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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9월호

도슨트,
예술의 ‘열쇠’가 되려면

‘작품’이라는 방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예술은 아티스트가 수년간 쌓아온 철학,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재료의 물리적 조건 등이 한데 어우러진 차원의 방이다. 이때 도슨트는 우리에게 그 방문을 여는 하나의 열쇠를 쥐여준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는 이 열쇠를 쥔 사람들이 전시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타 도슨트’에게 설명을 들으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 심지어 팬레터를 보내는 팬덤까지 등장한 시대다. 그 열풍의 힘은 무엇일까?

1845년 영국에서 시작된 도슨트 제도는 박물관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1907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에는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도슨트를 통한 작품 설명’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국내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가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슨트를 고용해 대중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서비스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도슨트는 주로 자원봉사나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로 운영돼,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그 전환점은 2020년대에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부의 경제 활성화 조치, MZ세대 컬렉터의 등장, 미술 투자 열풍,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미술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특히 2020년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면서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 동시대 미술문화에 파격을 일으켰다. 연일 화제로 떠오른 이건희 컬렉션이 전국 미술관을 순회하자 이를 보려는 대중이 미술관에 몰려들었고, 자연스레 작품의 가치를 설명해 주는 해설자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바로 이러한 흐름에서 예술을 쉽고 매력적으로 알려주는 도슨트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피리 부는 사나이’ 정우철은 도슨트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일반 사람들이 보면 이게 도대체 왜 비싼지, 왜 중요한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정보를 전달해줬을 때, 사람들이 깨달을 때 너무 좋아요.” 도슨트는 예술 향유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현대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추상미술은 난해하다는 인식이 강하며, 작품을 봐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관람객이 적지 않다. 이때 도슨트의 해설은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친절한 길잡이가 돼준다. 작가의 생애와 창작 의도, 시대적 맥락과 세간의 평가까지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주는 스토리텔링은 낯선 작품의 문을 여는 방향키가 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대중과 예술의 심리적 간극을 좁혀준다.

또한 도슨트는 전시 관람을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관람객은 도슨트 또는 다른 관람객과 반응을 주고받으며 사고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겪는다. 어린이와 청소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도슨트 프로그램은 배리어프리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도슨트는 예술이 특정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세대와 집단이 즐기도록 이끄는 촉매제가 돼준다. 최근에는 도슨트를 단순한 해설자가 아니라 ‘문화예술 교육자’로 인식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작품 이해를 돕는 가이드를 넘어 개인과 개인,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교두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슨트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가장 큰 문제는 전시의 주인공이 작품이 아니라 도슨트가 된다는 점이다. 집으로 돌아간 관람객의 기억에 남는 대상이 작품이 아니라 도슨트의 말이라면,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보다 도슨트를 위한 무대에 그칠 위험이 있다. 큐레이터가 의도한 메시지가 단순화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작품을 지나치게 대중적 코드로 해석해 웃음을 유도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자극적으로 부풀려 각색하는 사례도 종종 보인다.

‘스타 도슨트’ 현상은 전시가 하나의 공연처럼 소비되는 풍토를 강화하기도 한다. 관람객이 작품보다 도슨트라는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전시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공적 교육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신뢰와 균형을 흔들 수 있다. 전문성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도슨트는 대부분 짧은 교육 과정을 거쳐 활동하게 되는데, 작품 해설이 단편적이거나 피상적일 경우 오히려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큐레이터보다 학문적 연구 기반이 부족하기에 설명이 흥미 위주로 흐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도슨트 열풍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변화된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술을 더 가깝게, 그리고 더 즐겁게 만나는 길을 열어준 것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그 성과가 전시 본연의 의미를 가리는 순간, 도슨트 제도는 본래의 취지를 잃을 수 있다. 이때 균형이 중요하다. 작품과 관람객을 잇는 다리로서 도슨트가 존재하려면 해설의 깊이와 전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관람객의 자율적 감상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도슨트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소비하고 학습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도슨트라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깃든 예술 향유 방식의 변화다. 도슨트는 앞으로도 전시실에서 수많은 관람객과 작품의 문을 열어갈 것이다. 다만 그 열쇠가 작품의 본질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풍부하게 열어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작품이라는 방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예술 그 자체와 마주해야 한다. 도슨트의 역할은 방의 열쇠를 쥐여주는 데 있을 뿐, 그 안까지 함께 들어가는 데 있지 않다. 관람객이 스스로 방 안을 거닐며 자기만의 감상을 발견할 때, 비로소 예술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이현 아트인컬처 편집장 | 일러스트 slow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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