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은 무대, 되살아나는 감정
쿼드초이스 ‘재연을 부탁해’
대한민국 공연예술계에 수많은 작품이 제작되고 무대에 오른다. 2024년 일 년간 16,000여 편의 작품이 공연됐을 정도. 하지만 창작과 제작에 투여된 제작진의 노력과 고민에 비해 작품이 초연된 후 재공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상업극이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국·공립 예술단체의 작품을 제외하면, 민간 예술단체나 기획사 등이 제작한 작품이 재공연을 거듭하며 레퍼토리로 자리잡는 사례는 드물다. 그 결과,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등장하는 동시에 사장돼버리기 일쑤다. 작품의 ‘재연’이 단순히 레퍼토리 발굴과 육성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예술단체와 현장에 문화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더 많은 관객이 다양한 예술 경험과 감상의 기쁨을 누릴 기회가 부족해진다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이는 공연예술 산업에도 피할 수 없는 ‘자본’이라는물리적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리케이댄스 <올더월즈> ⓒ옥상훈
2022년 개관한 대학로극장 쿼드는 기획공연 ‘쿼드초이스’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장르와 예술가를 발굴하고, 이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최근에는 앞서 언급한
문화예술시장의 현 상황에 주목해, ‘지금껏 공공이 충분히 다루지 못한 형태의 창작지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바로 ‘창작 초연’을 중심으로 지원하던 기존의 한계점을
보완해, ‘창작 중심 지원’에 집중하기로 한 것. 신작을 제작해 극장의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현장 예술가들의 레퍼토리 구성을 위한 재공연을 지원해 웰메이드well-made 초연작의 재공연을
지원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 조성과 예술가·예술단체의 질적 성장을 위해 공공 극장인 대학로극장 쿼드의 새로운 역할과 상호 성장 구조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변화의 첫 시작으로 2025-2026 쿼드초이스 ‘재연을 부탁해’ 공모 사업을 진행했다. ‘재연을 부탁해’ 첫 공모에는 490건에 달하는 작품이 접수됐고,
98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최종으로 작품
5편이 선정됐다. ‘완성도를 갖춘 초연작인지’, ‘대학로극장 쿼드와 함께 공간·개념적 다양성을 만들어갈 구체적인 계획과 의지가 있는지’,
‘작품의 발전을 통해 레퍼토리화의 가능성이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선정했다.
콤마앤드 <시뮬라시옹>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
쿼드에서 감각하게 될 새로운 세계
➊ 다차원의 세상으로 끝없이 변신하는 초감각의 몸
리케이댄스 <올더월즈>는 간결하고 독창적이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안무가 이경은의 2024년 초연작이다. 현대무용과
스트리트 댄스의 경계를 허물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새로이 만나는 세계를 그렸다. 제3회 서울예술상 무용 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쿼드초이스 ‘재연을 부탁해’ 선정작 중 가장 먼저 포문을 연다.
니터 <땅 밑에> ⓒ우란문화재단
➋ 색다른 청취를 통해 감각하는 현실·비현실의 극적 경험
니터 <땅 밑에>는 SF 작가 김보영의 동명 단편 소설 「땅 밑에2022를 토대로 완성한 작품이다. 아직 아무도 끝까지 내려가본 적 없는 길,
‘나락’을 탐험하기 위해 관객은 헤드폰 너머 들려오는 이야기를 따라 그 길로 향한다. 이머시브 오디오극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통한 극적 경험을 기대해도 좋다.
➌ 마찰의 역설적 본질을 구현한다
예술서커스와 기술 융합을 시도하며 장르의 확장과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안하는 팀 포스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만난다.
이들의 작품 <마찰>은 저항성·운동성·방향성 같은 마찰이
가진 다양한 본질적 요소에 대한 탐구와 그 속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포스만의 감각과 움직임으로 구현한다.
창작집단 LAS <함수 도미노> ⓒ김부영
극장에서 펼쳐지는 인간에 대한 동시대적 성찰과 탐구
➍ 변화하는 관계 형태 속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콤마앤드 <시뮬라시옹>은 AI 기술 시대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예술·감정적
경험을 결합한 독창성이 특히 돋보인다. 2034년이라는 근미래의 모습과 첨단기술의 모습을 연극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관람 포인트.
➎ f(진실)=도미노, 그 함수를 풀어라
동시대 사회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재와 탄탄하게 짜인 극본으로 호평받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대표작 <함수 도미노>를 창작집단 LAS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인셀incel’ 문화, 페미니즘, 사회적 혐오와 분열처럼 한국 사회의 현실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지점을드러내 강한 공감을 끌어낸다.
이번 시도를 통해 초연이 가진 생동감을 넘어, 재연이라는 발전 과정을 거치며 더 나은 완성작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또한 대학로극장 쿼드라는 가변 공간이 갖는 유연함과 자유로움의 매력이 작품에 더해져 다양한 공연 형식과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기회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포스 <마찰> ⓒFORCE-ARTECH
2025-2026 쿼드초이스 ‘재연을 부탁해’ 라인업
2025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콤마앤드 <시뮬라시옹>
2025년 11월 18일부터 23일까지
니터 <땅 밑에>
2026년 1월 27일부터 2월 8일까지
창작집단 LAS <함수 도미노>
2026년 2월 20일부터 28일까지
포스 <마찰>
2026년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글 김은나 서울문화재단 공연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