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전시,
Z세대의 새로운 취미가 될까?
음악회•전시 같은 것들이 점잖게 빼입은
중장년층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쭉 그랬다.
그 판이 뒤집어졌다.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요즘
최애는 키키와 임윤찬’, ‘뽀로로 이후 최고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 같은 고백이 Z세대에서 나온다.
1차적 요인은 단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다.
맥락을 해체하고 감각으로 다가가며 딱딱한
입문서보다 재미로 스며드는 콘텐츠 말이다.
2년 전, 유튜브 채널 ‘또모’에 올라온 ‘[몰카] 세계
탑 클래스 피아니스트가 한국 입시생으로 위장해
몰래 연주했을때 교수님들 반응 ㅋㅋㅋㅋ’ 영상은
하나의 선언문 같다. 영상에서는 일본의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가 한국의 입시생인
척하며 입시 평가회에 나온다. 세 명의 실제 음악
교수님들이 평가하는 ‘깜짝카메라’의 형식.
조회 수 2,200만 회를 넘겼다.
빠른 편집, 재미난 자막이 ‘신박한’ 기획의 묘를
살린다. 또 다른 채널 ‘클래식좀들어라’의 콘텐츠
‘걍 살면 되지 않을까 클래식’이나 ‘8첩반상
클래식’은 기획도, 맥락도 없다. 인터넷에서
퍼온 몇 장의 허름한 이미지에 클래식 음악 명곡
리스트를 접붙였는데, 은근히 중독성 있다.
콘텐츠가 조연이라면, 주연은 오히려 댓글창
쪽이다. 클래식 음악은 잘 모르지만 댓글은 잘
달 수 있는 재치쟁이들, 깜짝카메라 마니아,
왕년에 바이엘이나 하농 좀 쳐본 젊은 양반들의
미니 백일장이 한가득이다.
이렇듯 Z세대의 클래식 음악•미술 사랑에 장대한
선행학습은 필요 없다. 바흐 작품번호 1046번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구성을 잘 안다거나,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독한 적
없어도 된다는 얘기다.
인스타그램 ‘서울여행’ 계정이 론 뮤익의 전시를
소개한 릴스는 다짜고짜 수염 난 아저씨상 像부터
클로즈업한다. 헤드라인은 ‘상당히 불쾌합니다..?’
이러한 순간의 끌림(또는 매혹)에는 카라바조와
키아로스쿠로, 다빈치와 스푸마토 같은 사전
지식이 끼어들 찰나조차 없다. 조회 수는
24.8만 회다. 웬만한 종합일간지의 구독자 수를
넘는 숫자다.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이 가진 문턱은 이렇게
다른 차원을 만났다. 기존의 신scene은 2차원
평면에 존재했다. 거대한 인류 문화사의 반직선
위에 있었고, 폐쇄된 통로에 진입하려면
‘메이즈 러너’의 두터운 장벽을 넘어야 했다.
그러나 미디어•플랫폼•네트워크의 발달이
신을 3차원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초심자와
소셜미디어의 행인들에게까지 그 유쾌한
개구멍이 천지사방으로 열려버렸다. 엄숙주의는
몰락했고 연대기 학습은 교양 필수 커리큘럼에서
빠졌다. 적어도 온라인플랫폼에서라면 말이다.
이런 채널은 대개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를
지향한다. 수년 전 지상파 TV에서 개척한
영역이다. 경쟁 중심의 유튜브 생태계로
이동하면서 예능적 요소들이 투입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막, 빠른 컷 전환과 포즈 없는 음성
편집, 과감한 클로즈업과 팬이 기본값이 됐다.
그 앞에는 댓글 창이라는 드넓은 민중의
아고라까지 펼쳐졌다. 재생 속도 조절, 자막
번역은 IPTV에도 없던 기능이다.
젊은 층에서 클래식 음악•미술 마니아가 늘고
있는 데는 가성비•시성비를 중시하는 흐름도 한몫
단단히 했다. 전국의 유수 박물관•미술관은 대개
입장료가 무료다. 더욱이 미술은 본디 ‘짤’이었다.
태생이 쇼트폼이다. 시성비가 좋다. 영화나
시리즈에 비해 편당 시청 시간이 매우 짧다.
불경기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국내 여행,
시내•외 여행이 활성화된 것 역시 연계된 전시나
음악회 탐방에 대한 젊은 층의 흥미를 돋웠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 관람객
중 20대가 41.3%, 30대가 24.4%를 차지했다.
합치면 3분의 2에 달하는 수치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세계적인 콩쿠르의 생중계
서비스도 영향이 컸다. 북미 최대 뮤직 페스티벌인
‘코첼라’가 몇 년 전부터 무료로 생중계하면서
음악 마니아 밖으로 저변을 넓힌 것과 유사하다.
코첼라는 몇 년 새에 샤넬•디올처럼 모두가 아는
유명 브랜드가 됐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다.
더욱이 임윤찬•조성진의 연주에 빠지면서
같은 곡을 연주한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무한히 비교해볼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나선계단처럼
클래식 음악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최근 애플
뮤직은 클래식 음악 카테고리에 ‘청취 가이드’
기능을 탑재했다. 곡을 감상하며 유튜브 자막처럼
해설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영화•게임•애니메이션 콘서트의 활황은 클래식
음악 시장의 문턱을 낮췄다. ‘리그 오브 레전드’,
지브리와 디즈니 작품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관현악 콘서트가 콘서트홀을 빠르게 매진시킨다.
노들섬에서 열린 노들컬처아카데미의 젊은
수강자 가운데 다수는 ‘최애’를 묻자 이런 식으로
답했다. “아이돌은 르세라핌, 밴드는 터치드, 클래식은 임윤찬!”
시대와 긴밀하게 호흡하려는 예술계의 노력은
계속된다. 대중예술 못잖게 재밌고 다이내믹하게
젊은 층을 순수예술의 블랙홀로 빨아들이려는
시도는 여기저기서 성공했다. 다음엔 무엇이 올까.
최근 지브리풍 사진 변환 열풍으로 생성형 AI가
필부필부의 손과 뇌에 들어왔다. 앞으로는
그 무엇이 얼마나 더 쉬워질까. 세기말 SF 영화
<제5원소>에는 인조인간 릴루가 5천 년 인류
역사를 5분 만에 습득하고 눈물까지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순수예술이 테크놀로지를 만나
머릿속이 순수한 어린이마저 스탕달 신드롬에
오열하게 만들 날은 다가온다. 콘텐츠 기획자에게
다년간의 고도한 학습이나 손재주보다 더 필요한
건 감각과 통찰력뿐인 세상이다. 그런 ‘제5의
세계’가 혜성처럼 지구로 돌진해오고 있다.
글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 일러스트 slowreci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