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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투명하고 솔직하게, 안무하고 작곡하는 김재덕의 춤

‘음악에 맞춰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함. 또는 그런 예술.’ 무용의 사전적 의미다. ‘감정과 의지를 표현함’이라는 정의 때문에 사람들은 무용 공연을 볼 때마다 ‘의미’를 찾는다. 정답은 없다. 현대무용일수록 더 그렇다. 의미를 찾고 개념을 파헤치는 것은 근대적이다.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을 이끄는 무용가 김재덕을 만났다. 그는 <다크니스 품바>, <시나위>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무용 최전선에서 활동 중이다. 음악도 자신이 직접 만든다. 김재덕에게 무용은 무엇인지 묻는 순간,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답이 돌아오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용은 무용이죠.” 단순하고 짧은 말이었다. 김재덕이 어떤 예술가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김재덕은 무용을 ‘몸의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관객이 무용을 보며 의미 찾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용수가 보여주는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면 그뿐이다. 한 번의 인터뷰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김재덕과 대화를 마친 순간 그가 어떤 포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투명하고 솔직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무용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춤을 추기는 했어요. 초등학교·중학교 때 서태지와 아이들·유승준 노래에 춤을 췄죠. 잘 추진 못했지만, 즐긴 것 같아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도 워낙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명동의 라이브 카페에서 흑인 영가를 부르셨거든요. 원래는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뮤지컬의 꿈을 심어줬어요. 뮤지컬을 하려면 무용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고등학교 시절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으로 편입했어요. 당시 학과장님이 발레 전공이라 처음엔 발레를 했는데요. 2학년 때 한국무용을 했고, 3학년 때는 대학 진학을 위해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안양예고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노는 걸 좋아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멀죠. 책만 잡아도 바로 잠이 오는 편이었어요.(웃음)

지금은 책을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무용을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고요.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철학이요. 2011년부터 언어에 관심이 생겨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를 읽었어요. 그런데 철학은 ‘드래곤 볼’ 모으기처럼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른 사상을 함께 읽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피노자·하이데거·칸트·니체 등도 읽게 됐고요. 철학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용 못지않게 음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음악도 직접 창작하고 있고요.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나요?
춤과 비슷한 시기였어요. 어릴 때부터 춤도 추고 노래도 했죠. 중학교 때 록 밴드에서 보컬도 했었어요. 신해철·크라잉넛 노래도 불렀고, 메탈리카Metallica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도 자주 불렀어요.

10대 시절 김재덕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였나요?
‘무정부르스’를 부른 가수 강승모 형이요. 어머니와 친분이 있어서 어릴 때 몇 번 라이브 카페에서 승모 형이 노래하는 모습을 봤어요. 통기타 하나로 에너지의 끝을 보여주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예술의 경지였죠. 어머니가 “저런 것도 록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점잖던 승모 형이 노래하며 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감정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었고요. 그 기억이 무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어요.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광적인 것이 좋은 줄 알아서 특이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죠. 하지만 2~3학년 때, 특이한 것이 때로는 지나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감정을 감추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그때가 2003~2004년 무렵이었는데 너무 튀는 건 괴짜처럼 보이던 시대였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학과장님이 추천했어요. 당시 학교에선 “한예종이 정식 대학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열심히 해서 한예종 무용원에 들어갔어요. 전미숙·유미나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죠. 한예종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무용가로서 정신과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분들의 확고한 가르침을 통해 동시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 배웠어요.

안무가를 꿈꾼 것은 대학에 입학한 뒤였나요?
처음부터 안무를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한예종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다 보니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더라고요. 인터뷰에서 항상 하는 말인데, 신해철의 앨범 『모노크롬Monocrom』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모노크롬』은 서양음악에 한국적인 음악이 결합한 앨범인데요. 고등학교 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이런 것이 예술적인 작업이구나” 생각했어요. 들국화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한국적인 색깔을 넣는 방법도 고민하게 됐고요.

학교에서 지금의 아내(현대무용가 김보라)를 만났죠?
그때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어요.(웃음) 한예종 졸업생들이 만든 LDP무용단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가까워졌죠. 저희의 춤 스타일은 전혀 달라요. 하지만 같은 무용가로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아요. 서로 힘도 되고요. 집에서는 맨날 무용 이야기만 해요.

한국무용가 정혜진·현대무용가 김성훈과 협업해 음악과 춤을 만든 서울시무용단 <일무>(2022) ⓒ황필주/세종문화회관

김재덕에게 무용이란

졸업 이후 전문 무용가로 활동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2005년 ‘볼레로’에 맞춰 안무한 <크레셴도>가 시작이었어요. 이 작품으로 한국무용협회 ‘젊은안무가전’에 나갔는데요. 여기서 선정되면 세계무용연맹에서 여는 ‘컬러 오브 댄스’라는 축제에 나갈 수 있었어요. 매년 특정 색깔을 선정해 그 색깔에 맞는 안무작을 선보이는 축제죠. <크레셴도>가 선정되면서 2006년 12월에 열린 ‘컬러 오브 댄스’에도 나가게 됐어요. ‘검은색’이라는 주제에 맞춰 만든 작품이 25분 길이의 <다크니스 품바>였어요.

