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투과하는 허윤정의 띵!
허윤정을 주축으로 한 블랙스트링은 201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월드뮤직 엑스포인 WOMEX에 참가했다 ⓒYannis Psathas
어떤 분야에서 치열하게 전진하는 사람을 볼 때, 호사가들은 어떤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유치하고 호전적인 호칭, ‘전사’를 접미사처럼 붙여버리고 싶다는 치졸한 열망. ‘테크노 전사’, ‘힙합 전사’….
3월 11일 오후 종로구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만난 거문고 명인 허윤정. 그의 열변을 들으면서 문득 저 음험한 열망이 솟구치는, 그것을 못내 억누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 거문고… 전사.’ 이정현도, 지누션도 아닌 이분께 감히 ‘전사’를 붙여도 되는 것일까. 그 순간, 아니, 대화가 1시간을 지나 후반부로 흐를수록 그의 얼굴 위로 마치 매직아이처럼 어떤 액션 여배우의 실루엣이 겹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2023년, 새로이 맞이해야 할 어떤 멀티버스 전사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허윤정은 최근 서울문화재단이 제정하고 시상하는 제1회 서울예술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허윤정의 악가악무 <절정絶靜>이다. 서울예술상은 수준 높은 예술 창작으로 예술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서울시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예술 작품에 상을 수여한다.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선정작 중 우수 작품을 선발하는 순수예술 분야의 시상 제도다. 후보작 5개 분야(연극·음악·무용·전통·시각) 중 전통 분야의 <절정>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첫 시상식을 개최한 서울예술상의 파격이었다. 다음은 허윤정과의 일문일답.
서울예술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제1회 수상자가 되셨는데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그간 책임감을 느끼고 개척해 나갔던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 전통에 방점을 두고 한번 반환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획한 무대가 <절정>이었지요. 이미 해외의 경우 월드뮤직이든 재즈 쪽이든 해당 분야의 명인급들이 전부 나와서 활동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되레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트렌드’, ‘퓨전’, ‘젊은’… 이런 것들과 명인들 간의 가교 역할이 필요했어요. 그런 점들을 찍어본다는 느낌이었는데, 상까지 받게 되니 갑자기 주시는 선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굉장히 힘이 나고 기뻤죠.
<절정>을 기획하며 개인적으로는 어떤 준비를 했나요.
우리 음악은 악가무樂歌舞가 합쳐질 때 진면목이 드러나지요. 현대 국악 교육에서는 분화가 됐어요. 작곡 따로, 연주 따로, 타악 따로, 춤 따로…. 이를테면 1인 1악기 체제로요. 옛 명인들은 두루두루 다뤘거든요. 이번 <절정>을 준비하면서 저부터 악가무를 다시 합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중학 시절 한국무용을 전공한 뒤) 몇십 년간 춤을 안 췄는데 갑자기 다시 잘될 리는 만무하죠. 저희 선생님 영상을 띄워놓고 제가 옆에서 따라 추는 연습부터 했어요. 춤을 추다가 거문고를 잡고 선생님 춤에 맞춰 내가 거문고를 타는 것으로 이어갔죠. 새벽 서너 시까지 학교(서울대학교)에 남아 혼자 연습하던 시간에 진짜 많은 명인 선생님의 음악을 듣고 보고 하면서 그분들을 ‘진짜’ 만났던 거죠. 너무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절정>은 한국 전통음악 최고의 명인과 젊은 예인의 악가무를 집대성한 무대였다. 김일구·이태백 명인을 중심으로 젊은 예인 가운데 김태영·정윤형·최여완·송영인 등이 악가무를 펼쳤다. 피아니스트 박종화, 미국 하와이대학교 도널드 워맥Donald Womack 교수까지 참여해 동서양을 아우른 판이었다.
거문고 연주자로서, 그 여정에서 거문고는 어떤 의미였는지요.
선현들은 무현금無絃琴, 즉 줄이 없는 거문고를 탔다는 전설도 있죠. 그리고 심금을 울린다고 할 때 그 ‘심금’의 의미도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무형의 거문고를 가리키죠. ‘절정絶靜’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절정?頂’이 아니에요. 바로 절대적 기교 안에 존재하는 고요함[靜寂]이죠.
