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장악한 시대,
청소년을 위한 예술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를 만났다. 그는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살한 열여섯 살 소년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식의 스마트폰을 확인하다가 부모는 아들과 인공지능AI이 나눈 대화를 발견한다. 소년은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위한 질문이라고 우회하면서 챗GPT를 통해 자살을 위한 여러 방법을 물었다. 챗GPT는 방법을 알려줬고, 심지어는 그 방법의 실행 가능성을 검토하기까지 했으며, 소년은 그 안내를 따라 생을 마감했다.
죽은 소년의 학부모는 AI 개발사와 CEO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필자와 대화를 나눈 학부모는 자기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이 사망한 일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자녀에게 절대로 AI를 사용하지 않게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건이 일어난 미국에서나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청소년의 안전한 AI 사용을 위한 법과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AI 운영사에 미성년자를 보호할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 중이다. 마지막 절차인 주지사의 서명을 받게 되면 2026년 1월부터 시행된다. 영국에서는 2025년 7월부터 자살, 자해, 섭식 장애, 사이버 괴롭힘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발견되면 서비스 제공자가 자체로 판단해 삭제·차단하도록 강제하는 ‘온라인 안전법’이 강화됐다.
우리나라에서는 AI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 기반으로 2026년 1월부터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2025년 1월 공포)이 시행된다. 그런데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다. 단순히 법과 규제의 강화만으로 청소년에게 미칠 AI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막을 수 있을까?
일부 가정에서는 자녀의 AI 사용을 무조건 금지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용률이 급증하는 요즘, 이는 불가피한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을 위한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앞서 이들이 무분별하게 정보를 수용하는 대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뒷받침은 다름 아닌 독서에서 시작될 수 있다.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의 삶에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경험을 선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성장소설의 고전이 된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부모의 기대에 따라 경쟁이 치열한 사립학교에 진학한 토드. 우등생이지만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연극배우를 꿈꾸는 닐.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를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를 알려주는 키팅 선생까지. 청소년기에 문학을 접하고, 그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AI와 대화하기 이전에 독서를 통해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또한 일단 읽었다면 더욱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누구와? 부모와 선생과 친구와 말이다.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어도 괜찮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청소년이 발언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몇 분이 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를 넓혀줘야 한다.
그 대안을 극장에서 찾아본다. 올 초 명동예술극장에서 백온유의 청소년소설 『유원』을 원작으로 한 동명 연극(각색 신재훈·연출 전윤환)이 막을 올렸다. 이야기는 십여 년 전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을 따라간다.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녀는 무대 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한다. 객석을 채운 관객은 청소년, 그리고 이들과 동행한 학부모가 대다수였다. 연극을 보고 난 뒤 극장을 나서며 이들은 어떤 감상을 나눴을까. 그 순간에 오간 대화를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 AI가 삶 속 깊숙이 스며든 시대에 청소년문학과 청소년극을 비롯한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AI가 앞으로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성인을 대상으로 개발된 AI를 청소년에게 올바르게 알려주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이제 논의를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청소년문학과 청소년극으로부터 도움을 구해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청소년에게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주변의 청소년과 대화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를. AI처럼 모든 질문에 능숙하고 빠르게 답해주지 못할지라도 가만히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글 박선희 엔터스코리아 저작권팀 | 일러스트 slowreci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