<다크니스 품바>는 무용가 김재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작품이라 애착이 커요. 지금도 많은 공연장에서 <다크니스 품바>를 찾고 있고요. 국내에서 <다크니스 품바>처럼 많이 공연한 현대무용 작품도 없을 거예요. 이제는 공연 횟수를 세지 않을 정도니까요.(웃음) 대단한 의미를 담은 작품은 아니에요. 창작 주제가 검은색이라서 ‘검은 때’가 생각났고 자연스럽게 ‘품바’가 떠올랐죠. 검은색에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춤과 음악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다크니스 품바>를 통해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도 생겨났습니다.
‘모던테이블’이라는 이름은 사실 음악가로 활동하기 위한 일종의 가명이었어요. 직관적으로 책상을 보고 ‘테이블’이 떠올랐고, ‘현대의 모든 걸 올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라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었죠. 처음 <다크니스 품바>를 발표했을 때 모던테이블은 일종의 프로젝트였고, 그러다 2014년 LIG문화재단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직업 무용단이 됐어요. 현재 저를 포함해 무용수 8명이 방배동 연습실로 거의 매일 출근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던테이블을 남성 무용수로만 꾸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프로젝트로 활동할 때는 제가 아는 무용수가 없다 보니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아는 사람들과 하면 대화도 빨리 통하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성 무용수들로 구성됐죠. 그리고 제가 가진 움직임도 워낙 스태미나(체력)를 요구해서, 남성에게 어울리는 동작이 많아요.

<다크니스 품바>에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해지는데요. 김재덕에 관한 소개 글을 보면 ‘서사 구조를 배제하고 움직임 중심의 표현을 추구한다’는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서사에 큰 관심이 없어요. 추상적인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나열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흥미로워요. 그게 자유롭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김재덕에게 ‘무용’은 무엇인가요?
무용은 무용이죠. 춤이에요.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데, 저는 고조선적 사고를 다시 가져올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무슨 뜻이냐면, 고조선 때 선조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었어요. 보이는 것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하늘과 땅, 그리고 그림자도 있는 그대로 느꼈어요. ‘무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나의 트렌드 같아요. 무용이라고 하면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 있고, 그 속에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안무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몸의 순수성이요. 우리의 몸은 수많은 궤도를 가지고 있어요. [팔을 움직이고 회전시키면서 몸으로 궤도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많은 감각이 있죠. 다양한 감각과 궤도를 몸 자체로 표현해 몸의 순수성을 드러냄으로써 몸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업을 좋아해요. 안무할 때도 몸 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면 몸 밖의

7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한 <다른, 춤을 위해 Part 1> 중 김재덕의 안무작 <Breathing Attack II 中> ⓒBAKi/대학로극장 쿼드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동작 자체를 느끼면 돼요.”

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 해외상임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0년 인도네시아 댄스 페스티벌에서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하다 인연을 맺었어요. 그곳에서 만난 T.H.E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이 자신들의 작품도 안무해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죠. 20대 시절 처음 해외 무용단에서 작업을 제안받은 거라 기분이 좋았아요. 거의 매년 싱가포르를 찾아 작품을 안무하고 있어요. 올해도 <코랄Chorales>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모던테이블도 매년 해외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저와 모던테이블의 춤이 입소문을 타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다크니스 품바>는 오랜 시간 이어온 작품이라서 더 그런 것 같고요.

서울시무용단 신작 <사계>를 한국무용 안무가인 국수호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서울시무용단으로부터 신작 안무를 제안받았어요. 저 혼자 안무하는 것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무용가와 협업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수호 선생님과의 협업을 떠올렸는데, 선생님도 저희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지난해 12월부터 세 번 정도 선생님을 만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계四季’라는 주제가 나왔고요. ‘사계’는 계절을 뜻하면서 동시에 인생을 가리키기도 하죠. 제가 인간의 탄생과 화려함을 의미하는 ‘봄’과 ‘여름’, 국수호 선생님이 중년의 멋짐과 나이듦을 보여주는 ‘가을’과 ‘겨울’을 안무하기로 했어요. 선생님의 동작을 보며 일부 요소를 제가 안무한 장면에 넣었고, 선생님은 반대로 제 동작에서 가져온 부분을 ‘가을’과 ‘겨울’ 부분에 넣었어요. 거의 7개월 동안 작업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 작품에서 의미는 생각할 필요 없어요. 몸이 보여주는 다양한 선, 그리고 힘을 느끼면 돼요. 동작 자체를 느끼면 됩니다. <사계>의 경우 김재덕의 관점에서 봄과 여름이 어떤 것인지 느끼면 되는 거죠. 하지만 국수호 선생님이 안무한 가을과 겨울은 다를 거예요. 선생님께는 서사가 중요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니까요. 추상적으로 시작해서 서사적으로 가는 작품이라 관객으로선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겁니다.

무용가로서 목표가 있나요?
무용가로 사는 것 자체가 목표예요.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기쁘죠. 쉽지만은 않아요. 그런 면에서 국수호 선생님 같은 분들께 감사해요. 지금의 무용계가 존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춤을 췄으니까요. 무용이 대중화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현대무용을 취미로 하는 분들도 많아져서 무용과 대중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크니스 품바> 공연이 계속 이어져요. 제주·성남 등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고요. 말레이시아에서 현지 예술가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코레아시아 프로젝트’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가서 현지의 전통춤, 노래를 리서치했고 이걸 토대로 현지 아티스트와 작품을 만들 계획이에요.

김재덕의 꿈은 무엇인가요?
모던테이블 단원들과 같이 춤을 추는 것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출 겁니다.

글 장병호 이데일리 기자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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