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귀환, 텍스트 세계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찾아서
“넌 최고였지 / 이제 넌 한물갔어 /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버글스The Buggles, ‘Video
Killed the Radio Star’, 1979) 1981년 미국 MTV는
개국 방송에서 첫 곡으로 이 노래를 틀었다. 이제
귀로 듣는 음악의 시대는 끝이 났으며, 바야흐로
눈으로 보는 음악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었다. 과연 세상은 비디오 시대의
음악에 열광했으며, 그로 인해 대중문화산업의
지형도가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듣는 음악’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음악산업의 주요
전파자였던 라디오는 끝이 났는가. 귀의 시대는
오히려 취향과 다양성, 전문성과 독자성으로
심화하고 변주되며 또 다른 시대로 진화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라디오 시대에서 비디오 시대로의 변화는, 디지털
미디어,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천지개벽한 문자 미디어, 출판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서도 극히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고속 인터넷의 상용화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2000년대 얼마간 봇물을 이룬 것이 웹진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부터 10여 년 전의 상황이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마치 모든 잡지가 웹진 형태로
전환될 것 같은, 나아가 종이책의 미래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압도됐던 듯하다.
필자 역시 당시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었고,
한편으로는 소속 대학 연구소에서 웹진 창간을
주도하고 편집장을 맡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전통 매체와 디지털 매체 사이에서 운영자로의
갈등이 존재했다. 더욱이 글을 쓰는 콘텐츠
생산자와 늘 상당한 글을 읽는 전문 독자로서의
입장까지 존재했기에, 상황에 대한 판단은 보다
복잡하고 미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보다시피, 이러한 미디어적 진화는 전통적 상황을
해체한다기보다는 다양한 변형태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일 듯하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부터 짚고 얘기하자면 2025년 한국의
정기간행물 가운데 등록된 잡지의 숫자는
5,913개에 달한다. 잡지의 대부분이 여전히 인쇄된
형태의 종이책으로 배포되며, 일부는 웹진을
병행하기도 한다. 양자를 동시에 배포하는 입장을
생각해보면, 미디어적 차이에 따른 효과 계산은 더
분명해진다. 디지털 매체를 사용할 경우 운영자는
확장성·접근성·정보성, 브랜딩을 중심으로 기대
효과를 생각한다. 그래서 종이책보다도 내용을
요약해 간명하게 전달하려는 경우가 많다.
반면 종이책의 접근성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떨어진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정보에 접근하는 일에 익숙해진
독자층에게 종이책이 번거로운 짐으로 감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감각’은 ‘문자-
읽기’에 관해 더 섬세한 분화를 촉진하는 경향과
함께 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 읽기와
종이책을 통한 읽기는 전혀 다른 경험-감각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문자를 통한 지적 정보는 문자에 담긴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어 나르는 미디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수용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자 해독에 있어 종이책에 비해
디지털 매체가 현저하게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관찰 보고가 널리 공유되고 있다. 특히 IT 도구는
멀티 태스킹, 다양한 정보 경로를 지시하고
아카이빙하는 앱의 플랫폼이기도 하므로, 디지털
읽기는 정보에 집중하지 못하고 독자의 주의를
분산시킬 여지를 환경적 상수로 지니고 있다.
둘째, 디지털 매체는 종이책에 비해 문해 피상성이
매우 높다. 종이책의 행간을 뚫고 들어가며
사색하던 인간의 시선은 웹 또는 디지털 표면에서
튕겨나가거나 미끄러진다. 정보 중심 텍스트를
읽는 일은 별문제가 없지만, 깊은 사색과 정치한
독해를 요하는 글을 해석해나가기는 힘들다.
게다가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특성상 스크롤바를
내리며 텍스트를 ‘훑는’ 읽기 방식은 더더욱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잡지의 경우도 시각적
특성이 강한 그래픽 중심 잡지나 1차 정보 위주로
쓴 기사가 많이 실리는 잡지, 심도 있는 사색을
요하는 인문학적 텍스트가 분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전히 종이책으로 창간되고 있는 잡지나
재창간되는 잡지 중 상당수가 문예지 또는 인문학
텍스트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잡지를 선호하는 독자들을 ‘올드보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정보가 지닌 성격에 따라 읽기의
집중도와 난이도가 달라지므로, 독자들은 그에
맞는 매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4월, 전설의 종합 문예지였던 『사상계』가
폐간된 지 55년 만에 종이책으로 복간되는
출판사적 사건이 있었다. 열흘도 되지 않아 초판을
매진시키고, 많은 수의 정기 구독자를 확보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디지털 매체가 지닌
피상적 독서 환경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엄밀성과
읽기의 즐거움, 지적 심도야말로 종이책의
효과이자 고유 영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효과의 연장선상에서 종이책 독자 간의
정서적 연대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플랫폼을 활용한
책 읽기에서 독서 주체 간의 대화는 기능적이며
피상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종이책, 특히 종이잡지는 해석의 행간을 열어놓는
인문학 텍스트의 경향이 독자 간 상호 대화를
촉진하며, 아날로그적 물성이 지닌 취향, 정서적
경향과 맞물려 ‘읽기의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훨씬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다. 종이책 독자는
텍스트를 검색하거나 1차 정보로 소비하는
소비자라기보다는 텍스트에 함의된 세계를
공유하고 향유하는 취향 공동체, 의미 여행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이책의 미래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양적 관점에서만 삶을 바라보는 졸렬한
산업주의자의 관점이라고 나는 얘기하고 싶다.
삶은 1차 정보의 전달만도, 검색만도, 데이터의
소비만도 아니다. 인간에게 내면이 있고 그림자가
따라다니듯이, 텍스트에도 행간이 있고 여백이
있으며, 해석의 세계가 있고 정서가 있다. 이것이
종이책의 세계다. 그 세계의 향유자와 공유자는
디지털 매체의 소비자와는 다른 공동체 속에 산다.
글 함돈균 문학평론가·문명비평가 | 일러스트 slowreci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