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기대되는 문화도시
강원재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노원구는 서울의 동북쪽 맨 끝에 있는 자치구다. 1980년대 지역 개발로 형성돼 아파트가 70퍼센트 넘게 구성돼 있고, 불암산과 수락산을 배경으로 한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자연 경관이 멋지고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는 곳. 문화재단 또한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노원구는 3대 음악회와 5대 축제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고, 수준 높은 생활문화와 공연·전시로 서울의 외곽답지 않은 문화 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구정의 목표는 아예 ‘내일이 기대되는 문화도시 노원’이다. 사업이 아닌 구정 비전으로 문화도시를 내세운 지역이 있을까? 그 정도로 문화에 진심인 곳이 노원구다.
이곳 노원에서 문화재단을 이끄는 이는 강원재 이사장이다. 2022년 12월 취임해 올해 3년째 축제의 도시이자 일상의 문화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는 오랜 기간 문화기획자이자 영등포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한 강원재 노원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우선 연임을 축하합니다. 노원문화재단에서 대표이사이자 이사장을 지낸 것이 3년쯤 되어가죠? 지난 시간 어떻게 재단을 운영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노원은 서울에서도 동북부 외곽에 있는 지역입니다. 문화시설이 밀집한 강남이나 광화문 등 서울 도심권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이지요. 그런데 민선 8기 노원구가 내세운 구정은 ‘내일이 기대되는 문화도시 노원’입니다. 이러한 목표가 이뤄지려면 실은 도시의 여러 행정기관이나 주민이 나서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구청장이 늘 하시는 얘기가 있는데,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내 집 앞에서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를 볼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도시, 저는 이 일을 하는 데 지난 3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연을 돌렸거든요. 처음엔 낯설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 대표들이 우리 아파트도 해달라고 청탁 아닌 청탁을 합니다. 저희 공연 수준이 높거든요.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와서 ‘이게 뭐야’라는 얘기가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경험이 나쁘면, 다음 경험을 안 하려 하기 때문이죠. 예술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제일 신경 썼습니다. 그래서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약을 맺고 공연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지휘자가 아예 노원으로 이사오셨습니다. 최근에는 김덕수 선생님과도 협력하고 있지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 가지 않더라도 최고 수준의 공연과 전시를 생활권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현단계 문화도시 노원의 방향입니다.
대단히 적극적인 전략이네요.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하겠는데요.
90퍼센트 이상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민의 80퍼센트가 ‘문화도시 노원’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하거든요. 이런 건 법정문화도시도 못 한 일입니다. 주민의 만족도가 엄청 높습니다.
사실 노원의 문화 인프라가 그다지 좋진 않잖아요. 그런 현실에서 효율적으로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노원은 민간 시설이 많지 않습니다. 동네마다 작은 갤러리나 연습실이 있긴 하지만 별로 알려진 게 없고요, 최근에 음악 클럽이 생겼는데, 이것도 작아요. 노원 쪽에는 오히려 공연과 전시보다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서점이 많습니다. ‘노원문고’가 대표적이죠. ‘노원문고 더 숲’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지역 커뮤니티 장소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최근엔 공공장소에 문화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랑대 철도공원이나 불암산 철쭉동산처럼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문화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 구청장의 철학입니다. 문화재단의 방향이기도 하고요.
노원은 지역의 70퍼센트 이상이 아파트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열도 매우 높고요. 이런 주민의 욕구에 관한 문화 전략이 있을까요?
저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단위 파티를 열면 정말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축제 말미에 보통 DJ 파티를 여는데, 그러면 가족 단위로 춤을 춥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한마당이 되지요. 문제는 우리사회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예술활동에 선뜻 나서기를 꺼려하는 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초등학교 3~4학년까지는 의무적으로라도 전시나 공연을 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릴 때 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엄청 싫었죠.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 문화 자산이었더군요. 저는 청소년 시절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다보면 문화적 감성이 생기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자라난다고 생각합니다. 노원어린이극장의 '방과후 공연놀이터'가 기획된 이유입니다. 학원 갈 시간 하나를 비우고 친구들과 극장으로 와서 공연을 즐기며 놀라는 거죠. 그렇게 예술 안에서 놀면서 문화도시의 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 거죠.
