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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여성 지휘자는 아직,
여성 작곡가의 작품이라도

황금빛 연주 홀과 생화 장식으로 유명한 빈 필 신년음악회 풍경 ⓒWiener Philharmoniker/Dieter Nagl

매년 1월 1일, 화려한 황금 홀과 생화 장식에 둘러싸여 왈츠를 즐기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이 음악회는 1939년 12월 31일 시작된 이래 신년음악회 문화를 퍼뜨렸고, 지금까지도 매년 전 세계로 실황이 송출된다. 신년음악회를 기다리는 이들의 관심사는 단연 ‘지휘자’다. 빈 필은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대신 매번 지휘자를 초청해 연주한다. 신년음악회의 지휘자 또한 매년 다르게 초청하는데, 큰 행사인 만큼 선임이 까다롭다. 9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단 19명의 지휘자밖에 오르지 못했을 정도. 이 중요한 자리에 누가 설까? 매년 서로 다른 기대와 추측이 오간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누가 지휘자가 되느냐보다 더 큰 화두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성별이다.

처음으로 빈 필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할 여성 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 ⓒAndreas Hechenberger

“여성 지휘자는 언제쯤 신년음악회를 지휘합니까?”

신년음악회 기자회견에선 매년 한 질문이 반복된다. 여성 지휘자는 언제쯤입니까. 근 몇 년 여성 지휘자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주요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맡는 여성 지휘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러한 기대감이 빈 필에도 미치고, 특히 빈 필의 상징인 신년음악회에 역사적인 ‘최초’가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 기자회견에 또다시 같은 질문이 나왔다는 것은 2025년 신년음악회 지휘자도 남성이라는 뜻. 선임된 지휘자는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다. 지휘자 선임 기준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력을 우선하는 빈 필엔 흠잡을 데 없다. 무티는 빈 필과 1971년 처음 호흡을 맞춘 이래 50년 이상 협력해왔으며, 신년음악회도 이미 6번이나 지휘한 경력이 있으니. 다만 거장 무티라도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여성 지휘자’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왜 빈 필에 유독 여성 지휘자에 대한 압력이 높은 것일까. 이는 빈 필의 오랜 여성 음악가 차별 전력에서 비롯한다. 빈 필은 악단 고유의 미학과 음색을 고수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것도 악단의 성향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함이다. 빈 필의 이러한 정체성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 전통에 남성 중심의 사회적 가치가 자리한다. 빈 필은 역사적으로 회원 전원이 남성이었던 빈 음악협회와 밀접한 관계였다. 여성 단원은 1997년에야 처음으로 입단이 ‘허용’됐다. 여성이 정기 연주회를 지휘한 최초의 사례는 놀랍게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창단 183년 만인 2025년 5월 성사될 예정이다. 지휘자는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Mirga Gražinyte˙-Tyla. 베를린 필 1923년(에바 브루넬리Eva Brunelli), 뉴욕 필 1938년(안토니아 브리코Antonia Brico, 모두 정규 프로그램 전체 지휘 기준)과 같은 기록에 빗대면 빈 필의 빗장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을 지휘한 요아나 말비츠 ⓒLudwig Olah

남성 지휘자만 초대되는 이유는?

2022년 빈 필의 자치회장 다니엘 프로샤우어Daniel Froschauer는 정책상 신년음악회에는 빈 필과 최소 10년 이상 협력한 지휘자만 초대할 수 있다고 했다. 빈 필은 앞서 언급한 그라지니테틸라 외에 2022년 요아나 말비츠Joana Mallwitz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을 지휘한 바 있다. 이제 막 여성 지휘자와 협업이 시작된 셈이다. 그렇다면 신년음악회에서 이들을 볼 가능성은 최소 2032년 이후일까?

2023년 1월 신년음악회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질문이 나오자, 빈 필 대표단은 “때가 되면 여성 지휘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프랑스 ‘디아파종’ 지는 (질문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가 회견장에 충격을 주었다고 묘사했다. 한순간에 전통을 바꿀 수 없는 악단의 입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동안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이들의 보수적인 노선을 바꾸기 어려운 건, 이러한 보수성이 그동안 이들이 ‘음악색’을 지켜온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 년 사이 조금씩 변화가 있다. 2023년 신년음악회엔 소년합창단만 오르던 전통이 깨지고, 이들과 같은 단복을 입은 소녀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2024년엔 신년음악회 최초로 악장 자리에 여성(알베나 다나일로바Albena Danailova, 2011년 입단)이 앉았다. 2025년엔 여성 지휘자는 오르지 않지만, 대신 최초로 여성 작곡가의 작품이 편성된다. 콘스탄체 가이거Constanze Geiger, 1836-1890가 작곡한 ‘페르디난두스 왈츠Ferdinandus-Walzer’다.

빈 필은 지난 10월, 2025년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가 메인이지만, 세계의 이목은 콘스탄체 가이거에게 쏠렸다. 그는 누구인가.

콘스탄체 가이거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가수·배우였다. 작곡가 아버지에게 조기 교육을 받은 뒤 6세에 피아니스트, 9세에 작곡가로 데뷔한 신동이다. 주로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소품을 썼고, 왈츠는 “효과가 풍부한 선율, 화려한 음색과 엄격한 행진 리듬”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25세에 결혼하며 끝이 난다. 남편 레오폴트 왕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인 왕족으로, 가이거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성에서 남작부인으로 살았다.

부부는 슈트라우스와 가까운 사이였다. ‘여성 음악가’를 원하는 세상에 여전히 슈트라우스 중심, 남성 지휘자라는 답을 내놓아야 하는 빈 필에, 가이거와 슈트라우스의 친분은 이번 200주년 기념 음악회에 ‘여성 작곡가’의 작품이 오를 당위성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찍 음악 생활을 그만둔 가이거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래서 더욱 빈 필의 이후 행보를 눈여겨봐야 한다. 가이거의 작품이 단지 신년음악회에 구색을 갖추기 위한 도구일 것인가, 진정으로 여성 작곡가의 작품을 알리고 연구하는 시발점이 될 것인가. 글을 쓰는 내내 본질적인 질문이 맴돈다. ‘여성’이 지휘대에 오르든, ‘여성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든, 여성의 존재가 연주회에 포함되는 일이 이토록 화제가 될 만큼 이들에겐 성별이 중요한 사안일까.

글 전윤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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