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열이 만들어가는
오늘의 현대음악, 내일의 고전
어느 한여름의 밤 9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 수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과 진은숙의 작품을 연주하는 ‘현대음악 공연’이었지만, 객석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감돌았다. 해설과 공연이 시작된 후로 객석에선 때론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엄청난 몰입이 느껴졌다.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을 듣고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됐지만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에 머물지 않고 가지각색 매력을 지닌 현대음악을 선보여온 최수열이 공연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의도를 잘 파악해주셨네요. 악단의 감독으로 구성한 프로그램과 제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의 프로그램은 제게 무척 달라요. 저는 사실 제 이름을 크게 내거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악단 공연할 때도 제 이름은 늘 작게 한구석에 넣고 그래요. 악단이 돋보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몇 년 전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제 이름을 걸고 기획한 시리즈가 하나 있었어요. <최수열의 고전두시>라고 오후 2시에 하이든을 연주하는 기획이었는데, 일 년 정도 하다가 접었죠. 수요일 오후 2시라는 시간의 제약도 있었고, 극장 크기에 비해 그 시간대에 관객을 많이 모으기도 힘들었고요. 그러다 예술의전당에서 밤 9시 공연을 만들면서 다시 한번 이름이 들어가게 되니 책임감도 컸고, 또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칼을 갈면서 했죠. 그래서인지 올해 무사히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선곡부터 순서까지 백번도 더 고쳤어요. 지금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로, 심장처럼 중요한 일이에요.
TIMF앙상블과 저는 인연도 워낙 돈독하지만, 특히 작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진은숙 선생님과 프레장스 페스티벌Festival Presences에서 같이 공연도 했고요. 2년 전에는 소프라노 황수미 선생님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여섯 작곡가의 작품들Korean Composers』 앨범도 녹음했죠. 그때와 거의 같은 멤버예요. 특히 이번 공연의 마지막 곡인 진은숙의 ‘구갈론’을 연주할 때 단원들을 보면 한분 한분이 ‘전사’처럼 느껴져요.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게임에서 대련할 때, 캐릭터마다 각자의 필살기를 갖고 있잖아요. 단원 한명 한명이 전부 그런 존재인 거예요.
2023년 시작해 올해도 이어지는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는 늦은 밤,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실연하며 해설을 덧붙이는 신선한 무대를 보여준다 ⓒ예술의전당
진은숙 선생님께서 곡을 너무 잘 써주셨죠. 근데 또 곡이 연주하기에도 정말 어렵거든요. 다행히 이 곡은 파리 무대에서 같은 연주자들과 한번 연주를 해 봤고, 그때 경험한 감각이 저에게도, 연주자들에게도 남아 있었어요. 현지 반응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진은숙 선생님도 흡족해하셨고요. 그때 이 곡을 서울이 아닌 파리에서 먼저 보여주는 게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 곡을 밤 9시 공연에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떤 곡이랑 섞을까, 이런 고민을 시작했죠.
그때가 되게 상처받았을 때예요. 10년 전쯤 앙상블 모데른에서 어떤 친구와 둘이, 그야말로 군중 속 고독을 느끼면서 ‘너는 이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쳐 나왔죠. 그땐 제가 좋든 싫든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명감은 그대로인데,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달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현대음악을 대하고 있고, 제 기준에서는 관객들에게 ‘이거는 분명 흥미를 느끼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런 건 계속 연주되어도 좋지 않을까요’, 이런 제안을 하는 거죠.
올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객원지휘자로 위촉된 최수열은 지난 7월 3일 손일훈이 작곡한 음악극 <숨ː>을 첫 무대로 올렸다 ⓒ세종문화회관
제가 전업 국악 지휘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악관현악을 지휘하는 게 큰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국악계’에 들어와서 지휘를 시작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원일 전 예술감독님의 제안으로 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 제게는 좀 다른 의미였어요. 그래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몇 차례 함께한 이후 다른 악단에서도 종종 연락을 주셨는데, 거기엔 응하지 못했죠. 그러다 이번에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온 제안에 마음이 움직인 건, 단원분들이 저를 원한다는 거예요. 그건 또 제게 특별한 거거든요. 그래서 올해 두 차례 지휘하게 됐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처음 갔을 땐 제가 함께하던 오케스트라와는 너무 달라서 재밌었거든요. 정도 많고, 일도 재미있게 하고. 근데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와보니까 또 달라서 재밌어요. 여긴 굉장히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있어요. 사람들이 계속 뭔가를 연구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저는 국악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겠습니다’, ‘가르쳐주십시오’ 이렇게 해요. 그러면 너무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시거든요. 제가 이쪽을 전업으로 하려고 했으면 그건 되게 뻔뻔한 건데, 저는 국악관현악을 현대음악의 한 카테고리로 생각해서 온 거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려고 해요. 국악관현악을 이루는 본질적인 어떤 것들은 제가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도 그걸 계속하며 살아오신 분들에 비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부담스럽지 않고, 편한 거예요. 배우면서 할 수 있으니까요.