매우 공격적인 전략이네요. 여러 이견도 있겠지만 청소년 시기에 문화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는 데는 적극 찬성입니다. 여기에는 지역 내 문화 활동, 예컨대 축제 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축제는 여러 사람과 단체가 만나고 어울리는 플랫폼입니다. 전문예술인부터 동호인 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친구들이 공동의 미적경험, 놀이체험을 하는 장소입니다. 그중에서도 축제를 할 때 청소년 참여가 중요합니다. ‘노원달빛산책’에서는 달빛예술학교를 통해 청소년과 전문예술인이 만나 공동의 작품창작을 하고 전시를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장소기반이든, 사업기반이든 지역의 특성에 맞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노원’ 하면 또 축제입니다. 사실 노원이 축제하기에 좋은 여건은 아닌데, 사무국까지 설치하고 축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요?
노원은 안팎으로 드나드는 교통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사람 오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지역은 문화예술행사 수요가 높습니다. 축제의 경우에도 처음 한두 해에는 60~70%가 구민이지만, 점차 외지인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축제를 찾는 주민의 수는 동일한데, 외지인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6년째를 맞는 ‘노원달빛산책’ 축제도 KT 빅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120만 명이 다녀간 걸로 나타납니다.구민이 재밌게 노니까 유명한 축제가 된 것이지요. 축제는 공동체성입니다. 주민들이 함께 즐기고 만드는…. 그래서 저는 축제의 경제적·사회적 효과뿐 아니라 시민교육차원의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축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거죠. 저는 이것을 경제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성이 확보돼야 사람도 오고, 경제적 효과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뀌면 망치게 됩니다.
주민과 협력, 주민의 성장, 체험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마 이건 대표님이 그간 경험한 거버넌스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등포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하면서 ‘공유영등포원탁회의’까지 만들었는데, 노원에서의 거버넌스는 어떻게 구축하고 있나요?
거버넌스는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영등포문화재단 시절 거버넌스는 전통적인 장르 기반으로 자기주장이 분명한 분들과 한자리에 앉아 합의할 수 있는 계획을 만들어보고, 행정 체계 내에 녹여서 같이 운영해갈 수 있는 구조를 짜는 방식으로 했어요. 그런데 노원은 교육이나 환경을 중심으로 시민력이 강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분들과 같이 지역의 문화를 짜는 방식으로 했어요. 거대한 판을 짜기보다 소규모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는 작은 원으로 거버넌스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ESG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사회가 환경 쪽으로 강하니 그 단체들의 힘을 빌려 축제를 모니터링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식으로 초대했습니다. 결국 이분들과 모여 한 판을 만들어가는데,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거버넌스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이걸 억지로 빨리하면 오히려 거대한 민원 집단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청년들과도 지속적으로 연계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연계해 공모 사업이 있으면 준비해주고, 주변 대학과도 연계하고, 다른 지역 청년들과도 만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춘천하고 MOU를 맺고 시각 예술인 교류 사업을 시작했고요.
정말 열심히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제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문화재단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구정과 발맞추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가 집중하는 부분에 맞춰 재단이 가진 문화예술역량으로 더 좋은 기획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거죠. 구정이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데 재단이 왼쪽으로 가면 안 돼요. 그럴 땐 오른쪽으로 5센티미터 가는 것을 오히려 10센티미터 더 가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더나은 문화예술의 경험을 구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기초문화재단은 플랫폼이라 생각합니다. 거버넌스 매개 기관인 거죠. 이걸 위해선 여러 사람이 와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단도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이라 각종 법에 얽매여 있습니다. 정부의 행정 체계에 맞춰 일하다보면 문화예술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좀 다뤄낼 수 있는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점차 행정이 고도화되면서 관리 중심으로 재편되는 데 대해 여러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에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형 문화도시를 해 보자는 생각입니다. 문화지구 제도를 활용해 각 자치구에 서너 개의 문화지구를 만들면 약 100개 정도 문화지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문화도시가 되겠지요. 저는 지역과 협력을 통해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문화적으로 지역을 운영하는 그런 도시가 됐으면 합니다.
글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