구독자는 5,750만 명이다. 남한 인구수가 5,182만이니까 전 국민이 유튜브를 구독해도 나오기 어려운 숫자다. 이제 K팝, 그중에서도 아이돌 산업은 전 세계 팬들의 눈과 귀가 좇고있는 궁극의 트렌드이자 문화 흐름이다.
매드몬스터와 에스파는 지금 한국의 10대가 가장 동시대적이라고 인정하며 호감을 표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애플리케이션과 아바타라는 기술로 ‘놀이’를 벌이고, 자신들이 정교하게 짜놓은 세계관을 세련되게 밀어부친다. 자신들이 그 스토리텔링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내놓는 결과물, 음악과 뮤직비디오 등에서 첨단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준다. 두 그룹은 모두 팬과 소통하는 영상에서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를 취한다. 그야말로 ‘Z세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