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센트의 힘
장우윤 은평문화재단
대표이사
은평구는 서울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산을 등지고 넓게 퍼져 있는 곳이 은평구다. 종로구와 연접해 도심에 가까우나 예술 환경은 열악하다. 은평문화예술회관을 포함한 공공 문화시설이 거의
전부로, 민간이 운영하는 예술 시설이나 예술 자원이 밀집한 지역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공성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외곽 도시, 그러나 은평누리축제를 비롯해 주민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는 단단해
자기만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문화성은 강하지만 예술 기반이 취약한 지역, 이런 지역에선 문화재단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걸까?
법학과를 나와 정치학을 공부한 장우윤은 2023년 8월부터 은평문화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회 비서관을 거쳐 은평구의회 의원과 서울시의회 의원을 역임한 그는 얼핏 보면 정치인으로
보이지만, 세종문화회관 이사를 거쳐 홍익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공부한 문화예술경영 전문인력이다. 그는 2년 6개월간 이곳을 경영하며 은평의 문화적 여건에 맞는 운영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매일 출근해서 직원들과 사업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여러 행사를 치르면서 하루하루 숨 가쁘게 지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어요. 동시에 그 시간 동안 일에 대한 고민과 책임이 쌓여 2년이 아니라 몇 년은 더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처음 은평문화재단에 왔을 때, 재단이 설립된 지 6년째였지만 조직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예산은 점점 줄고 있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진행한 일이 조직 안정화였어요. 전 직원을 면담했죠. 두 달 정도 직원 개개인과 면담하면서 재단의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축제와 하반기에 몰린 사업을 마무리하고, 구의회 업무 보고와 2026년도 사업 예산도 챙기면서 정신없이 지낸 것 같습니다.
그런가봐요. 하지만 취임 초기 직원들과 함께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가시적인 사업 성과도 내고, 은평문화재단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직원 한 명 한 명과 대화하며 조직 문화를 바꿨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문화 프로그램을 새롭게 기획하고 추진했어요. 다양한 외부 자원을 유치하고 대외 협력을 확대하면서 주민께 질 높은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드릴 수 있었던 점이 뜻깊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청과 주민들로부터 재단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요. 그게 보람이죠.
네, 사실 조직 안정화는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제대로 된 사업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전 조직이 스스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어요. 문화예술 전문 공공기관으로서 인사·노무·회계·시설 등 문화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에 대한 규정을 하나하나 재정비하며 업무 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했지요. 특히 문화재단의 변화와 성장을 고민했습니다. ‘제2의 창립’이라는 인식 아래 설립 이후 최초로 조직 개편을 단행해 문화예술교육팀과 정책홍보팀을 신설했고, 이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전문화와 정책 역량 강화, 구민과의 소통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덕분에 작년에 정말 큰 사업과 행사를 무사히 치렀습니다.
문화예술교육팀과 지역문화팀은 지역 수요를 반영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매개 인력 양성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꿈의 무용단’, ‘꿈의 오케스트라’ 운영기관으로 선정돼 중장기 국비 지원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25년에는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가가호호’와 ‘문화예술교육사 현장 역량강화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며 교육 대상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전문인력의 현장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고요. 이를 통해 학교·가정·지역 거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문화예술교육 체계가 좀 더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정책적 성과가 컸는데요. 그 결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은평구는 서울시 안에서도 고령화율이 평균보다 높아요. 이후 청년층이 유입되고 고령층 단독 세대가 증가하면서 1인 가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요. 장애 인구 비율도 높고, 다문화가정 비율도 높아서 은평구 전체 예산 가운데 사회복지 분야가 약 6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본다면 은평 지역의 문화는 복지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돌봄이나 연결, 안전이 중요해진 지금, 문화예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기존의 단순 감상 방식에서 일상에서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이 지역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활권 중심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겁니다. 사실 은평에 공간이 많거든요.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과 사람을 잇는 작업을 시작하며, 이 공간들을 중심으로 생활권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생애주기별로 수요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연령대마다 장르나 주제의 전문성을 강화한 교육을 마련하는 거죠. 예를 들면, 36개월 미만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이를 돌보느라 문화생활은 못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마지막으로는 지역 협력 플랫폼을 구축해 공동체를 확장하는 부분입니다. 지역에는 다양한 기관이 있잖아요. 복지관, 도서관, 평생학습기관, 그리고 행정기관도 있는데, 이런 다양한 기관이나 단체와 협력해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현재 관내 평생학습관이나 도서관·가족센터 등과 협력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소방서나 경찰서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우리 은평구에 문화재단이 있어 참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0점짜리 완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죠.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바뀌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재단이 성장하고 지역 주민이 성장하는 것, 그게 문화재단의 역할이자 운영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단 사무실이 있는 은평문화예술회관은 30년 된 건물이에요. 그동안 구청의 각종 기념행사나 대관 위주로 운영됐고요. 의외로 700석 가까운 공연장이 자치구에 많지 않습니다. 공연장 활성화를 위해 노후 장비를 교체하고 객석 의자를 비롯해 시설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지하 1층 공연연습실과 전시실·문화강좌실도 1월부터 공사에 들어간 상태이고요. 공연 예산이 부족한 부분은 적극적인 대외 협력과 국내외 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들 수 있는데요. 2024년 처음 협력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고, 2025년에는 축제 개막식을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하며 협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한 해 동안 다수의 해외 문화원 및 대사관과 교류를 진행하고 있어요. 스페인문화원을 시작으로 헝가리·체코·네팔·인도문화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고요. 이들이 은평누리축제에 참여해 공연과 체험 부스를 운영하며 지역 축제의 국제적 확장 가능성도 보았습니다. 올해도 공연과 전시 사업을 협력할 계획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특히 저희처럼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야만 주민들에게 더 질 높은 공연이나 전시를 보여드릴 수 있거든요. 양질의 문화예술을 지역에 보급하는 한편, 더욱 실험적이고 다양한 시도가 지역 내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은평문화예술회관의 공간 규모와 지역 특성에 맞는 기획 공연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무용 전문 센터로 운영되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과 협력하는 한편, 또 작년에는 크로스오버 서바이벌 방송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한 ‘라비던스’의 콘서트를 통해 신규 관객층을 유입하기도 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서울세계무용축제를 통해 5개국 8개팀의 공연을 유치해 국제 수준의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의 완성도와 기획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져,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예술도시 은평의 브랜드를 높여볼 생각입니다.
문화예술의 가치를 향유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하고 지역 주민의 일상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재단으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은평에서의 문화예술이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의 언어가 되는
것, 재단은 그 과정을 잘 설계하고 조율하며 주민에게 더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관이 되었으면 하고요. 그동안 회원도 많이 늘고, 소셜미디어도 많이 활성화됐지요. 앞으로 은평구 주민 1퍼센트가 재단
회원이 되고, 후원자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 되면 재단이 안정적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겠지요.
지역의 문화재단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전략이 있다. 예술가와 협력해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을 활력 있게 만드는 방안이 있는가 하면, 주민과 관계하며 일상의 문화와 생활의 활력을 높이는
전략도 있다. 은평은 자원이 부족한 곳이다. 이곳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장우윤 대표가 찾은 답은 지역 내·외 기관과 협력하는 것, 이를 통해 예술의 질을 높여 지역민의 자부심을 높이고 지역의
문화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표가 얘기하듯 ‘예술이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의 언어가 되는’ 은평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퍼센트의 은평 주민이 재단의 회원이 되고, 예술의 후원자가 되길, 그래서 강한 은평구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은평의 문화, 은평문화재단의 미래를 응원한다.
글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사진 Studio K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