전통과 첨단을 가르며 독주와 그룹 활동을 가리지 않았죠. 그룹 활동만 봐도 슬기둥, 상상 트리오, 토리 앙상블, 이스트리오, 그리고 블랙스트링까지 정말 다양한 무대에 서셨는데요. 요즘 근황,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멀티버스’에 대한 개념을 중심에 두고 공연을 만들고 있어요. 거문고는 늘 ‘타임머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게 예술이라고 한다면, 거문고는 대단히 상징적인 악기죠. 고구려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에도 지금 제가 연주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거문고가 있거든요. 제가 공연예술창작산실 전통 분야가 신설된 첫 해(2016년)에 <거문고 스페이스>라는 공연을 올렸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거문고로 넘나드는 시공간 여행… 그 후속작을 꾸미고 있는 셈이지요.
허윤정과 거문고의 멀티버스라니, 벌써 기대가 되는데요.
얼마 전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봤어요. 그것도 너무 재밌게요. 어쩌면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절정>을 통해 다시 시도하게 된 전통에 대한 생각과도 통했죠. 전통은 그 당시엔 현재였지만, 지나고 나면 바로 과거가 되죠. 우리의 현재는 곧 미래가 될 테고요. 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년 초에 아마 <무한수렴>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일 듯합니다.
오는 6월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협연으로 거문고 협주곡 ‘블랙 드래건’(도널드 워맥 작곡)을 초연하신다고요. 8월에 열리는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을 4년째 맡고 계시고요. 블랙스트링 3집도 준비에 돌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독특한 프로젝트를 하나 더 시작하신다고요. 도대체 몸이 몇 개입니까.
하하. 제가 피아노하고 거문고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8월에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밑그림은 3년 전부터 그렸죠. 피아니스트인 서울대 음대 박종화 교수와 동서양의 융화를 해 볼 작정이에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처럼 학구적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관객층을 국악 쪽으로 좀 더 끌어당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산조를 듣는 ‘귀명창’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도 있잖아요. 요요마Yo-Yo Ma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상상합니다. 한국 음악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민속음악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 말이죠. 다채로운 음악가와 세계를 돌며 공연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해요. 당장 내년이나 내후년에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투어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판을 키워볼 생각이에요.
2월 28일 열린 제1회 서울예술상 시상식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언급하셨는데,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혹시 정해졌나요?
‘더 띵’이에요. 영어로는 물론 ‘the thing’인데, 한글로 하면 ‘띵’이거든요. 피아노도 거문고도 줄이 있어 “띵!” 하고 소리가 나잖아요.
와, SF와 호러 마니아로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 중에 <The Thing>1982(국문 제목 <괴물>, 존 카펜터John Carpenter 감독)이 있어요. 남극 탐험대가 무시무시한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는 무서운 영화죠. 느낌 있는데요.
오, 좋아요. 일단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애니띵anything’, 다 해 보겠다는 ‘에브리띵everything’, 뭔가 다른 걸 해보겠다는 ‘썸띵 엘스something else’… 다 담아보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그렇고, ‘더 띵’도 그렇고, ‘thing’으로 통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채로운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게, 어디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요?
시간도 공간도 얼마든지 제가 압축해서도 쓸 수 있고 확장할 수 있다고 봐요. 어차피 생각의 씨앗은 이미 오래전부터 뿌려져 있었고 하나씩 발아해가는 과정일 뿐이에요. 저는 압축해서 살고 있고, 제 잠재의식과 잠재력을 믿습니다. 어떤 땐 한 석 달이 걸려야 할 곡이 단 3분 만에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연주자로서 평소에 꾸준히 하는 연습이 토양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보면 볼수록, 양쯔충楊紫瓊(양자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을 닮으셨어요.
너무 좋아해요. 훌륭한 배우죠. 저 영화 마지막에 울었어요. 좌충우돌하면서 살아온 저의 20대, 30대, 40대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또 지금의 제게 감사하기도 했죠. 저는 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았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도, 어느 날 내 머리에 떠올랐던 멜로디가 어쩌면 미래의 내가 건네준 사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예술을 하셨던 부모님도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고 저와 함께 계시는 것 같다는 위로를 받았지요.
