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이현화
b.1996
시각예술/섬유
@hyunhwa.rt
2024-2025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 워크숍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24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 워크숍 ‘디지털 프린팅을 활용한 취타대 허리띠 만들기’
2022-2024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2023 삼일로창고극장 창고개방 ‘태도의 극장사: 삼일로 필리버스터-큰 돌, 작은 돌, 녹는 새’ 커뮤니케이션 위빙
섬유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조형과 공예 활동을 하는 작가 이현화입니다. 전통적인 직조 기법과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더해 씨실과 날실에 삶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실을 엮는 행위를 사유의 시간으로 삼고, 섬유를 매개로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태초의 기억부터 저는 늘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있었어요. 집 안의 모든 벽을 온통 크레파스로 칠해놓고, 노트에는 여러모로 웃기거나 신박한 아이템을 디자인한 스케치와 낙서를 빼곡히 채워두었죠. 그때가 조금 부럽기도 해요. 지금은 흰 여백에 점 하나 찍는 것도 때론 무섭고 두려운데,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작은 몸으로 넓은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었나 하고요.
사실 저는 제가 작업을 계속할 거라고, 예술을 업으로 삼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되게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늘 그렇듯, 내 상상과 기대는 현실과 다르더라고요. 아직 오랜 시간을 살아낸 건 아니지만 그동안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공부를 해왔는데,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내 색깔을 감춰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때 스스로가 예술가라고 자각하기보다는 ‘나는 살기 위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작업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모두 소중한 인연과 삶의 양분이 돼 작업 활동을 하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 대표적인 작품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태피스트리와 자수 작업으로 <Letter>와 <영혼의 제의> 시리즈가 있어요. <Letter> 시리즈는 말 그대로 ‘편지’에 대한 내용인데, 타인이 아닌 저에게 보내는 편지에 관한 내용이에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이 작업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내면에 대한 고백을 실로 직조하고 자수로 새긴 작업이에요. 거칠게 구겨지고 지워지고 엉킨 실과 문자들은 오랜 시간 작품과 마주하면서 이내 소멸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흔적을 기록하는 과정이었어요.
이후 작업인 <영혼의 제의> 시리즈는 삶과 죽음, 불안과 평온, 소멸과 정화라는 인간의 실존적인 감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한 작업이에요. 이 시리즈에서는 제 머리카락을 태워낸 재와 소금 등을 드로잉 재료로 활용하고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을 잇는 의식적인 과정으로써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자신을 부정하고 감추고 지워내던 시간을 지나, 더욱 대담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태피스트리를 신작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는 섬유예술·섬유공예가 항상 여성적이고 조용한 비주류의 예술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동시에 담고 있어요. 신작은 10월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 외에 모든 순간과 경험으로부터 항상 영감을 찾고 있어요. 작업하면서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는 주로 글을 찾는 것 같아요.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읽는 것이 작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최근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읽었습니다. 한창 신작에 관해 연구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과 가장 흰 물질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 시기 저는 제 불온한 것들을 모두 태워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실제 몸을 태워낼 수는 없으니, 신체 일부 중 태울 수 있는 건 머리카락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무와 함께 머리카락을 태운 재를 수집해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태워낸 재’라는 물질이, 무게는 가볍지만 의미적으로는 무겁고 검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물질(나)을 조금도 잃고 싶지 않다는 상반된 마음이 충돌하면서 반대되는 물질을 찾게 됐습니다. 마침 한강 작가님의 『흰』이라는 책을 발견했고요. 인간 존재에 대한 외로움을 그려내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흰 물질을 작가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 작업의 중요한 실마리가 됐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내 인고의 시간을 담은 글들을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소외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찾아가는 사람이자, 그러한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오랜 작업의 여정에 관심 가져주시고 애정 어리게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는 9월에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에서 태피스트리 워크숍을 시작하고, 또 10월에는 신작으로 구성된 전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