먼저 ‘부산’이라는 지역이 어떤 정체성을 지녔는가, 이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게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예요. 화끈한 성격에 자신감이 넘치고, 굉장히 개방적인 데다 또 멋부리는 것도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에서는 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낸 게 슈트라우스였어요. 실제로 부산시향에서 많이 연주한 곡이기도 했죠. 당대에 슈트라우스는 최고로 인기 있는 작곡가였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멋을 아는 사람이었죠. 슈트라우스는 뭔가를 화려하게 보여준 다음, 마지막에 연기 속으로 딱 사라져요. 화려한 상태에서 끝내는 건 슈트라우스가 생각하기에 멋진 게 아니라고 본 것 같아요. 진정한 영웅은 홀연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처럼요. 근데 연주할 때는 힘들어요. 박수 타이밍도 애매하고, 삐끗하면 너무 티가 나서요.(웃음) 슈트라우스는 제가 부산 오기 전까지 집착한 작곡가이기도 하고, 또 워낙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악상을 잘 녹여내는 작곡가거든요. 악기에 대한 기술도 워낙 좋고요. 제가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노래가 아닌, 악기 소리에 빠져서인 만큼 악기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어떤 로망이 있는데, 그런 기술을 잘 쓰는 작곡가들이 있어요. 라벨도 마찬가지죠.
맞아요. 전곡 연주가 되는 작곡가도 몇 없지만, 이 둘은 전곡 연주에서도 좀 밀려난 작곡가들인 거죠. 슈트라우스 교향시는 전곡 연주의 가치가 분명히 있거든요. 라벨도 그렇고요. 일반적으로 전곡 연주가 이뤄지는 작곡가들이 있으니 나는 또 다른 걸 해 보자고 생각하다가, 마침 조건이 맞아떨어졌죠. 제가 연주할 때마다 어떤 곡을 몇 번 지휘했는지 세지 않는데, 유일하게 슈트라우스와 라벨만 세요. 이번이 열한 번째 ‘돈 후안’이구나. 이렇게요.
어떤 동료 지휘자는 그래요. ‘형 그거 왜 안 해요? 그 곡 너무 좋은데?’ 그럼 저는 이렇게 답해요.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거 한 번 더 해서 그 퀄리티를 높일래.’ 오페라 할 시간에 현대음악 재밌는 거 하나 더 발굴해서 소개하고 싶은 거죠. 제가 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이 셋이 있잖아요. 저는 계속 그걸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세 가지 조건이 딱 합쳐지는 게 저한테는 현대음악이에요.
요즘 만들어진 음악들은 현장에서 들을 때의 입체감이 예전 곡들과 굉장히 달라요. 예컨대 진은숙의 ‘구갈론’을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연주하는 걸 눈앞에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꾸준히 주장하는 건, 녹음을 남기는 것보다는 계속 무대에서 연주하는 걸 사람들이 현장에서 보게 해야 작품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거예요. 이걸 ‘실연으로 기록’한다고도 표현했죠. 저에게도 가끔 클래식 음악에 미래가 있느냐는 질문이 와요. 저는 디지털에 의지하는 클래식 음악 시장은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고, 오히려 (디지털에) 굉장히 불친절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욕쟁이 할머니의 맛집 같은 거죠. 에어컨도 안 나오고, 줄도 서야 하고, 욕도 먹지만, 그래도 여기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제가 만약 다른 악단에 간다고 하면 그런 식으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대신 관객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내실을 굉장히 잘 다져야겠죠.
음악을 업으로 삼게 해준 곡은 여러 번 말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이거든요. 이 곡도 정말 중요하지만, 사실 저한테 중요한 모티프를 준 음악가는 김동률이에요. 중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저의 음악적인 감수성을 지배하는 음악가죠. 곡 하나하나의 작품성도, 수록 곡의 분위기와 잘 맞는 앨범 콘셉트도 좋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자면 되게 거창하지만, 제게는 베토벤만큼이나 중요한 음악가거든요. 김동률의 음악에는 굉장히 대중적인 곡이 있고, 실험적인 곡도 있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곡도 있고, 또 유언 같은 곡이 있어요. 마지막 메시지 같은 곡인데, 저는 그 유언 같은 곡들을 되게 좋아해요. 어느 한 곡을 꼽긴 어렵지만, 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엔 항상 김동률의 음악이 있었어요.
글 신예슬 음악평론가
사진 황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