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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선율과 판결 사이 법은 만능이 아니다, 적어도 예술에서는

문화예술 변호사로서 하루에도 여러 번 법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를 오가곤 한다. 스스로 두 언어를 연결해주는 통역사라고 자청하며 최대한 곡해 없이 뜻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간극이 유난히 깊어 보일 때는 바로 ‘표절 문제’를 대할 때다.

창작의 고통은 산고産苦에 비유될 정도로, 예술가에게 창작물은 존재 가치이자 분신 같은 존재다. 예술가는 표절에 있어 예민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예술가들은 표절 시비가 발생하면 법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법의 판단에 또 한 번 좌절하거나 상처받는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표절’ 개념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흔히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두 용어의 정의는 다르다. 표절은 일단 법률 용어가 아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에 ‘표절’을 정의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고, 통상 표절은 법적 문제뿐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남의 지적 노동의 산물인 창작물을 훔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는 저작권법에 따른 개념으로서 단순히 타인의 창작물을 훔치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인정되지 않고,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한 ‘저작물’을 타인이 무단 사용하거나 도용했을 때 저작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의 개념이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저작권법 제2조 제1호)이라고 정의하는데, 바로 이곳이 예술의 언어와 법의 언어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지점이 된다.

쉽게 말해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이란 외부로 드러난 ‘표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그 안에 포함된 아이디어나 콘셉트, 사상은 보호하지 않는다. 이 법리에 따르면 아이디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기법이나 방법, 화풍, 줄거리, 주제, 캐릭터의 성격 역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고, 설령 유사하더라도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구체적인 대사의 표현이 유사한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지만, 단순히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같은 줄거리가 유사하다는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예술에 있어 작품의 핵심은 외부로 드러난 구체적인 표현보다 작품에 내재한 작가의 아이디어, 사상, 콘셉트에 있을 때가 많다. 실제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표절 논란도 아이디어나 사상, 콘셉트의 도용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작권법상 법리 때문에 아이디어가 무단 도용된다 하더라도 사법부에서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고, 실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표절 논란이 의외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예술의 관점에서 타인의 창작물을 훔친 표절과 법률적 관점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개념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실 관계와 다른 법률적 판단이 나올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법률적 판단이 사실 관계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화예술 변호사로서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표절 논란의 최종 결론을 언제나 법에 기대는 것이 과연 예술계를 위해 진정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사법 만능주의에 빠져 해당 분야에서 이뤄져야 하는 진지한 논쟁을 중단하고 모든 결론을 사법부에 맡겨버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표절 논란에 대해 사법부가 내리는 답과 예술계가 내리는 답은 다를 수 있음에도 예술계 스스로 답을 구하는 절차는 생략하고 법이 내리는 답부터 구하다가 법의 판단이 모든 논쟁을 잡아먹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표절된 작품이 기존에 없는 독창적인 작품인지, 상대방의 작품을 도용이 아니라 또 다른 예술적 변주로 볼 수는 없는지와 같은 진지한 논쟁을 통해 예술계만의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현실을 모두 포섭하지 못하는 법이 아니라 예술계에서 답을 얻지 못해 법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려면 사법의 판단과 별도로 예술계가 끊임없이 논쟁해야 한다. 쉬이 가해자와 피해자, 유죄와 무죄로 답을 내리기보다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예술계 내부에서 충분한 논쟁과 담론 형성을 거쳐 표절에 대한 윤리 기준이나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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