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확장과 한국미술의 국제화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 그 여파가 BTS와 영화 <기생충>2019, <오징어 게임>2021~2025,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로 이어지며 10여 년 이상 지속될 문화적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대중문화의 확산은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 변화와도 긴밀히 맞물려 있다.
1997년 필자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국미술 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할 당시, 한국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선 존재였다. 6.25 전쟁에 대한 개인적 기억이 회자됐고, TV 시리즈 <매시M.A.S.H.>1972~1983가 그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하던 시기였다. 브루클린 미술관은 미국에서 한국미술 상설전시실을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관이었고, 미국 내 미술관 전체를 통틀어 한국미술 전공자는 필자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현재의 세계적 ‘K-컬처’ 열풍을 감안하면, 당시 상황은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조선 미술 대전》(2014) 오프닝 행사로 열린 김혜순 한복 패션쇼
한국미술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대규모로 소개된 계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최한 《한국미술 5천년전》1979~1981이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시작됐고, 그 출발점은 해외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고미술품의 실태 조사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해당 미술관의 한국실 개관이라는 중요한 결실을 가져왔다. 또한 1999년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관한 해외 아시아미술 큐레이터 대상 한국 현지 워크숍은 국제 네트워크 구축과 전문인력 교육의 선도적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은 2000년대 이후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고려시대: 한국의 르네상스, 918-1392》2003, LACMA·휴스턴 미술관 《당신의 밝은 미래: 12인의 한국 작가들》2009,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신라: 황금의 나라》2013, 필라델피아 미술관 《조선미술대전》2014 등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 특별전이 연이어 개최됐다. 이는 한국미술이 점차 독립적인 연구와 전시의 대상으로 자리잡는 과정이었다.
‘강남스타일’ 이후 K-드라마, K-뷰티, K-푸드, K-패션 등으로 확장된 ‘K-컬처’는 전 세계의 문화 소비 양식을 변화시켰다. 한국어 학습자 수의 급증, 음식과 미용 문화의 확산, 한국적 감수성에 대한 공감은 자연스럽게 미술로 이어졌다.
그 결과 구겐하임 미술관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2023,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의 한국미술》2023,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이불: 충돌Crashing》2018과 《양혜규: 윤년처럼Leap Year》2024과 테이트 모던 《서도호: 집을 걷다Walk the House》2025 등 현대 한국미술 관련 전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2023) 전시실 입구의 모습(사진 제공 필라델피아 미술관)
특히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한류!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2022는 미술을 넘어 영화·드라마·K-팝·패션·뷰티 등 한국 현대문화 전반을 포괄한 전시로 주목받았다. 이 전시는 보스턴 미술관2024·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2024·스위스 리트베르크 미술관2025을 순회하며 각국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반면 국내에서는 ‘방향성이 분산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는데, 이는 한국 내부의 문화 인식과 해외에서 수용되는 한국 문화의 간극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전시의 흥행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이러한 전시의 의미는 단순한 인기 현상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저변을 확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Do Ho Suh, <Nest/s>, 2024,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Victoria Miro.
Creation supported by Genesis. ⓒDo Ho Suh. Photo by Jeon Taeg Su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는 한국의 샤머니즘과 대중문화를 결합한 사례로, 전통적 서사를 현대 시각언어로 재해석했다. 이 작품에 등장한 까치호랑이 같은 상징은 전통 회화와 현대 콘텐츠의 접점을 재조명하며 문화 혼종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미술이 전통과 동시대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30년에 걸친 해외 활동의 경험을 돌아보면, 한국미술의 국제화는 ‘인지도’의 확보 과정이자 문화 정치의 영역이었다. 오늘날 한국 문화가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수많은 개인과 기관의 장기적 노력이 축적된 결과다. 1997년 두 명에 불과했던 미국 미술관 내 한국미술 전문 인력은 이제 십여 명을 넘어섰고, 뉴욕대학교 미술사연구소IFA에는 한국인 원장이 취임했다. 현대자동차·현대카드·LG 등 한국 기업들이 테이트 모던·MoMA·구겐하임 같은 세계 유수 미술관의 국제 프로그램을 후원하며 문화 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미술은 더 이상 주변부의 ‘이국적 대상’이 아니라, 세계 미술 담론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세계 예술의 지형을 재편하는 과에서 ‘한국’이라는 렌즈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글 우현수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아시아미술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