멀티버스는 평행우주입니다. 여러 우주에, 동시에 내가 존재하잖아요.
어느 별에서 저는 완전히 전통 음악인이겠죠. 그 우주에서는 조선 시대가 끝나지 않고 계속돼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죠. 참, 제가 서울대에서 AI 관련 수업을 하고 있어요.
AI요?
‘음악과 AI’라는 음악대학 전공선택 과목인데, 몇 년 전 다른 교수님들(이교구·오희숙 교수)과 의기투합해 만들었어요. 저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주로 ‘아티피셜 이모션Artificial Emotional Intelligence’을 화두로 학생들과 이야기나누고 있어요. 음악 전공자가 아닌 공대 학생이나 직접 AI를 다루는 친구들도 많이 와서 들어요. 늘 극과 극은 통한다고 봐요. 굉장히 전통적인 부분과 굉장히 미래 지향적인 부분에 모두 관심이 많답니다. 양쪽을 같이 보는 걸 좋아해요.
이미 AI가 만든 자장가가 국내 음원 플랫폼에서 많은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만든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 아이들이 미래 사회를 끌어나가겠지요. 그런데 AI가 더 고차원적인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오더라도, 평균율에 기반한 화성과 선율이 중심인 서양 음악보다 국악을 건드리는 데는 좀 더 애를 먹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서양 음악의 기본엔 수학적 구조가 있죠. 그러니 디지털화하기가 매우 좋아요. AI가 접수하는 건 시간 문제예요. 그러나 국악이나 민속음악은 원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너무나 입체적이죠. 제가 지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산조대전> 예술감독을 하고 있는데, 올해의 키워드를 ‘성음’으로 잡았어요. 하나의 음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음정은 물론이고 강세와 음색, 음의 성격까지도 적확하게 표현해내야 해요. 이 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이면을 가졌는지, 또 품고 있는 감정, 그다음에 기승전결 구조에서 이것이 어떤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는지 등 다양한 것들이 합쳐졌을 때 그 소리를 ‘성음이 좋다’, ‘완성이 됐다’고 우리는 보거든요. 그만큼 국악은 입체적이에요. 이 모든 것을 빅데이터로 만들려면 시간도 진짜 많이 걸리고, 규칙을 찾는 데도 엄청난 노동과 돈과 시간이 들어갈 거예요. 그럼 효율성이 떨어지겠죠.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은 편리해지겠지만 두려운 일도 많아질 거예요. 이를테면 노화를 막는 기술이 나온다고 했을 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 이득을 취할 수 있죠. 또 다른 살벌한 계급사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예술도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었던 예술이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시점이 다가올 때, 어쩌면 국악이 인류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봐요.
이를테면 인간성의 보루?
하하. 이제 나중에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인류가 싸우는 거죠. 과학의 어마어마한 힘 앞에서 막 싸우는 거예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요?
네. ‘절대 못 준다! 안 될걸!’ 막 이러면서… 하하.
거문고 전사의 남은 꿈은 뭡니까.
진짜 전통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은 여전히 있어요. 명인의 길을 가고 싶은 거죠.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고. 그런데 한편으론 현대인 허윤정으로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많은 부분, 즉 국악의 확장성이나 동시대성을 만들어나가는 부분에 제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것도 놓지 않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과 뭔가를 나누고 선한 영향력을 좀 끼칠 수 있다면 결국 그 모든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전통음악으로 수렴될 것으로 생각해요. 명인 선생님들의 득음의 경지에는 어쩌면 갈 수 없을지 몰라도, 또 다른 성취할 수 있는 어떤 부분들로 제 음악이 수렴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언제나 여기서 자연인 허윤정, 음악인 허윤정으로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고,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는 명인 허윤정을 향해 저만의 길을 닦고 있을지 모르죠. 왜냐하면 그때 가면 기운도 없을 거고, 또 많은 후배들이 제가 하던 역할을 해주고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냥 이게 제 꿈이에요.
글 음악전문기자 임희윤
사진 Studio Ke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