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충북도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박성진입니다.
어릴 적 태권도 학원 다니듯, 특별한 계기 없이 6세 때 피아노, 10세 때는 첼로를 시작했습니다. 첼로를 처음 접할 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중간에 쉬기도 했는데,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며 음악의 매력에
빠졌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연습은 고되지만, 연주의 희열과 성취감에서 스스로 예술가임을 느낍니다. 음악이 주는 힘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이 놀라워요. 때로는 위로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마음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현재 제 주된 업무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앙상블 연주자, 솔로이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연주에 따라 모두 매력이 다른데요. 오케스트라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고, 내 목소리를 악기로 대신해 소리 내며 나를 좀 더 드러낼 수 있는 점에서 솔로이스트 역시도 매력이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조국 광복을 향한 염원을 생각하며, ‘바르샤바의 봄’이라는 주제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주회를 엽니다. 동유럽 작곡가 세 명의 대표 작품으로 구성했으며, 일부만 소개하자면 폴란드의 대표
작곡가 쇼팽의 작품을 연주합니다. 피아노곡을 다수 작곡한 쇼팽이 유일하게 남긴 기악 소나타인 첼로 소나타와 폴로네즈를 연주하는데, 작곡가 특유의 루바토와 색깔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곡이라 이번에 다시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감을 얻는 건 음악 그 자체보다, 작곡가가 곡을 작곡할 당시의 배경인 것 같습니다. 연주자로서 제 역할은 음표를 정확히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음표에 담긴 질문과 감정을 해석하고 살아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악보를 펼치기 전, 그 곡이 탄생한 배경, 작곡가가 놓여 있던 삶의 조건,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감정의 결을 먼저 읽어내려고 합니다. 쇼팽의 첼로 소나타를 준비하면서
작곡 당시의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생의 말미, 건강도 조국도 잃은 시점에서 쇼팽이 이 소나타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깊은 울림이 있었고, 악장마다 완전히 다른 정서가 담겨 있어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악장은 절제된 혼란 속에 시작합니다. 불안정한 리듬과 긴장감, 피아노와 첼로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삶의 균형이 무너질 때 생겨나는 감정의 파동을 마주하게 됩니다. 반면 3악장
‘라르고’는 그 모든 혼란이 잦아든 뒤 고요한 고백처럼 다가옵니다. 첼로는 단순한 선율을 따라 마치 말을 걸듯 노래하고, 피아노는 그 위를 조용히 받쳐줍니다. 어떤 장식도 없이 가장 본질적인 울림만을 남긴 듯한 이
악장에서, 저는 쇼팽이라는 사람의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합니다.
예술가로서 저는 결국 제가 연주할 음악을 써내려간 작곡가의 삶 속에서 그 배경을 이해하면서 영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곡 안에는 음표뿐 아니라 시대도, 언어도, 침묵도, 삶의 무게도 담겨 있습니다.
최근은 아니지만 독일 유학 중에는 정말 좋은 연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도 남서부 방송교향악단SWR과 자닌 얀선Janine Jansen이 협연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과 다니엘 뮐러 쇼트의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또 파리 방송교향악단과 힐러리 한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연주를 실연으로 들을 수 있었죠. 연주자의 기교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거장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깊이와 감동, 그리고 유럽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대 분위기나 관객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곳에서 음악은 단순히 ‘듣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위로이자
치유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한테도 큰 영향을 줬고, 연주자로서 저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맡고 있는 역할을 묵묵히, 책임 있게 해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주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긴장감과 책임이 있는 자리이기에, 충북도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으로서 그 안에서 스스로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또한, 곧 있을 독주회에서 연주할 코다이·야나체크·쇼팽의 음악을 단순한 기교를 넘어서 각 나라의 독립의 염원을 담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 5월 또 다른 레퍼토리로 독주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색을 더욱 명확히 담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제 음악 여정의 한 단계를 정리하고 또 다른 도약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